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5회 높이시는 주님
2022년 8월 28일 설교 - 로마서 강해 98

홍성필 목사
www.kirin.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9절~10절
“9.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1章9節~10節
“9.ダビデもこう言っています。「彼らの食卓が、彼らにとって罠となり、落とし穴となり、つまずきとなり、報いとなりますように。
10.彼らの目が暗くなり、見えなくなりますように。その腰をいつも曲げておいて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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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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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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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98번째 시간으로서 “ 높이시는 주님 ” 高く上げてくださる主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다시 한 번 보실까요?

로마서 11장 9절~10절
“9.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1章9節~10節
"9.ダビデもこう言っています。「彼らの食卓が、彼らにとって罠となり、落とし穴となり、つまずきとなり、報いとなりますように。
10.彼らの目が暗くなり、見えなくなりますように。その腰をいつも曲げておいてください。」"


이해를 돕기 위해서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판을 보시겠습니다.

현대인의 성경판 로마서 11장 9절~10절
“9.다윗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의 식탁이 올가미와 덫과 거치적거리는 장애물과 죄값을 받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10.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어 있게 하소서.'”

여기서의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어떠십니까. 그들의 식탁이 올가미와 덫과 거치적거리는 장애물과 죄값을 받는 자리가 되게 해달라는 말씀,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시고 그들의 등이 항상 굽어 있게 해달라고 하는 말씀, 이는 어떻게 보더라도 축복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습니까.

축복은 커녕 저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말을 누가 하고 있냐 하면, 다윗이 하고 있고, 그리고 이 글을 바울이 인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윗이 이방인인가요? 바울이 이방인인가요? 아닙니다. 다윗과 바울은 이방인이 아니라 정통 유대인입니다. 다윗은 무슨 지파지요? 예, 다윗은 유다지파지요. 그렇다면 바울은 무슨 지파였습니까. 그렇죠. 베냐민 지파입니다.

이 둘 모두가 정통 유대인, 이스라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대단히 험한 말을 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험한 말을 하고 있는지를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9절입니다.

로마서 11장 9절
“9.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9.ダビデもこう言っています。「彼らの食卓が、彼らにとって罠となり、落とし穴となり、つまずきとなり、報いとなりますように。


이는 시편 69편 22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69편 22절
“22.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彼らの前の食卓は罠となり 栄えるときに 落とし穴となりますように。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상은 다른 것 없습니다. 밥상이 최고의 상이에요. 제가 이 몇 주 동안 이 사실을 얼마나 실감했는지 모릅니다.

이 밥상에 대한 고마움을 다윗은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 중에서 아마 가장 유명하다고 하면 시편 23편이 아닐까 합니다.

시편 23편 5절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私の敵をよそに あなたは私の前に食卓を整え 頭に香油を注いでくださいます。 私の杯は あふれています。


저기 지금 내 원수가 내 눈 앞에서 나를 죽이려고 식식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당장 나가서 목숨을 걸고 싸우든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이라도 쳐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은 어떻게 하신대요? 그렇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밥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행위는 귀한 식사 자리 같은 곳에서 극진한 대접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니, 지금 내 원수가 저 앞에 있는데, 태연하게 밥, 그것도 그냥 밥이 아니라, 말하자면 일류 코스요리를 먹으라고 하시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하나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어서 빨리 저 원수를 물리쳐야 하잖아요!

이렇게 소리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 하실까요.

출애굽기 14장 14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主があなたがたのために戦われるのだ。あなたがたは、ただ黙っていなさい。」


아, 정말 얼마나 감동입니까. 저 눈 앞에 원수가 있어? 걱정하지 마. 내가 싸울 거야. 내가 해결할 거야. 그러니까 너는 걱정하지 말고, 자 어서 내가 차려 준 최고급 코스요리를 먹도록 해.

어떠십니까. 이 얼마나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이십니까.

블레셋 용사 골리앗을 앞에 두고 청년 다윗은 소리칩니다.

사무엘상 17장 47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ここに集まっているすべての者も、剣(つるぎ)や槍がなくても、主が救いをもたらすことを知るだろう。この戦いは主の戦いだ。主は、おまえたちをわれわれの手に渡される。」

여러분, 전쟁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시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크나큰 승리를 가져다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학자들은 이 밥상에 대해서 구원이라고 해석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밥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생명의 근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좀 이상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아무리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몰면서, 좋은 옷을 입는다고 해도, 밥 한끼를 먹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굶어 죽고 맙니다.

마찬가지에요.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아무리 봉사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구원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がいのちのパンです。わたしのもとに来る者は決して飢えることがなく、わたしを信じる者はどんなときにも、決して渇くことがありません。

요한복음 6장 57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生ける父がわたしを遣わし、わたしが父によって生きているように、わたしを食べる者も、わたしによって生きるのです。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わたし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いのちなのです。わたしを通してでなければ、だれも父のみもとに行くことはできません。

이처럼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힘을 얻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하듯, 오로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이 유일하게 구원을 얻는 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본문 중에서 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1장 9절
“9.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9.ダビデもこう言っています。「彼らの食卓が、彼らにとって罠となり、落とし穴となり、つまずきとなり、報いとなりますように。

이 본문에 의하면 다윗이 말하기를 그들의 밥상, 즉 이스라엘 사람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현대인의 성경을 인용하면,

“……그들의 식탁이 올가미와 덫과 거치적거리는 장애물과 죄값을 받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아니, 생명의 밥상, 식탁이 은혜가 되고 힘이 되고 축복이 되어야 할 텐데, 올가미가 되고 덫이 되고 장애물이 되고 죄값을 받는 자리가 되게 해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식탁 즉 밥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했었지요? 바로 힘의 근원, 구원으로 이르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예수님이 덫이 되고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이게 말이 되는 것일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앞에 예수님이 오셨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참 기쁘고 반갑고 감사하겠지요.

저는 한 가지 확신이 있습니다. 저는 꿈에서나 환상으로나 예수님을 본 적은 없습니다. 뭐 그림으로는 많이 봤지만 그게 정말 예수님 모습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 마치고 하나님 나라에 가면 분명히 단번에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건 제가 믿음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함께 했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긴가 민가 하면 어떻게 해요? 그렇습니다. 손에 못 자국이 있으신지 확인을 해보면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를 의심하는 도마 앞에 나타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7절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それから、トマスに言われた。「あなたの指をここに当てて、わたしの手を見なさい。手を伸ばして、わたしの脇腹に入れなさい。信じない者ではなく、信じる者になりなさい。」

성경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두 손에는 여전히 못 자국이 있고, 그리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게 되면 예수님 손바닥에는 여전히 못 자국이 있지 않겠습니까.

예전에는 그 기쁨이 와 닿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 감동을 좀 알 것도 같습니다. 내가 참 힘들고 어려울 때, 바로 그 때 그 순간 함께 해주신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자,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뭐라고 되어 있다고요? 예수님이 덫이 되고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구원으로 이르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이 덫이 되거나 장애물이 되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사복음서를 보면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인으로 오셨습니까. 아니면 이방인으로 오셨습니까. 예, 유대인으로 오셨지요.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계보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 볼 때 무슨 지파로 오셨지요? 예, 유다 지파로 오셨습니다. 유다 지파는 또 누가 있었습니까. 그렇죠. 다윗 왕 또한 유다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누가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만약에 예수님을 못 박은 주범이 로마 사람들이나 헬라 사람들 같은 이방인이었다고 하면 말은 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끝까지 지키려고 했지만,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서 강제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단순 명쾌 하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어떻습니까.


마가복음 3장 6절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パリサイ人たちは出て行ってすぐに、ヘロデ党の者たちと一緒に、どうやってイエスを殺そうかと相談し始めた。

요한복음 19장 6절~7절
“6.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祭司長たちと下役(したやく)たちはイエスを見ると、「十字架につけろ。十字架につけろ」と叫んだ。ピラトは彼らに言った。「おまえたちがこの人を引き取り、十字架につけよ。私にはこの人に罪を見出せない。」
ユダヤ人たちは彼に答えた。「私たちには律法があります。その律法によれば、この人は死に当たります。自分を神の子としたのですから。」


이 기록만 보더라도 어떻습니까.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을 비롯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난리를 쳤습니다.

정작 이 말을 들은 당시 총독 빌라도는 어땠을까요. 유대인인 예수를 죽일 수가 있다고 해서 기뻐 했을까요?

요한복음 19장 8절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ピラトは、このことばを聞くと、ますます恐れを覚えた。

총독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역시 요한복음 19장 12절과 16절에 의하면 로마인인 총독 빌라도는 어떻게든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힘을 썼으나 결국 그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리새인이나 대제사장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불량배들이었습니까. 못 배운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니,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니요. 그들은 자신들이 경건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부럽지 않을 만큼 배운 사람들이었으며,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자기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1절~12절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パリサイ人は立って、心の中でこんな祈りをした。『神よ。私がほかの人たちのように、奪い取る者、不正な者、姦淫する者でないこと、あるいは、この取税人のようでないことを感謝します。
私は週に二度断食し、自分が得ているすべてのものから、十分の一を献げております。』


이를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인의 성경판 누가복음 18장 11절~12절
“11.바리새파 사람은 따로 서서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기꾼도 아니고 정직하지 못하거나 간음하는 사람도 아니며 또 이 세무원과도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12.나는 일 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바치고 있습니다.' 하고 기도했으나”

정말 경건하지 않습니까. 남을 속인 적도 없고 윤리적으로도 잘못을 저지르기는커녕, 믿음 생활도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다……이렇게 기도하고 있어요. 대단히 경건한 사람이니까 이 말에는 거짓이 없겠지요. 정말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대제사장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요. 바리새인이나 대제사장이나 모두가 다 성경에 대해서 박식 했을 것이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습니다.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알고 믿음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예수님을 의지하면 진정한 기쁨과 은혜로 충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정한 구세주인 예수님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교만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높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마태복음 6장 5절
“5.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また、祈るとき偽善者たちのようであってはいけません。彼らは人々に見えるように、会堂や大通りの角に立って祈るのが好きだからです。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彼らはすでに自分の報いを受けているのです。


마태복음 23장 5절~7절
“5.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彼らがしている行いはすべて人に見せるためです。彼らは聖句を入れる小箱を大きくしたり、衣の房を長くしたりするのです。
宴会では上座(かみざ)を、会堂では上席(じょうせき)を好み、
広場であいさつされること、人々から先生と呼ばれることが好きです。

이는 모두 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이른바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잘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경건해 보이려고, 믿음 좋아 보이려고 애를 무척이나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높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미 자기들이 받을 상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큽니까. 아니면 사람이 주는 상이 큽니까. 이는 비교를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을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교만이 마음에 꽉 차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중에서 10절입니다.

로마서 11장 10절
“10.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0.彼らの目が暗くなり、見えなくなりますように。その腰をいつも曲げておいてください。」

이는 시편 69편 23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69편 23절
“23.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彼らの目が暗くなり 見えなくなりますように。 その腰がいつもよろけますように。

그렇습니다. 내가 가장 옳고, 내가 가장 잘났다는 교만이 우리 마음 속에 꽉 차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집니다. 나 외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틀렸어요. 그거야말로 눈이 흐려 보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허리가 굽어 항상 떨리면 어떻게 됩니까. 싸움은 고사하고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보십시오. 온통 자기가 옳고 남은 틀렸다는 사람들 뿐입니다. 여러분, 교통사고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역주행 아니겠습니까. 특히나 고속도로에서 역주행을 하게 되면 그야말로 대형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역주행 하는 차가 한 대만 있어도 끔찍한 일인데, 나 말고 다른 차들이 다 역주행 하고 있어요. 나만 제대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러면 그건 어떤 경우라고 하겠습니까. 그렇죠. 바로 내가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요. 그렇죠. 대형사고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면 뭘 합니까.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많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차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고 남은 인생은 마치 등이 굽고 흔들리는 것처럼 불쌍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장 믿음이 좋고 경건하다면서 자기를 높이는 사람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8절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自分自身を推薦する人ではなく、主に推薦される人こそ本物です。

여러분, 의로운 지 의롭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구원받을 만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도 나 자신이 아닙니다.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 입에서, 내 행동에서 교만이 나옵니까. 거만함이 나옵니까. 그 순간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손바닥에 못을 박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함 때문에 얼마나 더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더 박아야 직성이 풀리겠습니까.

누가복음 14장 11절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なぜなら、だれでも自分を高くする者は低くされ、自分を低くする者は高くされるからです。」


우리는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낮아져야 합니다. 특히나 교회에도 보면 그런 분들 계십니다. 내가 모태 신자다, 우리 집안이 몇 대째 기독교 집안이다, 몇 대째 목사 집안, 장로 집안이다……, 그리고 내가 성경을 얼마나 읽었다, 기도를 하루에 얼마나 한다, 금직을 얼마나 했다거나, 무슨 은사를 얼마나 받았다. 이런 말들이 왜 자기 입에서 나옵니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잠언 27장 2절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自分の口でではなく、ほかの者にあなたをほめさせよ。自分の唇でではなく、よその人によって。

내 칭찬이 주님으로부터 나오고 이웃으로부터 나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내 입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손과 발에 대한 못질입니다. 망치질인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彼がわたしを愛しているから わたしは彼を助け出す。 彼がわたしの名を知っているから わたしは彼を高く上げる。

야고보서 4장 10절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主の御前でへりくだりなさい。そうすれば、主があなたがたを高く上げてくださいます。

베드로전서 5장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神の力強い御手の下にへりくだりなさい。神は、ちょうど良い時に、あなたがたを高く上げてくださいます。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겸손해짐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높임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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