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6회 주가 쓰시기 위하여
2022년 9월 4일 설교

홍성필 목사
www.kirinmission.com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1절~6절
“1.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マルコの福音書 11章 1節~6節
“1.さて、一行がエルサレムに近づき、オリーブ山のふもとのベテパゲとベタニアに来たとき、イエスはこう言って二人の弟子を遣わされた。
2.「向こうの村へ行きなさい。村に入るとすぐ、まだだれも乗ったことのない子ろばが、つながれているのに気がつくでしょう。それをほどいて、引いて来なさい。
3.もしだれかが、『なぜそんなことをするのか』と言ったら、『主がお入り用なのです。すぐに、またここにお返しします』と言いなさい。」
4.弟子たちは出かけて行き、表通りにある家の戸口に、子ろばがつながれているのを見つけたので、それをほどいた。
5.すると、そこに立っていた何人かが言った。「子ろばをほどいたりして、どうするのか。」
6.弟子たちが、イエスの言われたとおりに話すと、彼らは許してく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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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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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창립 9주년 되는 기념일을 맞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가 쓰시기 위하여” 主に用いられるために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의 인도 하에 애굽을 탈출하고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성전 즉 교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우리가 아는 성전을 광야 땅에 지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이동식 장막을 지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면 이동식이니까 큰 문제는 없겠구나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니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우선 성막을 지으려고 해요. 그러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건물을 지어야겠습니다만, 그것만이 아니지요. 건물 내장과 외장도 만들어야 하고, 제사장이 입을 옷도 만들어야 하고, 제사장이 성막에서 사용할 기구들도 만들어야 합니다.

내장과 외장에는 다양한 무늬도 넣어야 하고 사용하는 기구들도 대단히 정교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우선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어떤 사람들로 살아왔습니까. 그렇죠.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그것도 몇 년 동안이나 노예로 살아왔냐 하면 400년 가까이를 노예로서 살아왔어요. 더구나 애굽은 자기 나라가 아니에요. 외국 땅에서 400년 동안이나 그것도 노예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400년이라고 하면 노예의 자식은 노예이고, 노예의 부모도 노예입니다. 그들은 인권도 없고 주인의 재산 중의 일부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노예한테는 꿈이나 희망이 없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주인 밑에서 주인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일들을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 성막을 짓는 일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한국이나 일본을 보면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 때 옛날 옷들을 검증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고 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전문가들이 만들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그게 100프로 정확하다고 하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성막을 만들려고 해도 무슨 자료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까지 성막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어디 성막 뿐인가요. 거기서 사용하는 여러 장식이나 도구 같은 것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잖아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고, 야곱이 열두 형제를 낳았습니다. 그 동안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물을 바친 적은 있었지만, 성전을 세운 적도 없고 성막을 지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애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를 하고 있을 때에는 편안한 삶을 누렸겠지만, 요셉이 죽고 난 다음에는 어느 날부터 노예로 전락하게 되어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에게 무슨 지식이 있고 기술이 있었겠습니까.

누구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릅니다. 에이, 그래도 노예도 여러가지가 있었겠지. 그래서 다양한 기술을 가진 노예들도 많았을 거야. 그런 사람들을 택해서 여러 장식이나 옷이나 여러 물건들을 만들도록 했겠지……여러분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성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35장 30절~35절
“30.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31.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32.금과 은과 놋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고안하게 하시며
33.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34.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35.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モーセはイスラエルの子らに言った。「見よ。主は、ユダ部族の、フルの子ウリの子ベツァルエルを名指して召し、
彼に、知恵と英知と知識とあらゆる仕事において、神の霊を満たされた。
それは、彼が金や銀や青銅の細工に意匠を凝らし、
はめ込みの宝石を彫刻し、木を彫刻し、意匠を凝らす仕事をするためである。
また、彼の心に人を教える力をお与えになった。彼と、ダン部族のアヒサマクの子オホリアブに、そのようにされた。
主は彼らをすぐれた知恵で満たされた。それは彼らが、あらゆる仕事と巧みな設計をなす者として、彫刻する者、設計する者、青、紫、緋色の撚り糸と亜麻布で刺繡する者、また機織りをする者の仕事を成し遂げるためである。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출애굽기 25장 이후에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모세와 함께 사십 일을 있으면서 모세에게 모두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을 자신이 보았다고 해서 정확히 전달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명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해서 지혜와 총명과 지식(知恵と英知と知識)으로 일을 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걸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 있었다고 해봐야 무엇이 없으면 안 됩니까. 그렇죠. 만들 재료가 있어야 하겠지요. 아무리 기술이 있다고 해도 만들 재료가 없다면 무엇으로 만들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서도 모두 예비해 두셨습니다.


출애굽기 36장 1절~7절
“1.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2.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3.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으므로
4.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중지하고 와서
5.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6.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치니
7.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ベツァルエルとオホリアブ、および、聖所の奉仕のあらゆる仕事をする知恵と英知を主に授けられた、心に知恵ある者はみな、すべて主が命じられたとおりに仕事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
モーセは、ベツァルエルとオホリアブ、および主が心に知恵を授けられた、すべて心に知恵ある者、またその仕事をするために進み出ようと、心を動かされた者をみな呼び寄せた。
彼らは、聖所を造る奉仕の仕事のためにイスラエルの子らが持って来たすべての奉納物を、モーセから受け取った。しかしイスラエルの子らは、なおも朝ごとに、進んで献げるものを彼のところに持って来た。
そこで、聖所のすべての仕事をしていた知恵のある者はみな、それぞれ自分がしていた仕事から離れてやって来て、
モーセに告げて言った。「民は何度も持って来ます。主がせよと命じられた仕事のためには、あり余るほどのことです。」
それでモーセは命じて、宿営中に告げ知らせた。「男も女も、聖所の奉納物のためにこれ以上の仕事を行わないように。」こうして民は持って来るのをやめた。
手持ちの材料は、すべての仕事をするのに十分であり、あり余るほどであった。


자, 이제 성막을 지으려고 하니 예물을 가져오라고 백성들에게 말을 합니다. 여기에는 무슨 강제도 없고 강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자원해서 가져오라고만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다고 합니까. 백성들이 가져온 것이 차고 넘쳤다고 성경에 기록합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일하는 사람들이 하던 일들을 멈추고 모세한테 와서 하는 말이, 백성들이 너무 많이 가져오니까 이제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해달라고 할 정도로 차고 넘쳤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가져온 사람들이 무슨 빚을 내서 가져 왔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예비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1장 1절~3절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2.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3.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主はモーセに言われた。「わたしはファラオとエジプトの上に、もう一つのわざわいを下す。その後で彼は、あなたがたをここから去らせる。彼があなたがたを去らせるときには、本当に一人残らず、あなたがたをここから追い出す。
さあ、民に言って聞かせよ。男は隣の男に、女は隣の女に、銀の飾りや金の飾りを求めるように。」
主は、エジプトがこの民に好意を持つようにされた。モーセその人も、エジプトの地でファラオの家臣と民にたいへん尊敬された。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애굽 왕 바로가 너희들을 내보내게 될 텐데, 그 때에는 애굽 사람들한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고 하세요. 그럼 그 사람들이 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400년 동안 살던 노예가 이제 애굽을 나가는데, 그들이 애굽 사람들한테 귀금속 같은 보물을 달라고 하면 그들이 준대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12장 35절~36절
“35.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イスラエルの子らはモーセのことばどおりに行い、エジプトに銀の飾り、金の飾り、そして衣服を求めた。
主はエジプトがこの民に好意を持つようにされたので、エジプト人は彼らの求めを聞き入れた。こうして彼らはエジプトからはぎ取った。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미리 말을 했겠지요. 이제 애굽을 나갈 때에는 애굽 사람들한테 은금 패물과 의복을 달라고 해봐. 그럼 줄 거야.

이 말을 믿은 사람들은 애굽 사람들한테 구했을 것이요, 믿지 않은 사람들은 안 구했겠지요. 그런데 애굽 사람들한테 구했더니 어떻게 했대요? 예, 그들이 구하는 대로 애굽 사람들이 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당시 머리가 좀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상하다. 애굽을 나가면 광야가 펼쳐져 있을 텐데, 왜 이런걸 가지고 가라고 하실까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무인도로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거기 가서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돈이나 귀금속인가요? 아니요. 그런 것은 오히려 있어봤자 걸리적거릴 뿐입니다. 거기서 필요한 것은 물과 식량이지 귀금속들이 아니거든요. 광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이나 금은 사람들과 거래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자기들 말고는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은금 패물을 가지고 나가게 하셨던 이유는 바로 이처럼 광야에서 하나님을 위한 성막 즉 성전을 건축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미리 이처럼 예비해 주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와 같이 예비해주시는 역사는 신약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내용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은 마가복음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1장 1절~6절
“1.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マルコの福音書 11章 1節~6節
1.さて、一行がエルサレムに近づき、オリーブ山のふもとのベテパゲとベタニアに来たとき、イエスはこう言って二人の弟子を遣わされた。
2.「向こうの村へ行きなさい。村に入るとすぐ、まだだれも乗ったことのない子ろばが、つながれているのに気がつくでしょう。それをほどいて、引いて来なさい。
3.もしだれかが、『なぜそんなことをするのか』と言ったら、『主がお入り用なのです。すぐに、またここにお返しします』と言いなさい。」
4.弟子たちは出かけて行き、表通りにある家の戸口に、子ろばがつながれているのを見つけたので、それをほどいた。
5.すると、そこに立っていた何人かが言った。「子ろばをほどいたりして、どうするのか。」
6.弟子たちが、イエスの言われたとおりに話すと、彼らは許してくれた。


이제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이 다 차갑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오르려고 하시는데,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고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21장 4절~5절에 나와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절~5절
“4.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このことが起こったのは、預言者を通して語られたことが成就するためであった。
「娘シオンに言え。『見よ、あなたの王があなたのところに来る。柔和な方で、ろばに乗って。荷ろばの子である、子ろばに乗って。』」

이 예언은 스가랴서에 기록합니다.
스가랴 9장 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ゼカリヤ書 9章9節
娘シオンよ、大いに喜べ。娘エルサレムよ、喜び叫べ。見よ、あなたの王があなたのところに来る。義なる者で、勝利を得、柔和な者で、ろばに乗って。雌(め)ろばの子である、ろばに乗って。

이제 왕이 예루살렘에 임하시게 될 텐데 그 때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다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은 새끼 나귀를 타시겠다고 하시는데, 그 방법이 상당히 특이하지 않습니까. 저기 마을에 가면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가 있을 텐데, 그 나귀를 데려 오래요.

여러분, 이게 뭐예요? 그렇죠. 도둑이죠. 잘못하면 큰 일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왜 나귀를 데려가려고 하냐 하고 누군가가 물으면 뭐라고 말하래요? 예, “주가 쓰시겠다” 라고 하면 가져가게 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 제자 중 둘을 보내셨다고 하는데, 이 제자 이름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분명 예수님께서 가장 신뢰하고 있는 제자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렇잖아요. 야, 이거 잘못하면 큰일나겠다. 그냥 돌아가자……라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강한 믿음을 가지고 가보니까 정말 예수님 말씀대로 어린 나귀가 매여 있어요. 그래서, 오, 정말 저기 있네 하고 가서 풀어서 데려가려고 하니까, 거기 서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그걸 왜 가져가려고 하냐고 묻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이 그 나귀의 주인이었겠지요. 그래서 설마 혹시나 하고 말하기를 “저…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는데요…?” 라고 말하자, 놀랍게도 알았다고 데려가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경우를 보면 공통점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얻은 은금 패물과, 신약에서 제자들이 얻은 새끼 나귀,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주님이 쓰시기 위해서 예비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주님이 쓰시기 위해서 예비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하는 예물을 예비해 두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다른 좋은 동물들도 많았을 텐데 왜 굳이 어린 나귀를 택하셨습니까.

마가복음 11장 2절을 다시 봅니다.

마가복음 11장 2절
“2.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2.「向こうの村へ行きなさい。村に入るとすぐ、まだだれも乗ったことのない子ろばが、つながれているのに気がつくでしょう。それをほどいて、引いて来なさい。


여기서 본다면 나귀가 어린 지 아닌지 보다도 더 큰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라는 점입니다.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를 선호하는 경향은 요즘 사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보면, 신입사원과 경력사원, 어느 쪽이 좋겠습니까. 아무래도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재는 경력사원이겠지요.

사실 신입사원을 뽑으면 회사 쪽에서 본다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전문대 출신이라면 사회에서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지식들을 배워 오기 때문에 곧바로 써먹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제일 어려움이 많은 신입사원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4년제 대학 출신자예요. 월급은 많이 줘야 하는데 회사에서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때만 하더라도 전화 받는 것, 팩스 보내는 것부터 가르쳐야 해요. 양복을 입는 방법, 명함을 주고 받는 방법, 인사를 하는 방법까지를 다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럼 공짜로 가르쳐주나요? 아니요. 월급을 꼬박꼬박 주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걸 다 가르쳐줬다고 곧바로 월급에 걸맞는 일을 해오나요?

생각해보세요. 신입사원이 몇 개월 교육 받았다고 계약을 따 오겠어요. 뭘 해 오겠어요. 오히려 사고라도 안 치면 감사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되는 기업이면 가능한 한 신입사원을 뽑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처음에는 쓸모가 없더라도 하나씩 가르쳐서 키워가면 그 사람은 정말 그 회사가 원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동차도 그렇다고 하지요. 아무리 중고차라 하더라도 주인이 하나였는지, 아니면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는지에 대해서 성능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운전하는 습관에 차이가 있는데, 주인이 여러 번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습관들이 범벅이 되어서 자동차가 금방 망가진다는 것이에요.

지금 이 시대에 주님이 쓰시기 위해서 예비된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오늘 성경에 나오는 나귀처럼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어떤 분들은 긴장하실지도 몰라요. 어? 난 예수님 믿기 전에 다른 종교를 믿었었는데…… 그럼 나는 예수님의 어린 나귀가 되지 못하나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ですから、だれでもキリストのうちにあるなら、その人は新しく造られた者です。古いものは過ぎ去って、見よ、すべてが新しくなりました。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에요. 주님이 쓰시기 위해 예비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앞서 출애굽기에 보시면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누구한테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오게 하셨고, 또 누구는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채워주심으로 인해서 그 모인 물건들을 통해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떤 분은 아, 헌금 많이 내라는 뜻이겠구나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교회에 있어서 재정은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재물만 모인다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재물이 없으면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나요? 아니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 몸이 있고, 마음이 있고, 머리가 있고, 그리고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몸과 머리로 주님을 섬기고,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으로도 주님을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를 쓰시기 위해 채워주신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주님을 위해 쓰임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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