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회 동행의 시작
2021년 12월 19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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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16절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15節~16節
“15.あなたがたは、人を再び恐怖に陥れる、奴隷の霊を受けたのではなく、子とする御霊を受けたのです。この御霊によって、私たちは「アバ、父」と叫びます。
16.御霊ご自身が、私たちの霊とともに、私たちが神の子どもであることを証ししてくださ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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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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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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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64번째 시간으로서 “동행의 시작” ともに歩むことの始まり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성탄 주일로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씀을 살펴보려고 했습니다만, 지난 추수감사주일 때와 같이 오늘 말씀드릴 로마서 차례도 성탄절에 걸맞는 말씀으로 여겨졌기에 계속해서 로마서로 말씀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16절 신약성경 249페이지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15節~16節
“15.あなたがたは、人を再び恐怖に陥れる、奴隷の霊を受けたのではなく、子とする御霊を受けたのです。この御霊によって、私たちは「アバ、父」と叫びます。
16.御霊ご自身が、私たちの霊とともに、私たちが神の子どもであることを証ししてくださいます。”

15절에 보면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다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이는 지난 주에 살펴본 성경구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앞 구절인 로마서 8장 14절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神の御霊に導かれる人はみな、神の子どもです。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요?

로마서 5장 12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

こういうわけで、ちょうど一人の人によって罪が世界に入り、罪によって死が入り、こうして、すべての人が罪を犯したので、死がすべての人に広がったのと同様に──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죄가 전파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죄인의 모습으로 태어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망 곧 죽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이 율법에 있어서 확실한 것은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첫째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면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건 제 생각이 아니에요.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다면 이는 100% 구원을 받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에 있어서 확실한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안타깝게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율법을 보면 참 지키기 어려운 것이 한 둘이 아니에요. 무슨 예물을 바치는 방법도 많고 종류도 많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매주 주일마다 양이나 염소를 끌고 와서 배를 가르고 피를 뿌리고 불로 태워가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면 얼마나 지키기가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지키기 어려운 건 그런 것만이 아닙니다.

레위기 19장 19절 후반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19절 후반부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また、あなたは二種類の糸で織った布地の衣服を身に着けてはならない。

이거 지키기 쉽습니까. 이 말씀도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신데, 그러면 이 말씀도 지키려면 무슨 면 몇 프로, 폴리에스테르 몇 프로 섞인 옷을 입으면 안돼요. 물론 여기에도 담긴 깊은 뜻이 있긴 합니다만, 이 말씀 하나 지키려고 한다 해도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우리가 율법을 100% 지키면 100%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을 100% 지키지 못할 확률을 역시 100%입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律法全体を守っても、一つの点で過ちを犯すなら、その人はすべてについて責任を問われるからです。

아니, 그 많은 율법 중에서 하나라도 어기면 모두를 어긴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무슨 수로 율법을 모두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렵고 복잡한 율법을 떨리는 마음, 지킬 수는 없는데 그러나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기 때문에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무서워하는 영을 받는 사람의 모습, 율법에 짓눌린 자들의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습니까. 아무리 율법을 지키려고 해 봤자 지키지 못하는 우리는 결국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나요?

아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 소망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로마서 3장 23절~24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すべての人は罪を犯して、神の栄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
神の恵み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る贖いを通して、価なしに義と認められるからです。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죄 아래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아무리 노력을 해 봤자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가 없어요. 이대로라면 영원한 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려 죽어 주시고, 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값없이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망이 아닌 영원한 생명,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5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5절
“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しかし時が満ちて、神はご自分の御子を、女から生まれた者、律法の下にある者として遣わされました。
それは、律法の下にある者を贖い出すためであり、私たちが子としての身分を受けるためでした。

우리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율법 아래에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셨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오늘 본문 15절 후반부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私たちは「アバ、父」と叫びます。


간혹 보면 여기서 ‘아빠’라는 말을 가지고, 무슨 어린 아이와 같이 아버지를 따르는 듯한 표현이라는 말씀을 듣는데, 그렇게 된다면 이는 앞부분과 의미가 맞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아빠’ 또는 ‘아바’라는 식으로 마치 우리처럼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른다고 하는데, 여기서의 핵심은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부른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담긴 의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서를 불문하고 요즘 언론들을 보면 부모 자식 간에 참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친부모가 자식을 죽이기도 하고 친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접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상상해보시기 바라겠습니다. 어렸을 때에 부모님이라고 하는 존재는 넘을래야 넘을 수가 없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세상에는 문제가 많은 부모들도 있을 수는 있겠으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죄 많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가장 사랑하시는 예수님마저도 아끼지 않고 주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그 나라의 왕이나 통치자를 함부로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왕이나 통치자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 그 자녀 뿐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완전히 해결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백악관이라고 한다면 세계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대통령이 사는 곳이고 업무를 보는 곳이니까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거기에 잠시라도 들어가서 대통령과 면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정부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만한 고위공직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인상적인 사진이 있어요. 어떤 어린 아이가 대통령이 앉는 의자에 턱 하니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진들을 보면 대통령 집무실에서 좋다고 뛰어놀고 있어요. 그게 누구겠습니까. 그렇지요. 대통령 아이들입니다. 당시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었을 때인데, 대통령 취임이 44세였으니까 아이들이 어렸지요.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놀고 있는 사진들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1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로마서 5장 11절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それだけではなく、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私たちは神を喜んでいます。キリストによって、今や、私たちは和解させていただいたのです。

우리가 죄인이라면 함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해주시고 나와 함깨해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며 뛰놀며 즐거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 16절을 다시 봅니다.

로마서 8장 16절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6.御霊ご自身が、私たちの霊とともに、私たちが神の子どもであることを証ししてくださいます。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도 중요하고 실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 성경을 읽으면 다 거짓말 같아요. 성경은 어디를 읽어도 다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아요.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더니 홍해가 갈라졌대. 웃기는 소리. 어떻게 바다가 갈라지냐.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여리고성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만했는데 그 높고 두꺼운 성벽이 무너졌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거 어짜다 우연히 그렇게 된 거야.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대. 앞을 못 보는 사람을 보게 하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셨대.

뭐 이런 말을 읽어도 들어도 아무런 감동이 안 와요. 다 꾸며낸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 그리고 성령님의 영이 우리 마음 안에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이구,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아요. 성경을 읽으니,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니 내 마음 속에 와 닿아요.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はじめに神が天と地を創造された。)”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主イエスの恵みが、すべての者とともにありますように。)”까지 모두가 다 나를 위해 적혀 있는 것 같아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오셨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피를 흘려 주셨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 주셨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부활하셨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고, 그리고 장차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것이 믿어져요.

남들은 일요일이라서 놀러간다는데 교회에 모여요. 그런다고 누가 돈 주나요? 오히려 십일조 감사헌금 주일헌금까지 내면서 섬겨요.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신대요.

이와 같은 일을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믿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걸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말을 한다고 해서 설득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성령님께서 해주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께서 믿으시잖아요? 그렇다면 제가 말솜씨가 뛰어 나서요?

생각해보세요. 제가 드리는 말씀이 제 이론이나 제 주장을 말씀 드리는 게 아니잖아요.

다만 성경에 이렇게 적혀 있다는 말씀만 드릴 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믿어요. 그 말씀이 믿어져요.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시작이 언제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성탄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서 모든 은혜와 사랑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이 씻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넘치기 위한 시작한 것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0장 23절~24절
“23.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それからイエスは、弟子たちの方を振り向いて、彼らだけに言われた。「あなたがたが見ているものを見る目は幸いです。
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多くの預言者や王たちは、あなたがたが見ているものを見たいと願ったのに、見られず、あなたがたが聞いていることを聞きたいと願ったのに、聞けませんでした。」


구약에서는 그 누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과 다니실 때에도 십자가가 무엇이고 보혈이 무엇인지 알지를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압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압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압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성경을 펼치면 하나님의 말씀이 넘쳐 나옵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주님이 내게 주신 편지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기도 속에서 주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우리 이웃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믿음과 말씀과 행함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언제 이루어지는 것이냐 하면 바로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실 때, 우리가 능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 이사야서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それゆえ、主は自ら、あなたがたに一つのしるしを与えられる。見よ、処女が身ごもっている。そして男の子を産み、その名をインマヌエルと呼ぶ。

이 임마누엘이라는 뜻에 대해서 마태복음 1장 23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見よ、処女が身ごもっている。そして男の子を産む。その名はインマヌエルと呼ばれる。」それは、訳すと「神が私たちとともにおられる」という意味である。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을 가리켜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지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하나님은 성전 안 지성소에 계시며, 거기는 대제사장이 그것도 1년에 단 한 번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오시고 십자가에 의해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주심으로 인해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어, 언제 어디서나 성령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년 12월 19일 현재를 본다면 한국을 비롯해서 이른바 위드 코로나……인터넷에서 보니까 이 말이 일본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더라구요. 코이케 동경 도지사가 먼저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니까 신종 코로나 때문에 각종 규제를 했으나, 규제만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규제를 풀고, 방역대책을 하면서 극복해보자 하는 정책을 했는데, 그랬다가 지금 다시 확진자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이 지금 큰일이에요. 연일 확진자나 사망자 기록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줄고 있던 일본도 이 군마현을 비롯해서 또다시 증가추세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다들 굶어 죽을 수는 없잖아요. 어떤 분 말에 의하면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이렇게 규제를 하면 코로나는 안 걸릴지 모르지만 먹고 살지 못해서 굶어 죽겠다는 말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고 하는데, 아유, 충분이 이해가 됩니다.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그래서 위드 코로나라고 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도 여전히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드 코로나라 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안 되는 것이 위드…뭐겠습니까. 위드 마귀 사탄, 위드 세상, 위드 우상……이 되면 곤란합니다.

정말 제가 간절히 당부 드립니다. 솔직히 우리가 성경에 적힌 죄를 하나도 범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술 담배요? 괜찮아요. 남들한테 민폐 안 끼치고, 그리고 건강에 해롭지 않을 정도면 그게 뭐 대수겠습니까.

다만 단 한 가지. 우상을 섬기는 일만은 절대로 하지 말아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이 사랑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바로 음란, 쉽게 말해서 바람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부사이에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부부가 서로 사랑을 해서 맺어졌는데, 그 마음이 다른 남자, 다른 여자한테 향해요.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서도 마찬가지에요.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음란한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34장 14절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あなたは、ほかの神を拝んではならない。主は、その名がねたみであり、ねたみの神であるから。

신명기 4장 24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あなたの神、主は焼き尽くす火、ねたむ神だからである。

음란이 곧 사랑의 배신인 것처럼, 우상숭배는 곧 하나님에 대한 배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무서운 죄를 멀리 하고, 오로지 우리 주님만을 섬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17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そしてわたしが父にお願いすると、父はもう一人の助け主をお与えくださり、その助け主がいつまでも、あなたがたとともにい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ます。
この方は真理の御霊です。世はこの方を見ることも知ることもないので、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あなたがたは、この方を知っています。この方はあなたがたとともにおられ、また、あなたがたのうちにおられるようになるのです。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항상 위드 하나님, 위드 예수님, 위드 성령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크리스마스, 성탄절이 왜 기쁜 날입니까. 바로 위드 하나님, 위드 예수님, 위드 성령님, 하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과 동행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그 시작이 바로 크리스마스 성탄절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허락하신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영원한 아바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 우리의 보혜사 되신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고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삶을 통하여 크나큰 기쁨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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