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6회 크나큰 계획
2022년 2월 6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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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9節
“29.神は、あらかじめ知っている人たちを、御子のかたちと同じ姿にあらかじめ定められたのです。それは、多くの兄弟たちの中で御子が長子となるため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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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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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71번째 시간으로서 “크나큰 계획” 大いなる計画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9節
29.神は、あらかじめ知っている人たちを、御子のかたちと同じ姿にあらかじめ定められたのです。それは、多くの兄弟たちの中で御子が長子となるためです。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로 하여금 그 아들 즉 예수님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わたし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いのちなのです。わたしを通してでなければ、だれも父のみもとに行くことはできません。

우리가 어느 목적지에 가려고 한다면 그 경로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시면 천국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가는 경로가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곧 하나님이 계신 나라인데 거기에 가기 위해서는 어디를 통해서 갈 수 있냐 하면,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국에는 죄가 있는 사람이 갈 수가 없어요. 큰 죄이든 작은 죄이든 간에 그 죄를 가지고서는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 천국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해야 하는데, 우리의 죄를 해결하는 그 길은 오로지 예수님 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형벌을 다 받아 주셨기 때문에, 이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우리의 죄가 해결될 수 있고,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천국 하나님 아버지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예수님한테 가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한테 갈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わたしを遣わされた父が引き寄せてくださらなければ、だれもわたしのもとに来ることはできません。わたしはその人を終わりの日によみがえらせます。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아무나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 즉 하나님께서 이끌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께로 올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종합해 보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라고 고속도로를 타는 길밖에는 천국으로 통하는 길이 없어요. 그런데 그 고속도로는 아무나 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이 아니라면 탈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그냥 닥치는 대로 불러요?

오늘 말씀에 의하면 미리 아신 자들, 미리 정해 놓으신 사람들이 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일까요. 아닐까요.

나중에도 계시록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요한계시록 7장에 보시면 ‘인침을 받은 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수가 144,000인데, 이 숫자가 어디서 나왔냐 하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각각 12,000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12,000명이 열두 지파이니까 12,000명 곱하기 12를 해서 144,000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여기에 들어야 하겠습니까. 말아야 하겠습니까. 예. 꼭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를 일반적인 숫자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 지금까지 인류가 얼마나 많았는데 구원받는 사람이 고작 144,000명밖에 안 된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이는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12라고 하는 숫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완전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된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우리는 이해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점을 악용하는 것이 이단들입니다. 거기 보면 이미 사람마다 각 지파를 정해 놓았어요. 그리고 돈 많이 내고 말 잘 듣는 사람들을 자기들 멋대로 배정을 해 놓고 그렇습니다.

이는 마치 뭐예요? 입시학원에서 각각 대학교를 정해놓고 누구는 돈을 많이 내고 말을 잘 들으니까 좋은 대학에 배정하고, 누구는 돈을 조금 냈으니까 안 좋은 대학에 배정을 시켜놓고, 누구는 말을 안 들으니까 내쫓았어요.

자, 그렇다면 입시학원에서 이렇게 정해놓으면, 각 대학이 예, 알겠습니다 하고, 그대로 학생들을 뽑아 가나요?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자기들이 뭔데 자기들 마음대로 너는 이 대학에 들어가라, 너는 저 대학에 들어가라 하고 정해 놓고는, 나중에 대학교한테, 자, 우리가 이렇게 정해 놓았으니 당신들이 이대로 뽑아가시오……라고 하면 그대로 뽑아 가나요? 오히려 비웃겠지요.


성경을 그렇게 자기들 멋대로 해석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누가복음 6장 39절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イエスはまた、彼らに一つのたとえを話された。「盲人が盲人を案内できるでしょうか。二人とも穴に落ち込まないでしょうか。

요한복음 9장 40절~41절
“40.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パリサイ人の中でイエスとともにいた者たちが、このことを聞いて、イエスに言った。「私たちも盲目なのですか。」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もしあなたがたが盲目であったなら、あなたがたに罪はなかったでしょう。しかし、今、『私たちは見え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から、あなたがたの罪は残ります。」


마태복음 23장 13절
“1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わざわいだ、偽善の律法学者、パリサイ人。おまえたちは人々の前で天の御国を閉ざしている。おまえたち自身も入らず、入ろうとしている人々も入らせない。

당시 바리새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라고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 누구보다도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 자기들 말을 들어야지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기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하는데, 너희들은 맹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너희도 구원을 못 받을 뿐 아니라, 너희들을 따르는 자들도 구원을 못 받고 구덩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을 하였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 그러니까 구원을 받을 자격이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한 후에, 또는 그 전에라도 예수님께서 오셔서 심판하시게 될 때에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 사실을 알고 오늘 본문 29절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9節
29.神は、あらかじめ知っている人たちを、御子のかたちと同じ姿にあらかじめ定められたのです。それは、多くの兄弟たちの中で御子が長子となるためです。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미리 아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받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언제’와 둘째는 ‘왜’입니다.


먼저 첫째 ‘언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기로 미리 정해 놓으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정해 놓으셨을까요. 언제부터 우리를 아시고 언제부터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부르시려고 정해 놓으셨을까요.

내가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부르시기로 정하셨나요?

만약에 그랬다면 이는 말이 좀 이상해집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면 예수님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서야 하나님이 우리를 알아보시고, 아이구 성필이가 있었네, 하고 우리를 아셨다면 믿기 전에 우리를 어떻게 예수님께로 이끌어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께서는 그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을 우리의 이름, 우리의 얼굴을 알고 계셨을까요? 모르고 계셨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우리를 알고 계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그렇죠.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시고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끌어 주실 계획이 있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실 계획이 있으셨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우리를 아셨을 것이지만, 하나님이 그 때 아직 우리를 이끌어 주실 계획이 없으셨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아직은 우리를 알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기를 언제 계획 하셨을까요. 이 답을 어디서 찾아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 3절~6절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父である神がほめたたえられますように。神はキリストにあって、天上にあるすべての霊的祝福をもって私たちを祝福してくださいました。
すなわち神は、世界の基が据えられる前から、この方にあって私たちを選び、御前に聖なる、傷のない者にしようとされたのです。
神は、みこころの良しとするところにしたがって、私たちを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ご自分の子にしようと、愛をもってあらかじめ定めておられました。
それは、神がその愛する方にあって私たちに与えてくださった恵みの栄光が、ほめたたえられるためです。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언제 택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창세 전.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우리를 미리 아시고, 우리를 부르시기로 이미 계획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서에는 다음과 같이 예언합니다.

이사야 53장 11절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彼は自分のたましいの激しい苦しみのあとを見て、満足する。わたしの正しいしもべは、その知識によって多くの人を義とし、彼らの咎を負う。

이 말씀대로라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장차 예수님께로 인도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장차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우리를 분명히 기억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 그 십자가의 고난을 예수님도 만족하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성경은 신구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으로 넘쳐나지 않습니까.


자, 이렇게 본다면 첫번째 질문 ‘언제’는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 전,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부르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두번째 질문, ‘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부르시기로 계획하셨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봅니다.

로마서 8장 29절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9節
29.神は、あらかじめ知っている人たちを、御子のかたちと同じ姿にあらかじめ定められたのです。それは、多くの兄弟たちの中で御子が長子となるためです。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그 아들 즉 예수님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자, 좀 쉽게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해야 되냐 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의로 여기심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좀 이상한 말씀을 드려볼까요? 사실 그러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좀 이상할 지는 모르지만 천국에 들어가면 됐지, 예수님을 본받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습니까.

자, 우리는 이제 드디어 믿음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않고, 한 번도 들어보지도 않았을 질문,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고, 반드시 생각해야 할 질문을 여러분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셨나요?

자, 그럼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천국에 들어가시면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천국에 들어가시면 무엇을 하게 될 것 같으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이와 같은 질문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많은 분들이 생각하기에 이 세상에서 생을 마감한 다음에는 천국에 가면 된다고 생각하십니다. 아니, 그게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천국에 반드시 가야지요. 지옥에 가면 큰일납니다.

이것도 좀 이상한 말일지 모르지만, 세상에 보면 신기한 것이 뭐냐 하면, 지옥은 상상하기가 쉬워요. 지옥은 어떤 곳이냐고 여러분께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시간관계상 일일이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성경에도 보면 여러 묘사가 나오는데, 그 중에 보면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을 겪는 모습들 같은 것을 보면 쉽게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장차 천국에 가실 여러분께서는 천국에 가시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누군가가 여러분께 천국에 가면 뭐가 좋냐고 물으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 천국은 넓은 집에서 살 수 있대.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살 수 있대. 병도 없고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아주 즐거운 곳이래……. 자, 제가 지금 드린 말씀이 틀립니까? 뭐, 성경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이 말이 틀리다고 반론하실 분은 별로 안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게 다인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돈 걱정 없이, 집 걱정 없이, 병 걱정 없이 살게 하기 위해서, 그것만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셨습니까.


하릴없이 편안한 삶? 그건 그야말로 요양시설이잖아요. 천국은 노후관리를 위한 곳이에요? 우리더러 편안하게 먹고 춤추고 놀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피범벅이 된 채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을까요?

일본에는 5월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4월달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신입생이나 신입사원에게 일어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어떤 경우냐 하면, 이제 자기가 원하는 대학,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어요. 4월달에 학교라면 입학식, 회사라면 입사식을 치르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크나큰 기대를 합니다. 꿈과 희망에 가슴이 설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한 달이 지난 5월달쯤 되면 마음이 이상해지는 것이지요.

자, 이제 어려운 시험을 뚫고 대학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첫 달인 4월은 정신 없게 지나가겠지요. 그런데 이제 5월. 한 달이 지났어요. 그 때까지의 자기 목표는 오로지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자기 인생에 있어서 최종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들어갔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 하면, 그 시점에서 목표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열심히 주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았어요. 그 이유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들어갔어요. 그러면 끝이에요?

만약에 그게 끝이라고 한다면 굳이 예수님을 본받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냥 십자가만 믿고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면 되잖아요.

그러나 오늘 말씀에 의하면 분명히 예수님을 본받도록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왜?’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지요.

회사에서나 어느 사업장에서 본다면, 너 누구 밑에서 일을 배워……라고 하는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그 사람을 도와주라는 말도 되겠지만,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배워라. 장차 너에게 그 일을 맡길 것이다……라는 지시 아니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우리더러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본받아서 장차 우리에게 무슨 일을 맡기시려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역개정 성경의 말로 말씀 드리자면 딱 세 글자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바로 ‘왕 노릇’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第七の御使いがラッパを吹いた。すると大きな声が天に起こって、こう言った。「この世の王国は、私たちの主と、そのキリストのものとなった。主は世々限りなく支配される。」

요한계시록 11장 17절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私たちはあなたに感謝します。今おられ、昔おられた全能者、神である主よ。あなたは偉大な力を働かせて、王となられました。

요한계시록 20장 6절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この第一の復活にあずかる者は幸いな者、聖なる者である。この人々に対して、第二の死は何の力も持っていない。彼らは神とキリストの祭司となり、キリストとともに千年の間、王として治める。


하나님은 이 땅을 다스리시는 왕 중의 왕이시요 신 중의 신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어린양 예수님도 이 땅을 다스리시고, 그리고 장차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거기서 춤추고 먹고 노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땅을 다스리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은 왕이 된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아직 세상 끝 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왕이 되어서 세상을 다스리게 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우리는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의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많은 지도자들이 나옵니다만, 오늘은 사울과 요셉과 다윗을 짤막하게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그 때까지는 사사가 나라를 다스렸지만 백성들이 자기들도 왕을 달라고 해서 제비를 뽑아서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도 자기를 드러내려 합니다. 결국 그는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려고 하다가 갈보아 산(ギルボア)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반면에 요셉과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은 40년은 다스렸고 요셉은 애굽 총리로서 80년을 다스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 세 사람을 비교해보면 사울은 별 어려움 없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하나님의 큰 은혜로 주어진 것인지 깨닫지 못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요셉과 다윗은 그 자리까지 가기가 대단히 험난했습니다.

다윗은 전쟁터에도 나가지 못할 미성년자일 때 블레셋 골리앗을 무찌릅니다. 그렇게 해서 영웅이 되었으나, 이를 시기한 사울 왕한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결국 10년 이상을 생명의 위협도 당하고, 동굴에서 숨어지내기도 하고 하면서 그 어려움을 통해서 연단을 받고 나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어떻습니까. 그는 어린 나이에 아무런 잘못 없이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거기서 노예로 살다가 보니까 설상가상으로 이 또한 아무런 잘못 없이 누명을 쓰게 되어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하지만 요셉 역시 그 수많은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80년이나 통치하게 됩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게 되면 어려움이 없을까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왕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에 보시면 사탄에 한 번 승리한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절~3절
“1.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1.また私は、御使いが底知れぬ所の鍵と大きな鎖を手にして、天から下って来るのを見た。
2.彼は、竜、すなわち、悪魔でありサタンである古い蛇を捕らえて、これを千年の間縛り、
3.千年が終わるまで、これ以上諸国の民を惑わすことのないように、底知れぬ所に投げ込んで鍵をかけ、その上に封印をした。その後、竜はしばらくの間、解き放たれることになる。

이어서 7절 이후에는 무저갱에 들어갔던 사탄이 천년 후에 잠깐 놓여서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게 될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우리가 장차 천국에 올라간 후에도,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편안히 놀고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과 함께 다스리면서도, 우리가 극복하고 우리가 이겨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그리 길지 않은 지금까지의 제 삶을 한 번 돌아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이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 제 아내와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지금의 제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복선 회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경험들이, 그 때는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전혀 몰랐습니다.

예를 들어서 운전 하나도 그래요. 20대 때는 나는 평생 동안 서울에서 살아갈 줄 알았고, 그러면 뭐 대중교통이 잘 정비된 서울에서 운전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평생 동안 운전을 안 해도 될 줄 알았습니다.

만약에 그랬다가 갑자기 이 군마에서 살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암담합니다. 그런데 미국, 그것도 서부에서 살게 되니까 운전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요. 덕분에 아주 이 운전만 보더라도 철저하게 준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인터넷 홈페이지나 유튜브나 팟캐스트 방송 같은 것들을 보더라도, 아직까지는 여러가지로 부족합니다만, 그래도 이 모든 것을 돈 내고 배워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본다면 이 모든 것이 지금 주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해서, 미리 저한테 이렇게 훈련을 시키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영원한 생명이지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생명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이 땅에서 지내는 몇 십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영원히 주님의 나라에 간 다음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삶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도, 역시 그 이후인 하늘나라에 가서 장차 왕 노릇 하게 될 때에 쓰시려고 우리를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천국은 이 땅에서 몇 십년 살다가 들어가는 요양시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여기서 사는 삶은 연습이고, 천국에 들어간 다음이 진정한 우리의 삶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오늘 본문 말씀처럼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복음인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과 동행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크나큰 계획을 가지신 주님께 소망을 두고, 천국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는 소망을 두는 삶을 통해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주님과 함께 시련을 이겨내고, 주님을 본받으면서,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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