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4회 하나님의 의를 아는 지식
2022년 6월 12일 설교 - 로마서 강해 87

홍성필 목사
www.kirin.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절~4절
“1.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10章1節~4節
“1.兄弟たちよ。私の心の願い、彼らのために神にささげる祈りは、彼らの救いです。
2.私は、彼らが神に対して熱心であることを証ししますが、その熱心は知識に基づくものではありません。
3.彼らは神の義を知らずに、自らの義を立てようとして、神の義に従わなかったのです。
4.律法が目指すものはキリストです。それで、義は信じる者すべてに与えられる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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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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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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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87번째 시간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아는 지식” 神の義を知る知識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드디어 로마서 10장에 들어갑니다. 로마서는 16장까지이니까 이제 서서히 저 멀리 남아 고지가 보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자, 오늘도 말씀을 하나하나 살펴가면서,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로 넘치는 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1절부터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0장 1절
“1.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1.兄弟たちよ。私の心の願い、彼らのために神にささげる祈りは、彼らの救いです。

앞서 9장 후반부에서 본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말은, 이방인과 대조되는 말, 즉 유전자 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았다고 하는 자부심에 넘치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작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은 믿음을 의지해서 의를 얻게 되었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행위 즉 율법을 의지했기 때문에 의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버렸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1절을 보시더라도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구원 받기를 구한다고 성경은 기록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서의 ‘이스라엘’은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 ‘믿음이 있는 형제 자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오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좀 이상한 말일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에 정말로 하나님을 믿으면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고 할 것 같으면, 대단히 기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바울의 말을 보시면 어떻습니까.

내 마음이 원하는 것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구원 받기를 원한다는 것, 즉, 나는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에 담긴 감정은 무엇입니까. 기쁨입니까?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 분명하니까 기쁨과 감사에 넘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불안해 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지 않습니까.

바울은 지금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구원 받아야 하는데, 구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불안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이 구원 받지 못할까봐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요. 그것이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로마서 10장 2절
“2.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2.私は、彼らが神に対して熱心であることを証ししますが、その熱心は知識に基づくものではありません。

바울이 말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 즉 믿음 있는 사람들을 보니까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아니에요. 믿음을 저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해요. 그것도 열심히 믿어요.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는데 그 지식,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지식이 올바른 지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이를 살펴보기 전에 3절부터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0장 3절
“3.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3.彼らは神の義を知らずに、自らの義を立てようとして、神の義に従わなかったのです。

이 3절에서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복종’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복종하려고 합니다. 글쎄요. 뭐 지금 이 시대에 부하직원이 상사한테 복종한다거나 하는 어울리지 않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군대 같은 곳이라고 한다면 좀 이해가 쉽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옛날 같지는 않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군대는 상명하복의 사회라고 해야겠지요.

부하는 상관에게 복종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복종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단순히 상관에게 복종 한다기보다는 이를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관의 명령에 복종을 하는 것이지요.


이를 다른 말로 한다면 복종을 하기 위해서는 상관의 명령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관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무슨 명령을 하라고 했는지를 올바로 알아야 복종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상관이 무엇을 하라고 했는지 어디로 가라고 했는지도 모른다면 복종을 하고 싶어도 할 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는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 지를 알아야 순종을 하든 복종을 하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서 순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어떻습니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면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도 특히나 믿음이 좋은 척을 했던 바리새인들이 했던 일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지적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23장 16절~22절
16.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마태복음 23장 16절~22절
わざわいだ、目の見えない案内人たち。おまえたちは言っている。『だれでも神殿にかけて誓うのであれば、何の義務もない。しかし、神殿の黄金にかけて誓うのであれば、果たす義務がある。』
愚かで目の見えない者たち。黄金と、その黄金を聖なるものにする神殿と、どちらが重要なのか。
また、おまえたちは言っている。『だれでも祭壇にかけて誓うのであれば、何の義務もない。しかし、祭壇の上のささげ物にかけて誓うのであれば、果たす義務がある。』
目の見えない者たち。ささげ物と、そのささげ物を聖なるものにする祭壇と、どちらが重要なのか。
祭壇にかけて誓う者は、祭壇とその上にあるすべてのものにかけて誓っているのだ。
また、神殿にかけて誓う者は、神殿とそこに住まわれる方にかけて誓っているのだ。
天にかけて誓う者は、神の御座とそこに座しておられる方にかけて誓っているのだ。

여기서 눈 먼 인도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으로 맹세하면 안 지켜도 되지만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키라고 합니다. 성전에 제단으로 맹세하면 안 지켜도 되지만, 제단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를 하면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은 전혀 율법에 없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이를 지키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이런 게 바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께 복종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며칠 전에도 어떤 신흥종교집단의 교리를 따르고 있는 사람한테서 메일이 왔습니다. 자신은 대단히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메일을 쓴 것 같지만, 제가 보면 완전히 엉터리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들 멋대로 성경을 짜깁기 한 것을 가지고 교리라고 하면서, 그것을 믿으라고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단들을 보시면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그 정도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이건 정말 농담이 아니라 웬만한 명문대는 넉넉히 들어갈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다니던 학교나 직장까지 모두 그만두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밤이고 낮이고 얼마나 열심히 성경 공부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공부하는 내용이, 전혀 성경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자기들의 교리, 자기들의 교주나 그 조직의 간부급들한테 순종하기 위한 교리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일생을 망쳐버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지금도 자기들 교주를 성경에서 예언된 선지자라고 믿고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성경을 열심히 공부를 하기는 하는데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니니까 결국 아무리 공부를 해도 성경에 대한 지식을 올바로 배울 수가 없습니다.

이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주를 성경에서 예언된 선지자라고 믿고 있는데, 성경을 조금만 알았더라도 자신들의 교주를 성경에서 예언된 선지자라고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 마지막 책인 말라기 4장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말라기 4장 5절~6절
“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5.見よ。わたしは、主の大いなる恐るべき日が来る前に、預言者エリヤをあなたがたに遣わす。
6.彼は、父の心を子に向けさせ、子の心をその父に向けさせる。それは、わたしが来て、この地を聖絶の物として打ち滅ぼすことの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ある。」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시에 모두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세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온다고 모두가 믿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온다고 하던 엘리야가 누구냐 하면 바로 세례 요한이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13절
“13.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すべての預言者たちと律法が預言したのは、ヨハネの時まででした。
あなたがたに受け入れる思いがあるなら、この人こそ来たるべきエリヤなのです。

여기서 모든 선지자와 율법은 다른 말로 하자면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구약에서의 예언은 세례 요한까지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구약에서 예언된 선지자는 세례 요한이 마지막이고, 그 후에 예언된 사람은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사도나, 하물며 사도 바울이라 하더라도 구약에서는 예언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자기들의 교주가 성경에서 예언된 선지자라고 주장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성경과 맞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만 보더라도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라고 하는 게 얼마나 엉성한 지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 더욱 심각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일반 교회 내부에도 이와 같은 잘못된 가르침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간단히 기도와 방언과 금식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絶えず祈りなさい。)”라고 기록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8절에 보면 바울도 다른 사람들보다 방언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사야 58장 6절에 의하면 금식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8장 6절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わたしの好む断食とはこれではないか。悪の束縛を解き、くびきの縄目をほどき、虐げられた者たちを自由の身とし、すべてのくびきを砕くことではないか。

기도도 좋고 방언도 좋고 금식도 좋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기도 많이 하면 구원 받습니까. 방언 많이 하면 구원 받습니까. 금식 많이 하면 구원 받습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기도나 방언이나 금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의하면 기도도 유익하고 방언도 금식도 유익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저 기도만 하고 방언만 하고 금식만 열심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하고 방언하고 금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까. 그것이 우리 신앙의 전부인가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여기에 뭐가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없어요.

고린도후서 11장 14절~15절
“14.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しかし、驚くには及びません。サタンでさえ光の御使いに変装します。
ですから、サタンのしもべどもが義のしもべに変装したとしても、大したことではありません。彼らの最後は、その行いにふさわしいものとなるでしょう。

기도하거나 방언을 하거나 금식을 하는 과정에서 뭔가가 내 눈 앞에 나타나서 무슨 말을 했다고 쳐요. 그러나 그 뭔가가 아무리 찬란하게 빛나는 천사의 모습, 하물며 예수님의 모습을 하고 내 눈 앞에 나타나서 무슨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 말이 어디에서 빗나가면 거짓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빗나가면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당장 물리쳐야 하는 마귀 사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열왕기하에 의하면 유다 제16대 왕이 요시야 때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데 그 때 대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왕에게 보고하면서 읽게 됩니다. 그러자 이를 들은 요시야의 모습이 성경에 나옵니다.
열왕기하 22장 10절~13절
“10.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11.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12.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3.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さらに書記シャファンは王に告げた。「祭司ヒルキヤが私に一つの書物を渡してくれました。」シャファンは王の前でそれを読み上げた。
王は律法の書のことばを聞いたとき、自分の衣を引き裂いた。
王は祭司ヒルキヤ、シャファンの子アヒカム、ミカヤの子アクボル、書記シャファン、王の家来アサヤに次のように命じた。
「行って、この見つかった書物のことばについて、私のため、民のため、ユダ全体のために、主を求めよ。私たちの先祖たちがこの書物のことばに聞き従わず、すべて私たちについて記されているとおりに行わなかったために、私たちに向かって燃え上がった主の憤りが激しいからだ。」

이 율법책 내용을 들은 요시야 왕은 그 자리에서 자기 옷을 찢습니다. 이는 대단히 크나큰 충격을 받았을 때에 했던 당시 관행였습니다.

율법책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진노를 내리실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빨리 서둘러 율법대로 행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 모습만을 보더라도 당시 요시야 왕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열왕기나 역대를 보면 참 나쁜 왕들도 많았습니다만, 그 가운데 이 요시야는 정직한 왕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는데, 이 율법책을 읽는 순간, 아,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은 헛것이었구나.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새롭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무엇에 대해서 회개를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번 회개를 하더라도 올바로 알고 회개를 해야 됩니다. 무엇이 잘한 것이고 무엇이 잘못한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회개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도 그렇고 방언도 그렇고 금식도 그렇습니다. 무작정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할 때에 은혜가 넘치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마지막 본문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0장 4절
“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4.律法が目指すものはキリストです。それで、義は信じる者すべてに与えられるのです。”

믿는 자들이 의를 이루기 위한 율법의 마침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의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의를 이루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게 되겠지요.

자,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라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구원 받을 자격,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어요.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고 오로지 죽음 뿐입니다.

우리 앞에 두 가지 갈림길이 있습니다. 구원 받아 영생을 얻느냐, 아니면 저주를 받아 죽임을 당하느냐 하는 두 가지 갈림길입니다.

이 중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서 꼼짝없이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임을 당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앞에 있던 두 가지 갈림길 중에서 하나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먼저 죽임을 당해주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당해야 마땅한 죽음이라는 갈림길을 지워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는 무엇만 남습니까. 그렇습니다. 구원 받아 영생을 얻는 갈림길만 남게 된 것입니다.

영생은 율법을 온전히 이룬 의인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고사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인해서 죽음이라는 갈림길을 지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의롭게 되어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를 어떻게 해서 알 수 있습니까. 기도나 방언이나 금식하다가 응답을 받아서 알 수 있나요? 아닙니다. 성경에 적혀 있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하고도 완전한 하나님 말씀이신 성경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올바로 알아가므로 말미암아,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과,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을 통해서, 주님으로부터 축복의 축복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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