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8회 선에 속한 사람(4) - 사랑의 목적
2023년 1월 29일 설교 - 로마서 강해 120

홍성필 목사
www.kirinmission.com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21절
“14.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2章 14節∼21節
“14.あなたがたを迫害する者たちを祝福しなさい。祝福すべきであって、呪ってはいけません。
15.喜んでいる者たちとともに喜び、泣いている者たちとともに泣きなさい。
16.互いに一つ心になり、思い上がることなく、むしろ身分の低い人たちと交わりなさい。自分を知恵のある者と考えてはいけません。
17.だれに対しても悪に悪を返さず、すべての人が良いと思うことを行うように心がけなさい。
18.自分に関することについては、できる限り、すべての人と平和を保ちなさい。
19.愛する者たち、自分で復讐してはいけません。神の怒りにゆだねなさい。こう書かれているからです。「復讐はわたしのもの。わたしが報復する。」主はそう言われます。
20.次のようにも書かれています。「もしあなたの敵が飢えているなら食べさせ、渇いているなら飲ませよ。なぜなら、こうしてあなたは彼の頭上に燃える炭火を積むことになるからだ。」
21.悪に負け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善をもって悪に打ち勝ちな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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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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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20번째로 “선에 속한 사람(4) - 사랑의 목적” 善側の人(4)-愛の目的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좀 길다고 하겠습니다만, 여러분께서는 오늘 본문을 보시고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오늘 말씀,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21절
14.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2章 14節∼21節

“14.あなたがたを迫害する者たちを祝福しなさい。祝福すべきであって、呪ってはいけません。
15.喜んでいる者たちとともに喜び、泣いている者たちとともに泣きなさい。
16.互いに一つ心になり、思い上がることなく、むしろ身分の低い人たちと交わりなさい。自分を知恵のある者と考えてはいけません。
17.だれに対しても悪に悪を返さず、すべての人が良いと思うことを行うように心がけなさい。
18.自分に関することについては、できる限り、すべての人と平和を保ちなさい。
19.愛する者たち、自分で復讐してはいけません。神の怒りにゆだねなさい。こう書かれているからです。「復讐はわたしのもの。わたしが報復する。」主はそう言われます。
20.次のようにも書かれています。「もしあなたの敵が飢えているなら食べさせ、渇いているなら飲ませよ。なぜなら、こうしてあなたは彼の頭上に燃える炭火を積むことになるからだ。」
21.悪に負け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善をもって悪に打ち勝ちなさい。”


오늘 이 본문, 마음이 온유하신 여러분께서는 은혜롭게 말씀 그대로 아멘 하고 받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구절 하나하나에 대해서 완벽하게 반박할 자신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세상적으로 볼 때 이 구절들은 정말 무엇 하나 말이 안 된다고도 할 수 있어요.

정말 그런지 한 번 살펴볼까요?

로마서 12장 14절
“14.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4.あなたがたを迫害する者たちを祝福しなさい。祝福すべきであって、呪ってはいけません。

자,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 아닙니까.

아니, 내가 축복할 사람이 따로 있지, 내 성공을 바라고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을 축복한다면 모를까, 내가 안 되기를 바라고, 내가 어떻게든 불행하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에 대해서 저주를 하면 저주를 했지, 축복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15절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5.喜んでいる者たちとともに喜び、泣いている者たちとともに泣きなさい。

이는 그나마 좀 나을 것 같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즐거워 하는 자>나 <우는 자>는 앞서 14절에 나왔던 <나를 박해하는 자>가 포함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나를 박해하는 자가 즐거워해요. 그것이 내게 있어서도 즐거운 일일까요? 나를 박해하는 자가 슬퍼해요. 그것은 내게 있어서도 슬픈 일일까요? 오히려 반대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 실패를 바라고 내 불행을 바라는 사람이 즐거워 한다는 것은 오히려 내게 있어서는 안 좋은 일일 경우가 많겠지요.

예를 들어 내가 사업을 하고 있는데 경쟁상대가 있어요. 정말 내게 있어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저 회사만 없다면 내 사업이 더 잘될 텐데 저 회사 때문에 항상 매출이 떨어져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그 회사가 망하는 것이 내게 있어서 잘 되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 회사가 막 잘 돼요. 그 회사가 부동산이 늘어나고 건물도 새로 짓고 그렇습니다.

그것이 나한테 있어서 좋은 일이에요? 아니에요. 안 좋은 일이지요. 왜냐하면 그걸로 인해서 내 회사의 매출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아닌 말로 그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면서 뭐, 고사를 지낸다기 보다는, 금식기도를 해도 모자랄 판에, 같이 즐거워해요?


반대로 본다면 내 경쟁사가 잘 안 돼요. 그러면 나는 즐거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16절도 보시겠습니다.

“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6.互いに一つ心になり、思い上がることなく、むしろ身分の低い人たちと交わりなさい。自分を知恵のある者と考えてはいけません。


자, 우선 나와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회사는 나와 어떤 관계입니까.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눌러야 할 대상, 내가 끌어 내려야 하는 대상 아닙니까. 그런 사람과 어떻게 마음을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여기서 ‘낮은 데 처하며’라고 되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생명의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에는 <천한 사람들의 벗이 되십시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 내가 성공을 하려고 해요. 내가 사업을 크게 확장시키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와 어울려야 하겠습니까. 큰 회사나 고위 공직자와 어울려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돈이 없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과 어울려야 하겠습니까.

쉽게 말하자면 내가 사업을 하고 있는데, 큰 회사 사장님과 가난한 실업자 중에 누구와 골프를 치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이는 세상 이치로 보았을 때 너무나도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큰 회사 사장님이나 고위 공직자와 어울려야지 내 사업에 있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가난한 사람과 어울려서 무슨 이득을 볼 게 있겠습니까. 

그리고 사람들한테 만만해 보이면 되겠어요? 그렇잖아도 가만히 있으면 무시 당하는 세상인데, 내가 좀 이 정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좀 보여줘야지 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어디 한 번 계속해 볼까요?

17절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7.だれに対しても悪に悪を返さず、すべての人が良いと思うことを行うように心がけなさい。

자, 어떻게 세상을 그렇게 선하게만 살아갑니까. 선한 일을 해줄 사람이 따로 있지. 어떻게 모든 사람 그러니까 내 불행을 바라고 나를 핍박하는 사람한테까지 선을 도모할 수가 있겠습니까.

18절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8.自分に関することについては、できる限り、すべての人と平和を保ちなさい。


이 말씀은 어때요? 아이고,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 나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 화목하기도 바쁜데, 무슨 모든 사람들이에요. 나를 핍박하는 사람, 내 불행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갚아줘야지, 그들과 화목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9절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19.愛する者たち、自分で復讐してはいけません。神の怒りにゆだねなさい。こう書かれているからです。「復讐はわたしのもの。わたしが報復する。」主はそう言われます。

내가 저 사람한테 당한 일이 한 둘이 아닌데, 아무리 기다려도 저 사람은 잘 되고 나는 고생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기회가 될 때 내가 보복을 하든지 해야지, 어느 세월에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줄 줄 알고 그것을 기다리고만 있겠습니까.


20절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0.次のようにも書かれています。「もしあなたの敵が飢えているなら食べさせ、渇いているなら飲ませよ。なぜなら、こうしてあなたは彼の頭上に燃える炭火を積むことになるからだ。」

내 경쟁상대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것은 내게 있어서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니겠습니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지금까지 내가 당한 것을 갚아줘야 한다 하면서 여세를 몰아 완전히 억눌러야죠.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살아나서 나를 또 괴롭히면 어떡하겠습니까.

21절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21.悪に負け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善をもって悪に打ち勝ちなさい。”

말이야 쉽지요. 어떻게 악에 대해서 선으로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당한 만큼 나도 갚아 주여야 하는 것, 그게 바로 세상 이치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본다면 어떻습니까. 제 말이 이상해요? 그러니까 성경은 성경이고 현실은 현실이야. 어떻게 현실이 다 성경대로 된다고 할 수 있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이 말씀들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보면 누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흔한 가요 같은 것을 들어보면 뭐 맨날 무슨 사랑타령이잖아요. 만나고 헤어지고 기쁘고 슬프고……다 그 노래가 그 노래 같이 들리는데, 그런데 그런 흔한 노래가 마음이 와 닿을 때가 있대요. 그게 언제냐 하면 자기가 실연을 하면 다르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머나먼 그곳으로 떠나버린 후”

그 때까지는 그저 다 그 노래가 그 노래처럼 들렸는데, 막상 자기가 실연을 당한 입장이 되어 보니까, 정말 모든 노래들이 다 자기의 심정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예요.


자,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한 번 문제를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라겠습니다.

오늘 살펴본 본문, 14절부터 21절까지 정말 세상적으로 본다면 말이 안 된다고 제가 반박을 했습니다만, 어떤 사람한테 이 글을 보여준다면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꼭 주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글을 보는 순간 와! 정말 맞는 말이다. 이 사실을 알려주어서 정말 고맙다! 라고 까지 할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그 사람의 직업은 무엇일까요.

예, 그것은 바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오늘 말씀을 보면 어떻습니까. 이제 한국을 보면 내년 2024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일본도 본래 중의원 임기는 2025년까지인데, 그 이전에 해산하기도 하기 때문에 누구는 조만간 선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말씀이 그냥 우리가 읽으면 다른 성경말씀과 별반 차이가 없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만약에 선거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이 본문을 본다면 어떻게 느껴질까요.

이번에는 우리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라는 입장이라 생각하고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14절
“14.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4.あなたがたを迫害する者たちを祝福しなさい。祝福すべきであって、呪ってはいけません。

자, 우리가 당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출마하는 지역구에서 표를 많이 얻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 지역구에 보면, 처음부터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만 가지고는 내가 당선하기 위해 충분하지가 않아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현재 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박해한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저주할 수 있습니까? 아니에요. 내가 당선하기 위해서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한테 가서도 내 지지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당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한테 가서 저주를 퍼부어요? 그러면 지지는 커넝 오히려 내 인기만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든 축복도 하고 다독거리기도 하면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지만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겠지요.


15절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5.喜んでいる者たちとともに喜び、泣いている者たちとともに泣きなさい。

그 지역구에서 이른바 관혼상제가 있다고 해보세요. <관>이라고 하면 쉽게 말하자면 성인식이고, <혼>은 결혼식, <상>은 장례식, <제>는 무슨 축제 같은 행사잖아요.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다면, 요즘은 무슨 축의금이나 부조 같은 것은 선거법상 문제가 될 수는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얼굴은 비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지난 주가 저희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만, 그 날 저희 결혼식에 와 준 사람이나, 여러 모로 축하를 해준 사람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 명단이요?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평생 간직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분명 제가 초청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 안 온 사람도 있어요. 그럼 제가 그 사실을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제아무리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간에 그리 좋은 기억으로는 안 남을 거잖아요.


그러니 자기 지역구에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간에 그 행사가 있다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안 좋아하는 사람이든 참석을 해야지요. 그렇잖아요. 어떻게든 표를 모아야 하는데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표가 따로 있고 싫어하는 사람의 표가 따로 있겠습니까.

16절
“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6.互いに一つ心になり、思い上がることなく、むしろ身分の低い人たちと交わりなさい。自分を知恵のある者と考えてはいけません。

특히 한국에서 보면 선거에 나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만 모여서 같이 잘 먹고 잘 살자? 아니죠. 온 국민이 마음을 하나로 해서 화합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낮은 데 처하라>는 것이 무슨 뜻이었다고요? 예,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과 어울리라는 말씀 아니었습니까.

선거라는 것이 어떻습니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유권자 한 사람 당 한 표입니다. 돈 많은 사람은 10표이고 가난한 사람은 1표가 아니에요.


뿐만 아니라 20대 청년도 은퇴한 고령자도 모두 한 표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만나기가 쉽겠습니까.

큰 회사 사장님들은 다들 바빠요. 만나려고 해도 사전에 약속도 잡아야 하고 복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드신 분들은 경노당 한 곳에 가면 수 십 명을 한 번에 만날 수도 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언제든 내가 찾아가면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럼 누구를 먼저 공략해야 하겠습니까. 효율을 생각한다 하더라도 만나기 쉬운 사람들부터, 그리고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부터 공략해야 하잖아요. 이는 선거에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7절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7.だれに対しても悪に悪を返さず、すべての人が良いと思うことを行うように心がけなさい。

이는 당연하죠. 지금 선거운동 기간인데 나한테 잘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악으로 갚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그런 일을 하게 된다면 그 때까지 나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자칫 잘못하면 떨어져 나갈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모든 사람 앞에서, 더 구체적으로 모든 유권자 앞에서 선을 도모하는 흉내라도 내야 하는 것이지요.

18절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8.自分に関することについては、できる限り、すべての人と平和を保ちなさい。

당선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많은 사람과 화목하게 된 사람, 다시 말해서 가능한 한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사람이 당선하지 않겠습니까.

19절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19.愛する者たち、自分で復讐してはいけません。神の怒りにゆだねなさい。こう書かれているからです。「復讐はわたしのもの。わたしが報復する。」主はそう言われます。


아무리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내가 원수를 갚으면 나는 그 사람한테서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한테서도 내가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를 갚아 주신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이 안 좋게 되었다 하더라도 내 탓을 하지는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20절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0.次のようにも書かれています。「もしあなたの敵が飢えているなら食べさせ、渇いているなら飲ませよ。なぜなら、こうしてあなたは彼の頭上に燃える炭火を積むことになるからだ。」

여기서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는다>는 말에 대한 해석은 신학자들 사이에도 분분합니다만, 대체적으로 본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은혜를 입게 해서 회개하거나 부끄러움을 깨닫게 한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나를 해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나는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일이 선거운동기간에 일어났다고 하면 나 자신에 대한 호감도는 얼마나 많이 올라가겠습니까.


21절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21.悪に負け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善をもって悪に打ち勝ちなさい。”

와, 정말 이렇게 본다면 나를 억누르려고 하는 상대방 후보에 대해서 선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선거에서 멋지게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현실과 전혀 맞지 않아 보이던 이 성경말씀이,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의 입장에서 보니까, 그야말로 선거운동의 매뉴얼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이 말씀대로만 선거운동을 하게 되면 무슨 선거라 하더라도, 하물며 대통령선거라 하더라도 분명히 당선될 것이라 확신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 한 번 이 시점에서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악수를 하고 손을 흔들고, 그리고 정말 악을 악으로 갚을 수도 없고, 이 사람한테 가서 굽신거리고 저 사람한테 가서 또 굽신 거립니다. 누가 싫은 소리를 해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화를 낼 수도 없어요.

그럼 그 사람들이 남들보다 못 배워서 그렇습니다. 아니에요. 그런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을 보면 학력이나 경력으로나 보았을 때 어마어마합니다. 남들보다 많이 가졌고 남들보다 많이 배운 그럼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마음대로 화도 못 내고 많은 사람들과 화목하려고 애를 씁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렇게 해서 당선만 된다면, 어마어마한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 사람들이라고 자존심이 없겠습니까. 화를 낼 줄 몰라서 못 냅니까. 하지만 거기서 내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게 된다면 그 때까지 노력해온 일을 그르치게 되어서 큰 것을 얻을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화가 나도 참고 자존심이 상해도 견디는 것이지요. 그래야 훨씬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천국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세요. 그냥 아무런 일도 안 하고 편하게 먹고 자고 하는 그런 나라가 천국인가요?


요한계시록 5장 10절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私たちの神のために、彼らを王国とし、祭司とされました。彼らは地を治めるのです。」

요한계시록 22장 5절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もはや夜がない。神である主が彼らを照らされるので、ともしびの光も太陽の光もいらない。彼らは世々限りなく王として治める。


주님은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피를, 십자가 위에서 아낌없이 모두 다 흘려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그저 하늘나라 가서 편안하게 먹고 자게 하기 위해서 뿐이겠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장차 우리와 함께 주님의 나라를 다스리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나라의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 지역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챙기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사람이 그 지역의 대표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주님의 나라에 있어서도 그와 같은 사람은 합당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空の鳥を見なさい。種蒔きもせず、刈り入れもせず、倉に納めることもしません。それでも、あなたがたの天の父は養っていてくださいます。あなたがたはその鳥よりも、ずっと価値があるではありませんか。

누가복음 12장 7절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それどころか、あなたがたの髪の毛さえも、すべて数えられています。恐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あなたがたは、多くの雀よりも価値があるのです。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처럼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는 지금 현재 주님을 믿고 있는 사람만 그렇다는 것인가요?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なれたことによって、神は私たちに対するご自分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


에스겔 18장 32절
“32.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わたしは、だれが死ぬのも喜ばない──神である主のことば──。だから立ち返って、生きよ。」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가 착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인이었기 때문인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다고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위에 정말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있습니까.

우리는 자기가 아무리 착한 것처럼 생각된다 하더라도 주님으로부터 본다면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인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 하더라도 죄 가운데에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 받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일을 하시기 위해 누구를 쓰시고 싶어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를 쓰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보면 대통령이나 총리 밑에서 장관이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것은 바로 대통령이나 총리와 마음이 맞는 사람입니다.

자기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불러서 장관도 시키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우리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그저 착한 사람이 되어라, 좋은 사람이 되어라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주님은 기뻐하시고 주님께서 부르셔서 쓰시고자 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서 국회의원이나 장관 정도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그보다도 훨씬 더 큰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더욱 더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목적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며, 마침내 주님과 함께 왕노릇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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