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5회 선에 속한 사람(1) - 사랑의 의미
2023년 1월 8일 설교 - 로마서 강해 117

홍성필 목사
www.kirinmission.com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9절
“9.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2章 9節
“9.愛には偽りがあってはなりません。悪を憎み、善から離れないようにしな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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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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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17번째로 “선에 속한 사람(1) - 사랑의 의미” 善側の人(1)-愛の意味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12장 9절에서 시작해서 12장 마지막인 21절까지 크게 보면 하나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보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한 번에 다루기 보다는 몇 회에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손자병법이라는 책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는 중국의 손무라는 사람이 쓴 병법, 말하자면 전쟁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 자체는 기원전 500년 경에 기록되었다고는 합니다만, 21세기인 지금에 있어서도 단순히 무슨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처세술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지요.

이처럼 최고의 병법서라고 할 수 있는 손자병법에 의하면, 전쟁에 있어서 승리와 패배는 언제 결정이 난다고 되어 있을까요.

이 손자병법에 의하면 전쟁에 있어서 승리와 패배는 언제 결정이 나냐고 되어 있냐 하면, 그것은 뚜껑을 열어본 다음이 아닌,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승패는 결정이 나 있다는 것이에요.

그도 그렇겠지요. 자기 나라에 어느 정도 힘이 있고, 상대방에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면, 전쟁을 하기 전에 이미 승부는 결정 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는 손자가 살아 있던 그 옛날이나 21세기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 믿음에 있어서는 어떨까요.

우리가 주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요.


축복을 받기 위해서, 병이 낫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뭐, 이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믿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더 쉽게 말하자면 장차 천국에 가기 위해서이지요. 좀 이상한 말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축복도 받았어요, 병도 나았어요. 부자도 되었어요. 그런데 천국에는 가지 못했어요. 이렇게 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쟁과 구원, 사실 좀 무서운 말이기 합니다만,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어떻습니까.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는 됐다가 또 언제는 안 됐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결정되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말로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여부는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한 후에 있을 심판에서 판결이 내려집니다.


성경에는 장차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로마서 14장 10절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それなのに、あなたはどうして、自分の兄弟をさばくのですか。どうして、自分の兄弟を見下すのですか。私たちはみな、神のさばきの座に立つことになるのです。


고린도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私たちはみな、善であれ悪であれ、それぞれ肉体においてした行いに応じて報いを受けるために、キリストのさばきの座の前に現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우선 이 두 구절은 어떻습니까. 누가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까. 죄를 지은 사람만 심판대 앞에 서게 되나요? 아니요. 우리가 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 기록합니다.

성경을 조금 아는 사람은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로마서나 고린도서는 모두 바울이 쓴 것인데, 그것은 바울의 주장이 아니냐 할지도 모릅니다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そして、人間には、一度死ぬことと死後にさば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ように、

여기에도 보시면 모든 사람은 한번 죽는다는 것이 정해져 있고, 그리고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 또한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기록된 부분은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また私は、死んだ人々が大きい者も小さい者も御座の前に立っているのを見た。数々の書物が開かれた。書物がもう一つ開かれたが、それはいのちの書であった。死んだ者たちは、これらの書物に書かれていることにしたがい、自分の行いに応じてさばかれた。

이처럼 성경은 어떤 사람이든 간에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한 후에는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 반복적으로 기록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재판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큰 자나 작은 자나 예외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살 때 부자였건 가난했건, 지위가 높건 낮건 상관이 없어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길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을 사람, 언제 결정이 나는 것일까요. 뚜껑을 열어봐야 하나요?

아니요. 이미 심판대에 서기 전, 이 땅에 살고 있을 때 벌써 구원을 받을 사람과 못 받을 사람은 결정이 난다고 해야겠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재판은 사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절차도 복잡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사람을 재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기에는 어떤 증거나 증인이 제출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고, 원고와 피고가 어떤 주장을 하는지, 사실관계나 법리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하기 때문에 심한 경우에는 몇 년이나 걸리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변호사가 누구냐,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서 판결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세상 재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또 세상 재판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사실만을 말한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어쩌면 누구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죄를 면하기 위해서 사실을 말하지 않거나, 또는 결정적인 증거를 감추는 경우도 없다고 할 수 만은 없겠지요.


하지만 하늘나라의 재판은 이렇게 오래 끌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그 보좌 앞에 있는 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 사람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증인이나 증거가 없더라도 모든 행위, 이는 눈에 보이는 행위뿐만 아니라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행위까지도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 아니십니까. 전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 모르는 것이 없는, 100프로 다 알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시간을 끌 필요가 무엇입니까. 이는 완전하고도 완벽한 재판일 것이며 그 재판은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구원을 받게 될 사람은 언제 정해진다고요? 그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정해진다고요? 아니요. 그 심판대 앞에 서기 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을 때 이미 정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몇 번 있어요.

어떤 이야기냐 하면, 이제 어떤 사람이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그래서 너는 이러이러한 잘못이 있고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으니 구원 받을 수 없다고 말하자, 그 때 이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 잘못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를 믿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내 죄가 씻겨졌습니다.

그랬더니 그 때 모든 죄가 씻겨져서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뭐,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신 적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참 은혜가 되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데 말이에요. 이 말처럼 아무리 우리가 죄를 많이 지었다 하더라도 심판대 앞에 가서 “아, 나는 예수님의 피로 인해서 죄가 해결되었습니다”라고 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해보십시오.

만일 이 말이 정말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열심히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갈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마지막 결정적 순간에 이 말을 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잖아요.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제가 한 말, 구원 여부는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이미 결정이 난다고 말씀 드린 제 말이 잘못된 것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이 말에 의하면 심판대 앞에 가기까지 구원을 받을지 못 받을지 모른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한 만약에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최소한 오늘부터 살펴보게 될 로마서 12장 9절 이후의 내용은 필요가 없게 되고 맙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자기 멋대로 살다가 마지막에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피만 의지했다고 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그 때까지 자기 멋대로 하지 못하고 성경말씀을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이 미련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전쟁의 승패가 전쟁 전에 이미 결정 난다는 것처럼 우리의 구원 또한 그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이미 결정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뭐예요? 그렇습니다. 마지막 날 그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우리는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음과 말씀과 행함을 통해서 구원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느냐 하면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2장 9절
“9.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愛には偽りがあってはなりません。悪を憎み、善から離れないようにしなさい。

이 말씀을 단순화 시켜보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에게는 악에 속한 사람과 선에 속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는 사람은 어디에 속한 사람? 그렇습니다. 선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선에 속한 사람이냐 하면 바로 <사랑>을 가진 사람이 선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사랑>을 가진 사람은 선에 속한 것이요, <사랑>이 없는 사람은 선에 속하지 않은 사람, 즉 악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어떤 사람이 <사랑>이 있는 사람일까요. 여러분께서는 정말 선한 사람만이 사랑이 있고 악한 사람은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태복음 7장 9절~11절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あなたがたのうちのだれが、自分の子がパンを求めているのに石を与えるでしょうか。
魚を求めているのに、蛇を与えるでしょうか。
このように、あなたがたは悪い者であっても、自分の子どもたちには良いものを与えることを知っているのです。それならなおのこと、天におられるあなたがたの父は、ご自分に求める者たちに、良いものを与えてくださらないことがあるでしょうか。

자, 이 말씀을 보시면 악한 자라 하더라도 좋은 것을 자기 자식한테 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악한 사람도 자기 자식을 위한다고 하겠는데, 그렇다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시 말해서 아무리 악에 속한 자라도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한테도 역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는 말 아닌가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악한 사람도 자기 자식을 위할 줄 안다고 한다면, 그 악한 사람한테도 사랑이 있다는 뜻이 된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한테 잘해준다고 해서 무조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2절~33절
“32.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自分を愛してくれる者たちを愛したとしても、あなたがたにどんな恵みがあるでしょうか。罪人たちでも、自分を愛してくれる者たちを愛しています。
自分に良いことをしてくれる者たちに良いことをしたとしても、あなたがたにどんな恵みがあるでしょうか。罪人たちでも同じことをしています。

악인이나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5장 7절~8절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正しい人のためであっても、死ぬ人はほとんどいません。善良な人のためなら、進んで死ぬ人がいるかもしれません。
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なれたことによって、神は私たちに対するご自分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

이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상을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렇다면 누가 그 상을 받느냐 하면 그 상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받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채찍에 맞으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그와 같은 크나큰 상을 받은 것은 우리가 의인이었기 때문인 아닙니다. 우리가 상을 받을 만한 훌륭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그와 같은 상상도 못하는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세상적으로 보면 사랑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세상에도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만,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사랑과 세상적인 사랑이 질적으로 다른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 정말 사랑을 받아 마땅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전혀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新しい戒めを与えます。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

예수님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보혈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를 위해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도 너희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한테까지도 사랑을 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지, 이를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과 혼동을 하게 된다면, 그저 다른 교양서적들이나 세상적인 사랑 이야기와 차이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랑, 정말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한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그것이 바로 <선에 속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선에 속한 사람이냐, 아니면 악에 속한 사람이냐, 그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선에 속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악에 속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선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사랑은 내 사랑을 받아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 내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랑, 그런 사람이 바로 선에 속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쉽습니까. 만약에 이게 쉽다면 저도 그냥 12장 9절부터 21절까지 한 번 쭈욱 읽고 끝내버릴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굳이 몇 번에 나누어서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하는 이유는, 그만큼 어렵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달아야지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렵기는 하지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제 말씀을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주님이 말씀해주시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진정한 선에 속한 사람으로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에 구원 받고 기쁨과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천국시민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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