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1회 말씀과 순종
2022년 7월 31일 설교 - 로마서 강해 94

홍성필 목사
www.kir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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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9節
“9.しかし、もし神の御霊があなたがたのうちに住んでおられるなら、あなたがたは肉のうちにではなく、御霊のうちにいるのです。もし、キリストの御霊を持っていない人がいれば、その人はキリスト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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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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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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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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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94번째 시간으로서 “말씀과 순종” みことばと従順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이제 로마서도 중반을 넘어서서 종반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만, 이 시점에서 잠시 복습을 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오늘은 로마서 강해입니다만, 로마서에서의 성경 인용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서 강해인 이유는, 로마서 길목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해왔던 내용을 정리해보고, 그리고 이제 우리가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선 로마서에서 자주 등장한 이스라엘 사람, 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도에 대해서 보았으면 합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가 지금 우리 한국사람으로서 살아가기도 바쁜데, 유대인에 대해서까지 알아야 하냐 하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았지요?


우리는 지금 저기 먼 나라, 중동에 있는 이스라엘이 문제가 아닙니다. 육적인 유대인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문제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느냐 하면, 유대인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가리키고 이방인은 믿음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이해를 해야지만 우리가 올바로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 즉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수가 많아서도 아닙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あなたがたがわたしを選んだのではなく、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選び、あなたがたを任命しました。それは、あなたがたが行って実を結び、その実が残るようになるため、また、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父に求めるものをすべて、父が与えてくださ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우리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한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언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에베소서 1장 4절~5절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すなわち神は、世界の基が据えられる前から、この方にあって私たちを選び、御前に聖なる、傷のない者にしようとされたのです。
神は、みこころの良しとするところにしたがって、私たちを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ご自分の子にしようと、愛をもってあらかじめ定めておられました。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아니, 이 땅이 생겨나기 전부터, 온 천지와 만물이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에 대한 계획을 세워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에 대한 계획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인가요? 우리의 경우를 보면 어떻습니까. 우리도 계획을 세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무엇을 못하느냐 하면, 계획을 스스로 이루지는 못합니다.

잠언 16장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人は心に自分の道を思い巡らす。しかし、主が人の歩みを確かにされる。

우리가 계획을 세운다 하더라도 이를 인도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는 바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계획을 아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무엇이든지 기도를 하면 다 이루어진다. 금식하고 기도하면 병도 치료받아 건강해지고, 가난에서 벗어나서 부자가 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네, 뭐, 그게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다면 그게 전부인가요?

우리는 종종, 특히 한국 교회에 보면 기도 만능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저 금식하고 기도하기만 하면 병이 낫고 문제가 해결된다……그래서 내가 어떻게 기도를 했더니, 얼마나 금식을 했더니 병이 나았다……같은 간증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빠진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에 대한 기록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인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성경도 모르고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나요?

저는 원고를 찾아보니까 지난 1월이었습니다.


지난 1월 23일 때 이런 말씀을 드렸었어요.

“성경도 모르면서 어떻게 진정한 기도를 드릴 수가 있고,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가 있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성경을 알고 해야지 성경을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기도를 합니까. 성경을 알지 못하면 기도도 못합니다.

이는 저의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에요.

잠언 28장 9절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耳を背けておしえを聞かない者は、その祈りさえ忌み嫌われる。

이는 무슨 뜻입니까.

이 구절을 새번역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새번역 성경 잠언 28장 9절
“귀를 돌리고 율법을 듣지 않으면, 그의 기도마저도 역겹게 된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율법 즉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그의 기도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역겹게 생각하신다, 아주 싫어하신다. 전혀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기도원에 가면 꼭 기도할 때 성경책을 들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그 책 내용은 읽지 않고 맨날 들고 흔들면서 기도를 합니다. 아니, 성경이 무슨 아령입니까. 운동기구에요?

그리고 들지는 않더라도 기도할 때 꼭 앞에 두고 기도를 해요. 만약에 그 이유가 왠지 성경책을 앞에 두고 기도를 하게 되면 더 잘 들어주실 것 같고, 응답을 빨리 받을 것 같아서 그렇게 기도를 하신다면, 그건 우리의 믿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마음이 든다면 그 순간 성경책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무엇이 되어 버릴 수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를 할 때에는 꼭 십자가를 보고 기도를 해야지 된다는 생각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순간 우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시면 법궤 또는 언약궤라고 하는 상자가 등장하지요. 이 안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돌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돌판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십계명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법궤는 이 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었던 만나가 든 항아리와,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를 상징하는 싹이 난 아론의 나무 지팡이와 함께 4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이 법궤에는 하나님의 임재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4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졌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장로들이 그 법궤를 전쟁터로 가져와서 싸우면 우리가 이길 것이라면서, 그걸 낑낑 매고 가지고 와서 전쟁을 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니, 어떻게 되어야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법궤를 가지고 와서 전쟁을 하게 되었다면 당연히 큰 승리를 거두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사무엘상 4장에 보시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사무엘상 4장 10절~11절
“10.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こうしてペリシテ人は戦った。イスラエルは打ち負かされ、それぞれ自分たちの天幕に逃げ、非常に大きな打撃となった。イスラエルの歩兵三万人が倒れた。
神の箱は奪われ、エリの二人の息子、ホフニとピネハスは死んだ。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큰 승리는 커녕 완전히 패배하고 전사자가 3만명이나 나왔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법궤를 가지고 왔던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은 죽임을 당했고, 그들이 그토록 아끼던 법궤는 적군한테 빼앗겨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법궤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졌어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후를 보면 여전히 법궤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군은 패배해버린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법궤를, 믿음으로 섬기지 않고, 단순한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를 보면 수많은 우상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 때처럼 바알이나 아세라 같은 우상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우상이냐 하면, 바로 기도라는 우상, 금식이라는 우상입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성경이라는 우상, 더 나아가 십자가라는 우상, 교회라는 우상, 목사라는 우상, 그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께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이라는 우상, 예수님, 성령님이라는 우상까지도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이라는 우상, 예수님, 성령님이라는 우상이라는 게 도대체 뭐야, 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오해하지 마세요. 자칫하면 제가 이상한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니까 서둘러 설명을 하겠습니다만, 내가 아는 하나님은 이렇다. 내가 아는 예수님, 성령님은 이렇다 하는 식으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내 버리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에 의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도 제대로 모르면서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내 머리 속으로 하나님, 예수님을 만들어버린다면 이것이 우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거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이는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경 말씀에 붙어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되겠습니다만, 성경에서 멀어지는 순간,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당이나 미신처럼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어떤 분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에도 기도를 했더니 병이 나았다. 또는 기도 응답을 받았다. 그럼 그것도 미신이냐……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것을 미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주님께서 능히 치료해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기도에 응답을 해주셨다고 믿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11장 24절~26절
“24.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汚れた霊は人から出て行くと、水のない地をさまよって休み場を探します。でも見つからず、『出て来た自分の家に帰ろう』と言います。
帰って見ると、家は掃除されてきちんと片付いています。
そこで出かけて行って、自分よりも悪い、七つのほかの霊を連れて来て、入り込んでそこに住みつきます。そうなると、その人の最後の状態は、初めよりも悪くなるのです。」

그 사람에게 있었던 마귀 사탄이 나갔어요. 주님의 능력으로 나갔는지, 아니면 어쩌다가 그냥 나갔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나갔어요.

그런데 이 귀신이 나가서 떠돌다가 보니까 역시 내가 있던 곳이 좋았다. 구관이 명관이야. 다시 그 사람한테로 돌아가자 하고 가보았더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좋은 뜻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청소되었다는 것은 그 집이 비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주인이 없었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장식이 되어 있었다는 것은 주인이 없이 장식, 그러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좋은 줄 알고 꾸며 놓았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이것을 누가 좋아했다는 것입니까. 그렇죠 귀신이 좋아했습니다. 얼마나 좋아했냐 하면, 자기 혼자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갔더니, 그 사람의 형편이 예전보다도 훨씬 더 나빠졌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교회를 가끔 병원과 같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뭐, 그 심정은 알 수 있어요. 몸이 아프거나 아니면 마음이 아플 때에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치료받기 위해 가는 곳이 교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감으로 해서 치료가 되면 이제 더 이상 병원에 갈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パリサイ人たちが、神の国はいつ来るのかと尋ねたとき、イエスは彼らに答えられた。「神の国は、目に見える形で来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見よ、ここだ』とか、『あそこだ』とか言える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見なさい。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ただ中にあるのです。」

에어포스 원. 공군 1호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로 대통령 전용기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 전용기는 항상 공군 1호기인가 하면,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공군 1호기가 되는가 하면, 대통령이 탔을 때 그 비행기가 공군 1호기가 되는 것이지, 대통령이 타지 않았다면 그 비행기는 아무리 크고 호화로운 비행기라 하더라도 공군 1호기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서 우리 몸에서 나쁜 바이러스가 빠져나갔다면 이제 더 이상 병원에는 갈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서 마귀 사탄이 나갔다고 하더라도, 우리 마음을 비워둔 상태로 있다면 다시 그 악한 마귀가 돌아와 더욱 심각한 상태가 되고 만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평소부터 우리 주님을 우리 마음 안으로 모셔 들여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길이 되시고, 우리의 진리 되시고, 그리고 생명 되신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삼아서 우리 안에 가득 채웠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예수님을 우리 안에 채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유일한 하나님 말씀, 예수님 말씀인 성경 말씀으로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가장 기뻐하십니까.

사무엘상 15장 22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サムエルは言った。「主は、全焼のささげ物やいけにえを、主の御声に聞き従うことほどに喜ばれるだろうか。見よ。聞き従うことは、いけにえにまさり、耳を傾けることは、雄羊の脂肪にまさる。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에요. 순종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순종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 말씀을 알아야 순종을 하든지 복종을 하든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이 순종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최초의 인류를 창조하셨던 하나님께서도 아담과 하와에게 바라셨던 것은 단 하나, 순종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하나의 율법, 단 하나의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고는, 하나님께서 금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불순종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누가 필요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이와 같은 불순종의 사슬을 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自らを低くして、死にまで、それも十字架の死にまで従われました。

여러분,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계획을 짜고 난 다음에 이것을 하나님께 이대로 해달라고 강요하는 것이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신 계획에 순종하겠다는 고백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기도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만 우리 마음에 모셔 오고, 예수님 말씀이신 성경 말씀으로 우리를 채움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이 하나님 나라가 되고, 우리가 올바로 주님의 계획에 따라 순종할 수 있게 되어, 예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길을 따라 구원에 이르고, 마침내 천국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이르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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