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3회 소망을 가진 사람
2022년 1월 16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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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4절~25절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4節~25節
“24.私たちは、この望みとともに救われたのです。目に見える望みは望みではありません。目で見ているものを、だれが望むでしょうか。
25.私たちはまだ見ていないものを望んでいるのですから、忍耐して待ち望み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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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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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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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68번째 시간으로서 “소망을 가진 사람” 望みを持つ者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8장 24절~25절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4節~25節
“24.私たちは、この望みとともに救われたのです。目に見える望みは望みではありません。目で見ているものを、だれが望むでしょうか。
25.私たちはまだ見ていないものを望んでいるのですから、忍耐して待ち望みます。”

오늘 본문에서는 ‘소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소망’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 말씀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こういうわけで、いつまでも残るのは信仰と希望と愛、これら三つです。その中で一番すぐれているのは愛です。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즉, 이 세 가지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혹시 그렇게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믿음과 소망은 어떻게 됩니까. 믿음과 소망은 사랑만큼 중요하지 않다? 사랑만 있으면 믿음과 소망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말씀인가요?

사실 이 구절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 사랑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 믿음과 소망이다……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그저 일반적인 뜻에 대해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한 가지에 대해서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바로 천국,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를 풀어서 말하자면, 믿음은 천국에 대한 믿음, 소망은 천국에 대한 소망, 그리고 사랑은 천국에서의 사랑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만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아시겠어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자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천국에 대한 믿음이고, 소망이라고 하는 것도 천국에 대한 소망인데, 사랑은 천국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천국에서의 사랑>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 차이에 대해서 우선 알아보고자 합니다.


로마서 3장 23절~24절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すべての人は罪を犯して、神の栄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
神の恵み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る贖いを通して、価なしに義と認められるからです。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잘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 돈이 많은 사람, 돈이 없는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이와 같은 조건이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 예외 없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한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 눈으로 보시기에 옳다고 인정 받을 만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자, 오랜만에 또 여쭤볼까요?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씀은,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천국에 들어갈 만큼 합격점을 받을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こういうわけで、兄弟たち。私たちはイエスの血によって大胆に聖所に入ることができます。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아직 들어가지 못했어요. 다만 자격만 주어졌을 뿐입니다.

우리는 장차 이 세상에서 생을 마감한 다음에, 아니면 그 이전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심판을 하실 때에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어떻게 해요? 그렇습니다.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이 믿음과 소망의 차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우선 이 공통점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장차 천국에 들어갈 것이지만, 그러나 아직 들어가지 못했어요. 아직 실현되기 전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믿음과 소망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실제로 천국에 들어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천국에 대한 믿음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나요?


우리가 어디 외국에 가기 위해서 비자 수속을 준비합니다. 반드시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거야. 반드시 그 나라에 갈 수 있을 거야. 하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나라에 입국을 했어요. 그런데도 아 나는 그 나라에 갈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과 소망이 있어요?

아니, 이미 그 나라에 입국을 했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무슨 그 나라에 입국할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믿음과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천국에 가지 않은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믿음과 소망이지, 이미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는데도 ‘아…천국에 들어가야지…천국에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하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것은 막연한 믿음과 소망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믿음과 소망이 뭐가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믿음과 소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가지는 것이지, 이미 이루어졌다면, 다시 말해서 이미 천국에 들어간 다음이라면 믿음과 소망은 의미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천국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なれたことによって、神は私たちに対するご自分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

가끔 사람은 실제로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때우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면서까지도 우리를 구원해주시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정말 하나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예수님까지도 아낌없이 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보혈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이 부족한 우리에게 부어주신 넘치는 사랑, 놀라운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넘치는 사랑, 놀라운 사랑은 그러면 우리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없어지나요?

남녀가 결혼을 하기 전에는 간이라도 빼줄 정도로 사랑을 하다가,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사랑이 식어버려요? 그렇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今、私たちは鏡にぼんやり映るものを見ていますが、そのときには顔と顔を合わせて見ることになります。今、私は一部分しか知りませんが、そのときには、私が完全に知られているのと同じように、私も完全に知ることになります。

오히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 예수님의 뜻에 대해서 때로는 잘 모르고 희미할 때도 있고, 그리고 또 어떤 때는, 아,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시나, 예수님이 나를 사랑해주시는 것이 맞나 하면서 의심할 때도 있지만, 이제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된다면,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완전하게 깨닫게 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こういうわけで、いつまでも残るのは信仰と希望と愛、これら三つです。その中で一番すぐれているのは愛です。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면 우주를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로켓 모양은 일반적으로 가늘고 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로켓 전체가 모두 우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밑에 기다란 부분은 대부분이 연료탱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켓을 발사하게 되면 그 연료탱크에 있는 연료를 태우면서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데, 연료를 다 쓰게 되면 빈 탱크가 든 엔진은 차례대로 분리를 해서 밑으로 떨어뜨립니다.

마치 천국에 대한 소망은 천국에 가기 위한 엔진, 연료탱크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천국을 향한 추진장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마침내 천국에 들어간 다음에는 이미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천국에 대한 소망은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 24절에도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로마서 8장 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私たちは、この望みとともに救われたのです。目に見える望みは望みではありません。目で見ているものを、だれが望むでしょうか。

먼저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아직 천국은 아니에요. 이미 천국이라면 이는 ‘소망’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다만 장차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이 사랑은 사라지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욱 명확하고 확실하게 그 크나큰 사랑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 제일이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믿음과 소망’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앞서 로켓의 예로 든다면 믿음과 소망은 모두 연료탱크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소망은 의미가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믿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기도할 때 ‘이러 이렇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내가 몸이 아파요. 그런데 기도할 때 “이 아픈 것을 치료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요. 그러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를 하잖아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아직 치료해주시기 전이기 때문에, 아직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전이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는 것 아니겠어요? 이미 치료해주시고 해결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습니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믿음과 소망은 차이가 없는 것인가요? 어떤 주석서에 보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소망으로 쓰인 단어는 믿음이라는 말과 의미상 같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오늘 본문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4절~25절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4節~25節
“24.私たちは、この望みとともに救われたのです。目に見える望みは望みではありません。目で見ているものを、だれが望むでしょうか。
25.私たちはまだ見ていないものを望んでいるのですから、忍耐して待ち望みます。”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4절 말씀을 보면, 보는 것을 바라는 것은 소망이 아니라고 합니다.(目に見える望みは望みではありません) 그러면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즉,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소망을 갖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보지 못하는 것을 바란다(まだ見ていないものを望んでいる)”는 말씀이 25절에 나오지요. 이 말씀을 ‘소망을 갖는다’는 말씀으로 바꾸어 보며 어떻게 됩니까.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즉 만일 우리가 소망을 갖는다면, 어떻게 하라고요? 그렇습니다. 참음으로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참고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에 보시면 조금 이상하게 들리실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많아요. 하지만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으니까 교회에 나오는 것이요, 믿음이 있으니까 예배를 드리는 것이요, 믿음이 있으니까 기도를 드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는 별로 어렵지 않게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문제가 뭐냐 하면, 소망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소망이 있는 사람은 참을 수 있습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만 있고 소망이 없는 사람은 어떨까요.

교회는 다녀요. 예배도 드려요. 기도도 해요. 그런데? 예, 참지를 못해요. 기다릴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보면 어떻게 기도를 합니까. 주여. 지금 당장 응답해 주시옵소서! 지금 당장 해결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그래도 안 돼요? 그러면 이제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하고 그래요. 그러면서 더 큰 소리로 주여! 지금 당장 응답해 주시옵소서! 지금 당장 해결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여리고 성 공략 장면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여호수아 6장에 보시면, 이제 광야를 40년 동안 방황한 끝에 애굽을 탈출한 광야 2세대가 가나안 땅을 공략합니다. 그 첫 고비가 여리고 성입니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습니다.

신학자들에 의하면 여리고 성 성벽은 내벽과 외벽 즉 2중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외벽 높이는 12미터에 두께는 2미터였다고 하고, 내벽 높이는 14미터에 두께는 4미터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첨단 군사 무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공략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난공불락의 성이 바로 여리고 성이었다고 하는데, 그 때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 무기가 뭐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제대로 된 갑옷조차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인간의 힘으로 여리고 성을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만약에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광야 1세대들처럼, 너희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여기까지 데리고 왔느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게 낫겠다, 뭐 그렇게 불평불만을 쏟아냈겠지요. 하지만 이제 광야 2세대들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러나 여리고 성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믿음 외에 또 하나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소망이었습니다.

여호수아 6장 3절~5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 6일 동안 하루에 한번씩 여리고 성벽을 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7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번을 돌고 나팔을 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성벽이 무너진대요.

자, 지금 여리고 성 공략이 급해요? 안 급해요? 예나 지금이나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식량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에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를 먹었다면서. 그러니까 식량은 충분했을 거야……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앞장인 여호수아 5장 12절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여호수아 5장 12절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マナは、彼らがその地の産物を食べた翌日からやみ、イスラエルの子らがマナを得ることはもうなかった。その年、彼らはカナンの地で収穫した物を食べた。

그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먹어왔던 만나는 이제 내리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의 소출이라고 해봐야 농사를 지을 틈이 있었겠습니까.

풍부한 식량은 성 안에 축적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그저 나무에 달린 열매나 먹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는 200만 명이나 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먹을 만한 충분한 식량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식량사정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만나도 없고 들에서 먹을 만한 것들은 충분하지 않아요. 하루라도 빨리 여리고 성을 공략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하세요? 예, 6일 동안 하루 한 번씩 성벽을 삥 돌고, 7일째는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불래요.


여기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7일 동안 기다리겠습니까. 아니면 당장 성벽을 무너뜨려 달라고 금식하고 밤새도록 목이 터져라고 기도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기다린다는 것은 그저 아무 것도 안하고 멍하니 있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올해는 북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됩니다만, 하계올림픽이든 동계올림픽이든 4년마다 열리게 되는데, 그 때마다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아~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위해 4년을 기다려왔습니다……라고 하지요.

이게 틀린 말이에요? 아니에요. 맞는 말입니다. 4년을 기다려왔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선수들이 달력만 보면서 4년만 기다렸겠습니까. 아닙니다. 적어도 자기 나라를 대표해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정도의 선수라면 지난 4년 동안 정말 단 하루도 허비하지 않고 끊임없이 훈련을 하면서 준비해왔을 것입니다.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기다릴 수 있는 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는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소망은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힘이자 지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약에 그들이 통곡하면서 당장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면, 그 높고 두꺼운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식량은 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 때문에 쓰러져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명을 따라 여리고 성을 돌며 7일 동안 소망을 가지고 기다린 결과,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37편 5절~6절
“5.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あなたの道を主にゆだねよ。 主に信頼せよ。主が成し遂げてくださる。
主は あなたの義を光のように あなたの正しさを 真昼のように輝かされる。


뜻을 이루는 분은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8장 24절~25절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24節~25節
“24.私たちは、この望みとともに救われたのです。目に見える望みは望みではありません。目で見ているものを、だれが望むでしょうか。
25.私たちはまだ見ていないものを望んでいるのですから、忍耐して待ち望みます。”


소망을 가진 사람은 참을 수 있습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소망을 가진 사람으로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련이 우리 앞에 닥친다고 해도, 우리의 참음이라고 하는 제물, 기다림이라고 하는 제물을 기쁨으로 주님께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놀라운 축복, 넘치는 축복,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크나큰 축복을 얻게 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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