제379회 본이 되는 삶
202325 설교 - 로마서 강해 121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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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1절~5절
“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3章 1節∼5節
“1.人はみな、上に立つ権威に従うべきです。神によらない権威はなく、存在している権威はすべて、神によって立てられているからです。
2.したがって、権威に反抗する者は、神の定めに逆らうのです。逆らう者は自分の身にさばきを招きます。
3.支配者を恐ろしいと思うのは、良い行いをするときではなく、悪を行うときです。権威を恐ろしいと思いたくなければ、善を行いなさい。そうすれば、権威から称賛されます。
4.彼はあなたに益を与えるための、神のしもべなのです。しかし、もしあなたが悪を行うなら、恐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彼は無意味に剣を帯びてはいないからです。彼は神のしもべであって、悪を行う人には怒りをもって報います。
5.ですから、怒りが恐ろしいからだけでなく、良心のためにも従うべき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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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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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21번째 시간으로서 “본이 되는 삶” 模範となる人生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 대하여 제목을 붙이자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책에 보니까 <그리스도인과 세상 권세>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저는 여기에 제목을 붙인다고 한다면 <권세에 복종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각 사람 위에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잖아요.

이를 쉽게 본다면 어떻습니까. 윗사람은 다 하나님이 세운 것이니까, 윗사람이 하는 말은 다 복종해야 한다고 이해할 수 있겠지요.

이 말씀을 하면 꼭 정치 이야기와 결부시키려는 분들이 계십니다. 좋습니다. 어디 한 번 해봅시다.


세상적인 권력. 대표적으로 그 나라의 정권이라고 해두죠. 모든 정권, 왕이나 대통령이나 총리는 다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니까, 그 명령에는 모두 다 복종해야 한다.

맞아요? 틀려요?

사실 문자상으로 본다면 맞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 위에 있는 권세는 모두 다 하나님이 세우셨다는데, 그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면서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니엘 3장 14절~18절
“14.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14.ネブカドネツァルは彼らに対して言った。「シャデラク、メシャク、アベデ・ネゴよ。おまえたちは私の神々に仕えず、また私が建てた金の像を拝みもしないというが、本当か。
15.今、もしおまえたちが、角笛、二管の笛、竪琴、三角琴、ハープ、風笛、および、もろもろの楽器の音を聞いたとき、ひれ伏して、私が造った像を拝むなら、それでよい。しかし、もし拝まないなら、おまえたちは、即刻、火の燃える炉の中に投げ込まれる。どの神が、私の手からおまえたちを救い出せるだろうか。」
16.シャデラク、メシャク、アベデ・ネゴは王に答えた。「ネブカドネツァル王よ、このことについて、私たちはお答えする必要はありません。
17.もし、そうなれば、私たちが仕える神は、火の燃える炉から私たちを救い出すことができます。王よ、あなたの手からでも救い出します。
18.しかし、たとえそうでなくても、王よ、ご承知ください。私たちはあなたの神々には仕えず、あなたが建てた金の像を拝むこともしません。」


느부갓네살은 누구입니까. 그는 바벨론의 왕이었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비길 데가 없는 강대국이었지요.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포로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나중에 바벨론식으로 붙여진 이름이고, 다니엘 1장 7절에 의하면 본래 이름은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였습니다.

ハナンヤ、ミシャエル、 アザルヤ

그들도 포로로 끌려온 신분이었지만, 용모도 뛰어나고 지혜가 있는 사람들을 선발해서 왕을 보필하도록 했었던 것이지요.

자, 그들에게 있어서 느부갓네살 왕은 누가 뭐래도 위에 있는 권세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권세자인 왕이 그들에게 명합니다. 이제 시간이 되면 내가 만들어놓은 우상에게 절을 하라. 명령을 어기면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른다면 왕명에 복종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왕도 하나님이 세운 권세자인데 왕의 명을 거스른다면 이는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면서요.


하지만 그들은 왕의 명령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왕이 우리를 죽인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이요, 만약에 구원해주시지 않고 그대로 죽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왕의 명령에는 따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잘못한 일입니까. 왕이 결국 그들을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넣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내 뜻을 거슬렀다고 해서 그들을 죽도록 내버려두셨나요?

그들은 맹렬히 타는 불구덩이 속에서도 죽지 않았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다니엘 3장 27절
“27.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太守、長官、総督、王の顧問たちが集まり、三人を見たが、火は彼らのからだに及んでおらず、髪の毛も焦げず、上着も以前と変わらず、火の臭いも彼らに移っていなかった。

만약에 그들이 한 행동이 잘못되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불타는 풀무 속에서 흔적도 없이 타서 없어지도록 내버려두셨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철저하게 보호하시고는 마침내 구원해주셨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세례 요한은 어떻습니까.

누가복음 3장 19절~20절
“19.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しかし領主ヘロデは、兄弟の妻ヘロディアのことと、自分が行った悪事のすべてをヨハネに非難されたので、
すべての悪事にもう一つ悪事を加え、ヨハネを牢に閉じ込めた。

분봉왕은 그 지역을 다스리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이 또한 사람들 위에 있는 권세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세례 요한은 분봉왕 헤롯이 한 일을 두고 책망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옥에 갇히게 되고 말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책망을 한다는 것은 비난을 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당연히 복종하는 자세는 아니라고 하겠지요.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저질렀다는 뜻이 되는 것인가요?

이렇게 본다면 권세에 있어서 복종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겠습니다만, 이에 대한 답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3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3장 3절
“3.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支配者を恐ろしいと思うのは、良い行いをするときではなく、悪を行うときです。権威を恐ろしいと思いたくなければ、善を行いなさい。そうすれば、権威から称賛されます。

오늘 본문에 나오는 권세의 특징은 바로 “선을 행했을 때 칭찬을 받는 권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을 행했을 때 제대로 평가를 해주는 권세라고 한다면, 반대로 악을 행했을 때 벌을 내리는 권세라고 할 수 있겠지요.
꼭 한 나라가 아니더라도 어떤 조직이라고 한다면 여기에는 상벌규정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상벌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고 철저하게 지켜져야지만 제대로 조직이 돌아가는 것이지, 똑 같은 경우인데 어떤 때는 상을 줬다가, 또 어떤 때는 벌을 줬다가 한다면 그 나라든 조직이든 간에 제대로 운영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을 행했을 때 칭찬을 주는 권세라고 한다면, 이는 대단히 공정하고 공의로운 권세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공정하고 공의로운 권세만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선한 권세가 있나 하면 악한 권세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대표적인 기준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살펴보면 한 가지 기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열왕기와 역대서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왕은 초대 왕 사울, 2대 다윗, 그리고 3대 솔로몬으로 이어오게 됩니다만, 이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 죄가 어떤 것이었냐 하면 바로 우상을 섬기는 죄였습니다.


열왕기상 11장을 살펴보면 본래 하나님께서는 이방 여인과 혼인하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온갖 지역에서 여자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들이 벌어지냐 하면 그 여자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이방지역에서 자기가 믿던 우상들을 같이 가져오게 됩니다.

도대체 그럼 그런 여자들이 몇 명이나 되었냐 하면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열왕기상 11장 3절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彼には、七百人の王妃としての妻と、三百人の側女がいた。その妻たちが彼の心を転じた。

후궁과 첩을 합하면 여자들이 자그마치 천 명입니다.


이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열왕기상 11장 4절~5절
“4.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ソロモンが年をとったとき、その妻たちが彼の心をほかの神々の方へ向けたので、彼の心は父ダビデの心と違って、彼の神、主と一つにはなっていなかった。
ソロモンは、シドン人の女神アシュタロテと、アンモン人の、あの忌むべき神ミルコムに従った。

그 천 명이나 되는 여자들이 다 자기 우상들을 왕궁에서 섬겨요. 이렇게 되니까 왕이 사는 왕궁이 온통 우상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이제 솔로몬도 여자들이 하자는 대로 우상들을 따랐다는 거예요.

9절~10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왕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그러지 말라고 하셨지만 도무지 듣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하셨습니까.

열왕기상 11장 11절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そのため、主はソロモンに言われた。「あなたがこのようにふるまい、わたしが命じたわたしの契約と掟を守らなかったので、わたしは王国をあなたから引き裂いて、あなたの家来に与える。

끝까지 죄에서 돌이키지 않은 솔로몬에 대해서 하나님은 한탄하시고는 그 나라를 빼앗아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그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져서 각자 왕조가 이어지게 됩니다.

이 왕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좋은 왕과 악한 왕으로 분류할 수가 있는데, 그 기준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우상숭배였던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왕이 다스릴 때에는 평화가 임하게 되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왕이 다스리게 되면 그 나라가 온통 어지럽게 되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준엄한 심판이 내려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본다면 기독교, 구체적으로는 개신교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천주교를 영어로 하면 가톨릭이 됩니다만, 개신교는 무엇입니까. 이는 프로테스탄트라고 하지요.

이 어원이 된 프로테스트라고 하는 뜻은 무엇입니까. 순종인가요? 아니요. 항의나 저항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 다시 말해서 구교와 신교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구교가 전통적인 가르침이고, 신교는 새로 만들어진 교리다……이렇게 알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옳지 않습니다. 천주교가 무엇인가로부터 멀어지고 있었어요. 무엇으로부터 멀어졌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성경에 사람의 주장이 개입됩니다. 성경에도 없는 교황이나 성모나 우상숭배 사상이 판을 칩니다. 면죄부를 사면 죄가 사해진다고 하면서 이제 장사까지 시작해요.

이렇게 되니까 여기에 항의를 하게 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종교개혁이라고 한다면 그저 종교적인 것만을 생각하기 십상인데, 당시 유럽에는 이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마찬가지죠. 도무지 가망성이 없는 저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도는 결국 종교혁명을 일으킨 마틴 루터의 나라 독일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럽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전세계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혁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가 당시 사회에 군림하고 있었던 천주교라는 권세에 저항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성경에서 멀어진 믿음, 우상을 숭배하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는 비단 종교나 정치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회사를 보세요. 사장이나 회장이 아닌 담에야 회사에는 자기 상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상사도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라고 해서 모두 복종을 하기만 해야 합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꼭 그 사람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우리는 모두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 판단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럴 때 아무리 내가 밑에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위에 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도 그렇고 외국에 보면 역시 마찬가지에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그 힘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큰 회사의 사장님이라고 한다면 정말 웬만한 나라 지도자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큰 힘이 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 위치에 있다면 이 세상을 위해서 어려운 사람들도 돕고, 참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텐데,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경우를 많이 보질 못합니다. 기껏해야 가끔 무슨 생색만 내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37.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あなたは心を尽くし、いのちを尽くし、知性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
38.これが、重要な第一の戒めです。
39.『あなたの隣人を自分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という第二の戒めも、それと同じように重要です。
40.この二つの戒めに律法と預言者の全体がかかっているのです。」

이 세상에는 수많은 법률들이 많이 있습니다. 1년만 하더라도 수없이 많은 법안들이 새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모든 법률이나 법령들은 어디에서 벗어나면 안 되냐 하면 바로 헌법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만약에 어떤 법률이 헌법에서 벗어났다고 판결이 되면 그 법은 효력을 잃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있어서의 헌법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 것입니다. 아무리 말을 잘 하는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 아무리 막강한 권세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앞서 말씀 드린 우상숭배에 대한 것은 분명 하나님 사랑에서 벗어나는 일이지요.

열왕기나 역대를 보면 우상을 숭배하던 왕이나 지도자들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까. 이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하나님 사랑에서 벗어나서 우상숭배를 하게 된다면 분명 하나님의 심판이 뒤따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국민을 핍박하는 지도자나 직원을 괴롭히는 경영자는 아무리 큰 나라나 회사 지도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권세는 복종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쉬운 예로 교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교회에서의 목사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생각, 자기의 정치견해를 전하는 것이 역할입니까. 아니에요. 성경에 이와 같은 말씀이 적혀 있다고 하는 것을 전하는 것이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앞에 서서 성경 이야기는 안 하고 맨날 정치 얘기나 세상 얘기나 하고 있으면 역시 그 말에도 복종을 해야 하겠습니까. 아니에요. 이건 반드시 개선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맨날 비판이나 하고 데모나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5장 3절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割り当てられている人たちを支配するのではなく、むしろ群れの模範となりなさい。

성경은 우리에게 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비단 위정자나 지도자한테 국한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이웃을 대할 때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시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발을 씻어 주셨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14절~17절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4.主であり、師であるこのわたしが、あなたがたの足を洗ったのであれば、あなたがたもまた、互いに足を洗い合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
15.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したとおりに、あなたがたもするようにと、あなたがたに模範を示したのです。
16.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しもべは主人にまさらず、遣わされた者は遣わした者にまさりません。
17.これらのことが分かっているなら、そして、それを行うなら、あなたがたは幸いです。


우리가 우리 위에 있는 권세자들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우리 이웃에게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이웃더러 내 발을 씻으라고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 이웃의 발을 씻어주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누구는 말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따라간다고 말해요.

참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정치가 판을 칩니다. 권력다툼이 있습니다. 이게 세상 정치판이지 어떻게 주님이 머리 되신 교회의 참 모습일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부터 변화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세상의 본이 되어서 세상이 우리를 보고 따라오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핵심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우리 믿음의 시작이요 끝이요 전부가 되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이웃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임해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섬겨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로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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