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0회 졸음을 물리치는 방법
2022년 1211 설교 - 로마서 강해 112

홍성필 목사
www.kirinmission.com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35절~36절
“35.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ローマ人への手紙11章35節~36節
“35.だれがまず主に与え、主から報いを受けるのですか。」
36.すべてのものが神から発し、神によって成り、神に至るのです。この神に、栄光がとこしえにありますように。アー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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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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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12번째 시간으로서 “졸음을 물리치는 방법” 眠気の退け方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우선 35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1장 35절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5.だれがまず主に与え、主から報いを受けるのですか。」

이 말씀의 뜻이 좀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이 내용부터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욥기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욥기 4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십니다.

욥기 41장 11절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だれが、まずわたしに与えたというのか。わたしがそれに報い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に。天の下にあるものはみな、わたしのものだ。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나에게 갚으라고 할 때는 어떤 경우입니까. 그냥 달라는 것과 갚으라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지요.

상대방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1만원을 달라” 라는 말과 “나에게 1만원을 갚으라”라는 말은 다릅니다. 그럼 “갚으라”라고 할 때는 언제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1만원을 빌려주었을 때 할 수 있는 말 아니겠어요?

내가 상대방에게 돈을 빌려주었거나, 아니면 내가 상대방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주었을 경우,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때 갚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좀 더 세부적으로 본다면 어떻게 되냐 하면, “갚는다”라고 한다면 “내가 주는 것”이 먼저입니까. 아니면 “상대방이 나에게 갚는 것”이 먼저입니까.

이는 당연히 “내가 주는 것”이 먼저인 것이지요. 일단 내가 상대방에게 돈을 꾸어 주든, 아니면 무슨 일을 해주든 간에, 우선 내가 상대방에게 먼저 해 주는 것이 있고, 그 다음에 나한테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나한테 먼저 주고 그 대가를 나한테 갚으라고 하겠느냐 하는 것이에요.

생각해보세요. 누군가가 나한테 돈이든 뭐든 꾸어 달라고 해요. 그럼 아쉬운 쪽이 누구겠어요. 꾸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아니면 꾸어주는 사람이에요. 당연히 꾸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아쉬운 쪽이지요.

그러니까 세상에 보더라도 돈을 꾸어 주면 거기에 이자까지 받아서 갚으라고 하잖아요. 이게 뭐 이상한 것이 아니라, 대표적으로 본다면 사실 은행이 그 장사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동차 살 때 돈 빌려 줄게. 집 살 때 돈 빌려 줄게. 그러면서 그 빌려준 돈의 이자로 수익을 얻고 있는 게 은행이잖아요. 이건 어디까지는 빌리는 사람이 아쉬우니까 이자를 감당하면서까지 은행을 이용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쉬운 게 있어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꾸고는 그것을 갚으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쉬운 것이 없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으세요. 그 이유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앞서 욥기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욥기 41장 11절 후반부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天の下にあるものはみな、わたしのものだ。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없으십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그리고 모든 것이 여전히 주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욥기 38장 4절~6절
“4.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わたしが地の基(もとい)を定めたとき、あなたはどこにいたのか。分かっているなら、告げてみよ。
あなたは知っているはずだ。だれがその大きさを定め、だれがその上に測り縄を張ったかを。
その台座は何の上にはめ込まれたのか。あるいは、その要の石はだれが据えたのか。

내가 이 세상을 창조할 때 사람은 어디에 있었느냐 하고 하나님께서는 묻습니다. 어디에 있긴 어디 있어요. 아직 이 세상에 있지도 않았지요. 그 뿐만 아니라 이 36장을 읽어보면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욥기 38장 32절~35절
“32.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33.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34.네가 목소리를 구름에까지 높여 넘치는 물이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35.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번개가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あなたは十二宮をその時にかなって、引き出すことができるか。牡牛座をその子の星とともに導くことができるか。
あなたは天の掟を知っているか。地にその法則を立てることができるか。
あなたの声を密雲にまであげ、みなぎる水にあなたをおおわせることができるか。
あなたは稲妻を向こうに行かせ、あなたに向かって「私たちはここです」と言わせることができるか。

이 말씀은 단순히 우리 눈에 보이는 사물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모든 법칙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다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이 무슨 아쉬운 것이 있어서 우리에게 꾸시겠습니까.

이와 같은 말씀을 간결하게 정리한 내용이 오늘 본문 중에서 36절입니다.


로마서 11장 36절
“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36.すべてのものが神から発し、神によって成り、神に至るのです。この神に、栄光がとこしえにありますように。アーメン。

이 세상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나오고 그리고 그것은 주님께로 돌아간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3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わたしはアルファであり、オメガである。最初であり、最後である。初めであり、終わりである。」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더라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능히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다는 분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계시지 않나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고 싶어 하세요. 우리를 통해서 일을 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힘이 없어서 그러십니까. 지난 번에 어떻게 배웠습니까. 우리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시는 이유가 우리를 사랑해서에요? 아니면 우리를 미워해서에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를 쓰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음으로 인해서 놀랍고 넘치는 축복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모든 것을 이루어 놓은 것처럼 교만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것을 했다 저것을 했다 하면서 하나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를 내세우는 모습도 많아 봐왔습니다.

다음에 공부하게 될 12장에서도 배우겠습니다만,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꾸어 드리는 것이 되나요?

간단한 문제를 한 번 내보겠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오늘 예배 때 헌금 1만원을 했어요. 그리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거기에 대해서 무언가를 해주셔야 할 의무가 생긴다. 맞아요? 틀려요?

오늘은 내가 좀 큰 기도제목이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은 헌금 10만원을 내야겠다. 돈을 많이 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어주실 의무가 생긴다. 맞아요? 틀려요?

얼마 전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한국에서 제일 돈이 많은 대기업 회장의 재산이 한국 돈 13조원이라고 해요. 잘 감이 안 잡히죠? 아무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로또 같은 것으로 본다면 아무리 부지런히 로또를 산다 하더라도, 평생 동안에 한 번도 1등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대략 계산을 해보았더니만 로또 1등 당첨을 1400번 정도는 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한테, 자기가 가진 전재산이라면서 1000만원을 주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이렇게 돈을 많이 냈으니까 자기 소원을 들어달라고 했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게 자기한테는 큰 돈일지는 모르지만, 어마어마한 돈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게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8조원에 비하면 1000만원은 130만분의 1이에요. 요즘 뭐 1억이라고 해봤자 부자 축에도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8조원에 1000만원이라고 한다면, 1억에 77원입니다.

1억 가진 사람한테 77원 줄 테니까 자기 소원 들어달라고 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지금 장난 하냐고 그러지 않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8조원 정도가 아니라 온 천하를 다 가지신 분이시라면서요. 그런 하나님한테 내가 이렇게 많은 돈을 바쳤으니 내 소원을 들어달라고 해봐야, 그 돈 액수만 가지고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드렸을 때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あなたの宝のあるところ、そこにあなたの心もあるのです。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을 주님 앞에 드렸다고 해도 그것이 오직 내 힘으로 된 것인가요? 아닙니다. 주님께서 모두 역사해주셨기 때문에 벌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수입의 십 분의 일을 바치라는 것은, 아무리 많은 액수라 하더라도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작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을 보시느냐 하면 바로 그 예물에 담긴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이 예물을 드리는 것은 단순히 소원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수입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하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라고 하는 그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1절~19절
“11.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さて、イエスはエルサレムに向かう途中、サマリアとガリラヤの境を通られた。
ある村に入ると、ツァラアトに冒された十人の人がイエスを出迎えた。彼らは遠く離れたところに立ち、
声を張り上げて、「イエス様、先生、私たち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と言った。
イエスはこれを見て彼らに言われた。「行って、自分のからだを祭司に見せなさい。」すると彼らは行く途中できよめられた。
そのうちの一人は、自分が癒やされたことが分かると、大声で神をほめたたえながら引き返して来て、
イエスの足もとにひれ伏して感謝した。彼はサマリア人であった。
すると、イエスは言われた。「十人きよめられたのではなかったか。九人はどこにいるのか。
この他国人のほかに、神をあがめるために戻って来た者はいなかったのか。」
それからイエスはその人に言われた。「立ち上がって行きなさい。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のです。」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저 멀리서 사람들이 소리칩니다.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들은 바로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었습니다. 이 나병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한센병이라고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만,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한센병도 있었겠습니다만,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악성 피부병도 포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되었든 당시 이 나병에 걸리게 되면, 이는 전염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에서는 함께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시 외곽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지금으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할 청도로 비참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목소리를 들으시고는 제사장한테 그 몸을 보이라고 말씀을 하세요. 그 이유는, 당시에도 그 나병이 낫는 경우가 있었는데, 완치되었는지 여부는 제사장이 판단하게 되어 있었거든요. 이는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율법에 규정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예수님이 나병을 앓고 있던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제사장한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다는 것은, 제사장에게 그 몸을 보여서 정결하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 받으라는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그들이 제사장에게로 가는 시점과 병이 나은 시점을 비교해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점입니다.

14절에 보시면, 자신들의 몸을 보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는 아직 낫지 않았어요. 그러면 언제 낫냐 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서 제사장들에게 보이러 가다가 보니 치료함을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록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더라면, 아니, 내 병이 나아야 제사장한테 보이든지 말든지 하지, 아직 낫지도 않았는데 제사장한테 가봤자 뭘하냐 하고 따질 만도 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따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제사장한테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정도의 믿음이 있다는 것도 대단한 것이지요. 그랬더니 가다가 보니까 나음을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감기나 배탈이 아니에요.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바뀔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음을 받은 열 명 중 아홉 명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감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오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당시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인을 사람 취급도 안 했을 정도로 차별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이라면서 그토록 잘난 척을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와 같은 넘치는 축복을 받고서도 예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반면에 자신이 질병에서 해방되었던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서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를 드렸는데, 이를 주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기도를 합니다. 이것을 달라 저것을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는 중요하지요.


마태복음 7장 7절~11절
“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与えられます。探しなさい。そうすれば見出します。たたきなさい。そうすれば開かれます。
だれでも、求める者は受け、探す者は見出し、たたく者には開かれます。
あなたがたのうちのだれが、自分の子がパンを求めているのに石を与えるでしょうか。
魚を求めているのに、蛇を与えるでしょうか。
このように、あなたがたは悪い者であっても、自分の子どもたちには良いものを与えることを知っているのです。それならなおのこと、天におられるあなたがたの父は、ご自分に求める者たちに、良いものを与えてくださらないことがあるでしょうか。

주님은 분명히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주시겠다고 하시잖아요. 그것도 좋은 것으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두 번째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우리에게 주실까요. 1번 즉시, 2번 기타.

네, 제가 문제를 드릴 때 <기타>가 있으면 대부분 그게 답입니다. 하지만 <기타>라고 대답하셨다면 주관식으로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까요.

간단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 마음입니다. 언제 기도에 대해서 응답해 주실 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기도 응답을 늦추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부모가 아무리 자기 아이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3~4살 밖에 안된 아이한테 자동차를 사주겠습니까. 그리고 나이만 먹었다고 차를 사달란다고 사주겠습니까.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해요. 그렇죠. 면허가 필요하죠.


아무리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면허도 따지 않았는데 운전을 하라고 차를 사준다면 이것이 축복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끔찍한 저주나 재앙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자식이 달라는 대로 돈을 펑펑 준다면, 올바로 성장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지요.

로마서 8장 24절~25절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私たちは、この望みとともに救われたのです。目に見える望みは望みではありません。目で見ているものを、だれが望むでしょうか。
私たちはまだ見ていないものを望んでいるのですから、忍耐して待ち望みます。

우리가 있는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없는 것, 그러나 꼭 원하는 것을 주님께 바랍니다. 하지만 이 믿음이 오래가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에이, 그게 말이 돼? 안 들어주실거야……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가복음 11장 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あなたがたが祈り求めるものは何でも、すでに得たと信じなさい。そうすれば、そのとおりになります。

주님은 반드시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믿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이루어 주실 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기다리는 동안에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골로새서 4장 2절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たゆみなく祈りなさい。感謝をもって祈りつつ、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

가끔 보면 기도를 하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그런데 왜 기도를 안 들어주냐는 거예요.


아니, 오늘 말씀도 보세요.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빚진 것이 있어요? 그런 기도는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항상 말씀드리지요? 기도라고 하는 것이 꼭 교회에 나와서 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니에요. 우리가 평소에 길을 가다가도 할 수가 있고, 누워서 자기 전에 할 수가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과 대화를 하는데 격식을 차릴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나 기도에 있어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에 있어서의 졸음은 바로 포기입니다. 안 될 거야. 소용없어…라고 하는 포기는 그야말로 우리의 축복을 막는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가도 졸음이 오면 사탕이나 껌을 씹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잖아요? 기도에 있어서 졸음을 물리치는 것은 감사함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기도를 했는데도 응답을 안 해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시고, 그리고 가장 좋을 때에 응답해주시기 위해서야……라고 생각하면 감사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본에 보면 옛날에 가마솥에 밥을 지을 때 어떻게 해야 맛있는 밥이 되는지에 대한 요령을 짧게 정리해놓은 말이 있어요.

はじめちょろちょろ なかぱっぱ……

이렇게 시작되는 말인데, 그러니까 처음에는 불을 작게 하고 중간 쯤에 가서 강한 불로 끓이라는 말인데, 이 마지막이 흥미롭습니다.

赤子泣いてもふたとるな

이 말은 뭐에요. 아기가 울더라도 뚜껑을 열지 말래요. 그러니까 밥을 다 짓고 난 다음에 뜸을 들여야 하는데, 아기가 배고프다고 운다고 해도 서둘러서 뚜껑을 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밥을 다 망쳐 버리기 때문인 것이지요.

아직 기도 응답이 안 오십니까. 지금 주님께서는 기가 막힌 밥을 짓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울어도 주님이 기다리고 계신 이유는 우리를 미워 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神の力強い御手の下にへりくだりなさい。神は、ちょうど良い時に、あなたがたを高く上げてくださいます。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를 높이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참음으로 기다리며, 지치거나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깨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예비하신 때가 되었을 때,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크게 높임을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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