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1회 결산을 대비하는 믿음
2022년 5월 22일 설교 - 로마서 강해 84

홍성필 목사
www.kirin.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9장 27절~28절
"27.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

ローマ人への手紙 9章27節~28節
“27.イザヤはイスラエルについてこう叫んでいます。「たとえ、イスラエルの子らの数が海の砂のようであっても、残りの者だけが救われる。
28.主が、語られたことを完全に、かつ速やかに、地の上で行おうとしてお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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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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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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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84번째 시간으로서 “결산을 대비하는 믿음” 清算に備える信仰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사야 10장 22절~23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10장 22절~23절
“22.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23.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たとえ、あなたの民イスラエルが海の砂のようであっても、その中の残りの者だけが帰って来る。壊滅は定められ、義があふれようとしている。
すでに定められた全滅を、万軍の神、主は、全地のただ中で起こそうとしておられる。

구약에 있는 이 말씀 중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그야말로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17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確かにわたしは、あなたを大いに祝福し、あなたの子孫を、空の星、海辺の砂のように大いに増やす。あなたの子孫は敵の門を勝ち取る。

그 당시에 아브라함에게는 아들 이삭 하나만 있었을 뿐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가 아니라 후손을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계획이십니다.

그러나 출애굽 당시 애굽을 탈출한 인구 수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 애굽에서의 혹독한 노예 생활 속에서도 남자만 60만명, 전체는 200만명이 넘게 인구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하나님의 계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 지난 주에 호세아서의 내용을 바울이 인용하면서 본래 구약에서는 단순히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이를 이방인의 구원으로 해석한 부분을 말씀 드렸었지요.

가끔 보면 신약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지금의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들로 자꾸 해석을 하면서, 세상 끝 날이 오면 지금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고 유대인들이 어떻게 되고, 새 예루살렘이 지금 이스라엘에 있는 예루살렘에 어떻게 되고……이렇게 무슨 자신이 선지자라도 된 것처럼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들만이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뭐가 되냐 하면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뜻이 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무슨 말이 되냐 하면,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어 봤자 소용이 없어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육신적으로 유대인이냐 아니냐, 유전자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이냐 아니냐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모두 용서 받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백성, 영적인 유대인이며 영적인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여기까지는 참 좋습니다만, 오늘 말씀은 어떻습니까.

걱정하지 마. 영적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두 다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하면 참 좋겠는데, 오늘 말씀은 그렇지 않아요.

로마서 9장 27절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7.イザヤはイスラエルについてこう叫んでいます。「たとえ、イスラエルの子らの数が海の砂のようであっても、残りの者だけが救われる。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은 역시 육적인 이스라엘 자손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의 이스라엘 자손,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 모두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 이 시점에서 여러분께 질문 한 번 해볼까요? 나는 마지막 날에 반드시 구원 받아 천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확신이 있으신 분은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예, 저도 여러분의 믿음대로 되시기를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사실 정말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을 한 번 믿으면 절대로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아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한 번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100프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어요.

구원의 확신만 있으면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어요.

사실 이렇게 저도 믿고 싶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오늘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알만큼 많다 하더라도 그 중 일부만 구원을 받는다는 거잖아요.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전세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일부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구원의 확신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 당시에 보시면 구원의 확신을 가장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누구였냐 하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한치의 의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칭찬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まむしの子孫たち、おまえたち悪い者に、どうして良いことが言えますか。心に満ちていることを口が話すのです。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구원 받은 천국 백성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국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처럼 심한 말씀으로 꾸짖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자부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은 그들을 겸손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만을 싹트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만은 마침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 그것만으로도 정말로 크나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믿음을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わたしに向かって『主よ、主よ』と言う者がみな天の御国に入るのではなく、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のみこころを行う者が入るのです。

교회에 오래 다니고 믿음이 좋아 보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방언도 참 유창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맨날 마귀 얘기, 귀신 얘기, 꿈 얘기, 환상 얘기만 해요. 그럼 무엇이 없어요? 그렇습니다. 성경 말씀이 없어요.


주여~주여~ 하면서 믿음이 좋은 척만 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 하나님 아버지 뜻대로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습니까. 1번 금식을 많이 해야 안다. 2번 방언을 많이 해야 한다. 3번 기타.

예, 3번 기타입니다. 그럼 기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성경이야말로 유일하고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솔직히 성경도 모르고 어떻게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성경도 모르고 어떻게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이며, 성경도 모르고 어떻게 올바른 행함을 논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성경말씀이 우리 안에 올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이단에 넘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경을 알면 그 이단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가 얼마나 엉성하고 형편없는지를 알 수 있는데,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으면 그럴 듯하게 느껴지고, 마침내 넘어가서는 자신의 모든 재산도 빼앗기고 인생을 망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제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걱정 없어……라고 방심하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그 날이 옵니다. 그 날이 무엇을 하는 날입니까. 그것은 바로 <결산하는 날>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3절
“23.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ですから、天の御国は、王である一人の人にたとえることができます。その人は自分の家来たちと清算をしたいと思った。

그 결산하는 날은 예고 없이 옵니다. 무엇처럼 온다고 하지요?

요한계시록 3장 3절 후반부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目を覚まさないなら、わたしは盗人のように来る。わたしがいつあなたのところに来るか、あなたには決して分からない。


마태복음 24장 43절~44절
43.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次のことは知っておきなさい。泥棒が夜の何時に来るかを知っていたら、家の主人は目を覚ましているでしょうし、自分の家に穴を開けられ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
ですから、あなたがたも用心していなさい。人の子は思いがけない時に来るのです。

그렇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때에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한번 결산해보자>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결산한다고 해서 단순히 계산기만 두드리는 것일까요? 그 결산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4장 13절
“13.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神の御前にあらわでない被造物はありません。神の目にはすべてが裸であり、さらけ出されています。この神に対して、私たちは申し開きをするのです。


그 결산 앞에서는 누구도 속일 수가 없습니다. 감출 수도 없습니다.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わたしはすぐに来る。あなたは、自分の冠をだれにも奪われないように、持っているものをしっかり保ちなさい。

저는 오랫동안 이 말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것이 아무리 늦게 잡는다 하더라도 지금으로부터 2천년 가까이 전에 기록된 것인데, 그 때부터 ‘속히 오리니’라고 하셨으면서 아직도 안 오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이게 좀 이상하다 했는데, 자세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생각해보세요. 자, 이제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짠 하고 나타나셔서, 자, 여기까지. 이제 한 번 너의 일생을 놓고 천국에 들어갈 만한지 아닌지, 어디 한 번 결산해보자.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아, 그래, 내가 이 정도면 살만큼 살았고, 내가 천국 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글쎄요. 이렇게 장담 하실 수 있는 분이 얼마나 계실까요.

오히려, 그러지 않을까요. 아휴, 예수님, 잠깐만요. 벌써 오시면 어떡해요. 그렇잖아도 내가 내일부터 제가 정말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했었어요.

내일부터 제가 성경 열심히 읽으려고 했었다니까요. 내일부터 전도도 열심히 하려고 했었어요.

아, 맞다. 그렇잖아도 내가 지금까지 밀린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마침 내일 다 내려고, 저기 봐요. 통장까지 다 꺼내 놨잖아요.

내일부터 제가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봉사하려고 했었다구요. 내일부터 제가……내일부터 제가……

아마도 그럴 분이 오히려 더 많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이제 거기서 끝입니다. 여기까지다. 자, 하나하나 결산해보자.

여러분, 예수님은 언제 오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속히 오시는 예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요. 예, 우리는 여유 부릴 틈이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구원 받았으니까 하면서 방심할 틈이 없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오랜 세월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을 나오게 됩니다. 이를 신앙적으로 본다면 죄악 속에 물들어 있던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 받는 것을 나타낸다고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여유롭게 애굽에서 나왔나요? 편안히 놀고 즐기다가 애굽에서 나왔습니까.

시간 관계상 다음 한 구절만 봅니다.

출애굽기 12장 11절
“11.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あなたがたは、次のようにしてそれを食べなければならない。腰の帯を固く締め、足に履き物をはき、手に杖を持って、急いで食べる。これは主への過越のいけにえである。


애굽을 탈출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갈 준비를 하고 급히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급히 먹냐 하면, 그 때 잡은 어린 양을 구워서 급히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린 양은 바로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5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人の子の肉を食べ、その血を飲まなければ、あなたがたのうちに、いのちはありません。

모든 생명체에 있어서 그 생명은 뼈에 있지 않고 살과 피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살아있는 예수님의 모든 것을 받아 들이고, 이에 순종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본질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먹고 마시라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애굽을 빠져나갈 준비, 말하자면 구원 받을 준비를 하고 서둘러 급히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이 구원의 순간에 대한 기록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 천사들은 롯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창세기 19장 17절
“17.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彼らを外に連れ出したとき、その一人が言った。「いのちがけで逃げなさい。うしろを振り返ってはいけない。この低地のどこにも立ち止まってはならない。山に逃げなさい。そうでないと滅ぼされてしまうから。」

그리고 마태복음에 보시면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17절~18절
“17.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屋上にいる人は、家にある物を取り出そうとして下に降りてはいけません。
畑にいる人は上着を取りに戻ってはいけません。

이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사도행전에 보면 흥미로운 기록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 9절
“9.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翌日、この人たちが旅を続けて、町の近くまで来たころ、ペテロは祈るために屋上に上った。昼の十二時ごろであった。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 모양은 지붕이 평평해서 거기에 사람들이 올라가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만, 지붕 위에서는 기도도 했다고 성경에 기록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본다면 기도를 하려고 지붕 위에 갔다가 마지막 날이 임했을 때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가지 말래요. 그리고 밭에 있는 사람도 마지막 날이 임했을 때 겉옷을 가지러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다 무엇입니까.

이는 구원의 날이 임했을 때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 지금 당장이라도 애굽을 빠져 나갈 준비를 하고 긴장을 한 상태에서, 마치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짚고 급히 양을 먹는 것처럼, 언제 결산하는 날이 와도 될 정도로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말씀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마지막 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40절~42절
40.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そのとき、男が二人畑にいると一人は取られ、一人は残されます。
女が二人臼をひいていると一人は取られ、一人は残されます。
ですから、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あなたがたの主が来られるのがいつの日なのか、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ら。 

구원의 날에 일어날 이와 같은 일은 며칠 동안에 걸쳐서 천천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데려가는 사람들한테 번호표를 나누어 줘서 천천히 차례대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는 어떻게 변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51절~52절
“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聞きなさい。私はあなたがたに奥義を告げましょう。私たちはみな眠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が、みな変えられます。
終わりのラッパとともに、たちまち、一瞬のうちに変えられます。ラッパが鳴ると、死者は朽ちないものによみがえり、私たちは変えられるのです。

그렇습니다.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오늘 본문 28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9장 28절
“28.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8.主が、語られたことを完全に、かつ速やかに、地の上で行おうとしておられる。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35절
“35.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天地は消え去ります。しかし、わたしのことばは決して消え去ることがありません。

예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모든 말씀을 다 해주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일어나는 일들을 숨김 없이 모두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때가 되어서, 하늘을 쳐다보고 아이구, 이렇게 일찍 오실 줄 몰랐어요. 내일부터 내가……내일부터 내가……그러시겠습니까. 아니요.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우리가 내 가족에게 내 이웃에게 말씀을 전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내 가족을 내 이웃을 섬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누구도 나를 대신해줄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행함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원 받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그 날을 대비하는 믿음, 결산을 대비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언제 그 날이 임하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언제나 결산을 대비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깨달으며, 주님께 순종하는 행함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해서, 크나큰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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