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4회 영적인 달음박질
2022년 4월 3일 설교

홍성필 목사
www.kirin.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9장 15절~16절
“15.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9章15節~16節
“15.神はモーセに言われました。「わたしはあわれもうと思う者をあわれみ、いつくしもうと思う者をいつくしむ。」
16.ですから、これは人の願いや努力によるのではなく、あわれんでくださる神による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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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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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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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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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79번째 시간으로서 “영적인 달음박질” 霊的な努力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잠시 반대말 문제를 드려볼까 합니다. 여러분께서 얼마나 좋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오셨는지 한 번 보겠습니다.

잘 들어보시기 바라겠습니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가끔 보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우선 사회주의는 무슨 말의 반대말일까요. 이는 자본주의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의 반대말이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일까요?

사실 자본주의 반대말이 사회주의입니다만, 민주주의 반대말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뭐냐 하면, 이는 전제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제주의라고 말하면 좀 어렵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말하자면 일인독재 또는 일당독재가 전제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민주주의가 좋습니까 아니면 독재가 좋습니까. 이런 질문을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에게 던진다면, 정말 일부 좀 독특한 사람이 아닌 담에야 당연히 민주주의가 좋다고 하겠지요.

민주주의라고 하면 그 특징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쉽게 말하자면 다수결이 있겠지요. 다수결의 대표적인 일례가 선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8세든 20세든간에 그 나라에서 성인이 되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선거권이 인정된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 기본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그리고 미국 등을 비롯해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는 그 나라의 대표를 선거로 선출합니다. 그리고 선거로 인해서 정권이 교체가 됩니다. 이는 당연하게 생각될 지는 모르지만, 사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놓고 싶어하는 경우가 없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지 그것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자기가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물려주려고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반대를 하게 되면 그 때는 그야말로 내란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다른 개발도상국에 보면 정치적인 권력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내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미국도 일본도 그리고 한국도 선거를 통해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성사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상당히 성숙된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민주주의는 의회 민주주의도 있어야 합니다. 온 국민이 한 번에 같은 자리에 모여서 논의를 하거나 대소사를 결정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공정한 선거로 대표자를 뽑아서 그 대표자들이 의회에 모여서 토론도 하고 결정도 하면서 나라를 이끌고 지역사회를 이끌어 나아가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은혜를 베푼다는 것인데, 어떤 사람을 긍휼히 여길 것이냐,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기 것이냐 하는 기준이 나와 있습니다.

자, 어떤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기신대요?

오늘 말씀 중에서 15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9장 15절
“15.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5.神はモーセに言われました。「わたしはあわれもうと思う者をあわれみ、いつくしもうと思う者をいつくしむ。」

이는 출애굽기 33장 19절 후반부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이 말씀은 여러분께서 어떻게 생각되십니까.

이 말씀에 의하면 누구를 긍휼히 여기고 누구를 불쌍히 여기 것이냐 하는 것을, 천국 회의 같은 곳에서 결정한대요?

하늘나라의 각 지역에서 뽑힌 천사들을 모아놓고 다수결로 결정하신대요?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결정하느냐 하면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거예요.

이는 어떻게 보더라도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말이 좀 거칠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독재인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성경에서는 민주주의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 누구 마음이에요? 예, 하나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의를 해서 결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혼자 결정하십니다.

이런 말을 하면 세상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불평을 합니다. 불만을 말합니다.

아니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 합리적인 이유도 없고 명확한 규정도 근거도 없이, 그냥 하나님 혼자 마음대로 정해? 그런 건 말도 안 돼.

그러나 지난 주에 우리가 뭐라고 공부했습니까.

로마서 9장 14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神に不正がある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

그렇습니다. 사람의 결정은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결정에는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 긍휼히 여길 자나 불쌍히 여길 자를, 회의나 토론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독단적으로 결정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학교나 어떤 회사 같은 데에서 누군가를 뽑아요.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 학교 성적이나 입사시험 성적 또는 면접 결과 등을 바탕으로 해서, 여러 사람들이 논의를 하고 난 다음에 누구를 뽑을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를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일들을 다 펼쳐놓고, 하나님과 천사들이 빨간 펜을 들고 밑줄을 그어가며 회의를 합니다.

누구는 언제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해왔는지 자세히 적혀 있는 자료들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서로 토론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사람이 구원 받아 마땅한 지 아닌지를 다수결로 정하기로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렇다면 여러분께서는 구원받을 자로 뽑힐 자신이 있으십니까.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의인입니다.

의인이라고 하면 무엇 없이도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보혈 없이도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의인’인 것이지요.

하지만 지난 주에 공부한 대로 의인이 얼마나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구원에 있어서는 예외가 없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길,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길,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약에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과 천사들이 모여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얘기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열심히 격론을 벌인 결과, 아무리 생각해도 저 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흠 없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방법 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천사들이 예수님더러, 저……십자가에서 죽어 주셔야겠는데요…? 라는 말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오히려, 아휴, 예수님, 그냥 저 죄 많은 인간들을 다 깨끗이 쓸어버리고, 깔끔하게 다시 시작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감사하게도, 너무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으셨습니다. 혼자 정하셨습니다. 무엇을 혼자 정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죄악에 물든 이 못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가장 아끼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무참하게 죽도록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 가운데에서 구원해 주시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활짝 열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혼자서 결정하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 전반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神はモーセに仰せられた。「わたしは『わたしはある』という者である。」また仰せられた。

우리는 우리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부르셨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선거로 뽑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허락을 받지도 않습니다. 누구의 명령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걸 사람이 흉내 내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예, 망합니다. 이 세상의 독재자들이나 자기를 하나님이다 예수님이다 선지자다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망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서게 되어 있는 심판대 앞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선택 하셨을까요. 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결정 하셨을까요.

자, 지금 마음 속으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선택하셨을까. 한 번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요? 에이. 그래도 하나 정도는 있지 않으세요?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은 그나마 남들보다 나으니까 이것을 보고 나를 구원해 주셨을 거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남들보다 이것 하나 정도는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 이것을 보고 나를 선택해 주셨을 거야.

그런 것이 조금은 있지 않으신가요?

만약에 곰곰이 생각하다 그런 것들이 하나 둘씩 생각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니요.

오히려 당장 그 마음을 버려 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당부 드립니다..

절대로 열리지 않는 쓰레기통, 절대로 다시 주어 올 수 없는 낭떠러지 밑으로 던져 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당부 드립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 하셨을까요. 수가 많아서요? 힘이 강해서요? 전쟁을 잘 해서요?


신명기 7장 6절~7절
“6.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あなたは、あなたの神、主の聖なる民だからである。あなたの神、主は地の面のあらゆる民の中からあなたを選んで、ご自分の宝の民とされた。
主があなたがたを慕い、あなたがたを選ばれたのは、あなたがたがどの民よりも数が多かったからではない。事実あなたがたは、あらゆる民のうちで最も数が少なかった。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봐, 너희들이 수가 많아서 택한 줄 알아? 아니야. 오히려 수가 제일 적어……

하나님의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봐, 너희들이 잘 나서 내가 택한 줄 알아? 아니야, 착각하지 마. 오히려 너희들이 남들보다 못나면 못났지 잘난 구석이 하나도 없어.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잘나지도 못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택하셨습니까.

그 이유가 바로 다음 구절인 신명기 7장 8절에 나옵니다.

신명기 7장 8절
“8.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しかし、主があなたがたを愛されたから、またあなたがたの父祖たちに誓った誓いを守られたから、主は力強い御手をもってあなたがたを導き出し、奴隷の家から、エジプトの王ファラオの手からあなたを贖い出されたのである。

그렇습니다. 누가 명령해서도 아니요, 누가 지시해서도 아닙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내가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이것이 잘 나서? 저것을 잘 해서? 아니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택한 것은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나서 택한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하면 네가 기분 나쁠 지는 모르지만, 사실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못 나면 못 났지, 잘 난 것이 없어.

하지만 뭐예요?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남들보다 좀 모자라면 어떻고, 못나면 어떠니. 하지만 스스로 있는 내가 너를 선택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불렀고, 너를 구원하기를 원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감사한 일 아닙니까.

자, 다음으로 오늘 본문 중에서 그 다음 구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9장 16절
“16.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6.ですから、これは人の願いや努力によるのではなく、あわれんでくださる神によるのです。

이 말씀을 생명의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로마서 9장 1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이 원하거나 노력한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야 받습니다.”

여러분께서 이해하기 쉽도록 15절과 16절 말씀을 요약 하자면 뭐냐 하면, 누구를 긍휼히 여길지 누구를 불쌍히 여길 지에 대한 기준은 하나님께서 정하신다.

그러니까 축복 받으려고 애를 써봤자, 그 노력을 보고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주실지 안 주실 지는 전적으로 하나님 판단에 달렸다……말하자면 이런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예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라는 건가요?

아니요. 성경에 보면 노력하라는 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없는 것이 아닐 정도가 아니라 좀 많아요.

누가복음 13장 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狭い門から入るように努めなさい。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が、多くの人が、入ろうとしても入れなくなるからです。

로마서 12장 13절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聖徒たちの必要をともに満たし、努めて人をもてなしなさい。



데살로니가전서 4장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最後に兄弟たち。主イエスにあってお願いし、また勧めます。あなたがたは、神に喜ばれるためにどのように歩むべきかを私たちから学び、現にそう歩んでいるのですから、ますますそうしてください。


디모데후서 2장 15절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あなたは務めにふさわしいと認められる人として、すなわち、真理のみことばをまっすぐに説き明かす、恥じることのない働き人として、自分を神に献げるように最善を尽くしなさい。


이렇게 보면 힘 쓰라는 것이 노력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 헷갈리게 하는 것은 고린도전서 9장 24절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競技場で走る人たちはみな走っても、賞を受けるのは一人だけだということを、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ですから、あなたがたも賞を得られるように走りなさい。

아까 로마서 9장 16절에서는 달음박질 해도 소용이 없다면서요? 그런데 여기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서는 달음박질 하라고 합니다.

더욱 골치 아픈 것은 로마서도 고린도전서도 모두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서한이에요.

이렇게 되어 있으니까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보지 않으면, 성경이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노력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적인 노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 알아보았지요. 그런데 믿음이 좋은 사람은 형 에서보다 동생 야곱이었습니다.

형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동생 야곱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기를 자기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장자가 되어야 해요. 그런데 자기는 쌍둥이지만 엄연한 동생이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고민하다가, 그래, 장자권을 형한테서 빼앗으면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 머리로 꾀를 부려서 에서한테서 장자권을 빼앗습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이제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장자로서 대를 이을 축복을 해주려고 합니다. 이는 말하자면 법적인 유언과도 같은 효력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지요.

창세기 25장 28절에 의하면 아버지 이삭은 형 에서를 사랑했지만, 어머니 리브가는 동생 야곱을 사랑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이제 아버지 이삭이 형 에서한테 축복의 유언을 남기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형처럼 분장을 시킵니다.

아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한테 에서의 냄새가 나도록 에서 옷을 입고, 그리고 에서는 몸에 털이 많은데 야곱은 털이 없으니까, 팔에 양털을 붙이고 에서인 척 하면서 아버지 이삭한테 나아가라고 합니다.

그렇게 속임수를 써서 결국 본래 에서가 받았어야 할 축복을 야곱이 가로채 버리고 맙니다.

자,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들로 인해서 야곱이 잘 되나요? 속임수를 써서 장자권을 빼앗아서 에서가 야곱한테 형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형이 받아야 할 축복을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가로챘다고 해서, 이로 인해 야곱이 넘치는 축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나요? 아니요. 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사실을 알게 된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쫓아옵니다. 그래서 야곱은 축복이고 유산이고 다 버려둔 채로 도망을 쳐서, 어머니의 지시로 자기 오라버니이자 야곱에게 있어서는 외삼촌이 되는 라반 집에서 살게 되는데, 거기서 무려 20년 동안을, 돈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도 온갖 고생을 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이 외에도 사실 시간 관계상 다 말씀을 못 드리는 것뿐이지,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으려고 여러가지 노력을 다했습니다.

이제 오랜 세월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그가 애굽 왕 바로 앞에 나왔을 때 그가 자신의 인생을 가리켜서 뭐라고 합니까.

창세기 47장 8절~9절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ファラオはヤコブに尋ねた。「あなたの生きてきた年月は、どれほどになりますか。」
ヤコブはファラオに答えた。「私がたどってきた年月は百三十年です。私の生きてきた年月はわずかで、いろいろなわざわいがあり、私の先祖がたどった日々、生きた年月には及びません。」

그렇습니다. 자신의 130년 인생을 두고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회상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잠깐. 우리 지난 주에 뭐라고 배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셨다면서요. 언제요? 그렇죠.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 택하셨던 야곱이 그토록 험악한 세월을 보냈어야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힘으로 달음박질해서, 자기 생각으로 노력을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 내려고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가 꾀를 부려서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형이 받을 축복을 자기가 가로챌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사랑하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축복을 부어주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그렇죠. 하나님을 믿었어야지요. 그런데 야곱은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세상적으로 더 노력을 해서, 세상적인 힘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쟁취해야지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그렇습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부르셨습니까. 우리가 강해서요? 우리가 잘나서요? 우리가 선해서요?

아니요.

우리가 남들보다 약하면 약했지 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못나면 못났지 잘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나쁘면 나빴지 선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왜 부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이미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부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축복을 부어주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부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무엇을 빼앗을 필요가 없습니다. 가로챌 필요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넘치는 사랑을 받은 우리가, 세상적인 노력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축복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몇 년 교회에 다녀서 성경 좀 알게 되었다 하면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성경 두 구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사야 6장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私は主が言われる声を聞いた。「だれを、わたしは遣わそう。だれが、われわれのために行くだろうか。」私は言った。「ここに私がおります。私を遣わしてください。」

누가복음 10장 2절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そして彼らに言われた。「収穫は多いが、働き手が少ない。だから、収穫の主に、ご自分の収穫のために働き手を送ってくださるように祈りなさい。

이 말을 아주 자기한테 편리하게 해석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무슨 선거 같은 데에 출마할 일이 있거나, 무슨 직함을 맡을 일이 있어요.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가 손을 듭니다. 그러면서 이래요.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리고 이제 전도하거나 봉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 뭐라고 기도해요?

“주여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해야 하는데 추수할 일꾼들이 부족합니다. 일꾼들을 보내주시옵소서……”

그럼 이런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야, 니가 해. 왜 사람들을 보내달라고 해. 니가 하면 되잖아?”

그러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상을 받는 달음박질, 상을 받는 노력은 세상적인 노력이 아닙니다. 아무리 신앙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세상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 결국 야곱이 그 험악하다고 한 그의 인생을 통해서 보여준 것처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요한3서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愛する者よ。あなたのたましいが幸いを得ているように、あなたがすべての点で幸いを得、また健康であるように祈ります。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상 우리의 영혼은 잘 됩니다. 우리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세상적인 달음박질, 내 생각대로 내 욕심대로 하는 노력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내 힘과 내 노력으로 축복을 받는다는 생각은 야곱과 같이 험악한 인생 밖에는 얻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 그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는, 이미 나에게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은 약속되어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우리가 강건해진다는 것은 이미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이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정말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전도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꼭 해야 하는데 남들이 다 귀찮아하는 일, 하기 싫어하는 일들이 있을 때,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ここに私がおります。私を遣わしてください。)”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영적인 달음박질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험악한 삶을 살아가는 세상적인 달음박질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영적인 달음박질을 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축복과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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