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7회 구원의 이유
2021년 12월 12일 설교

홍성필 목사
www.kirin.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14절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12節~14節
“12.ですから、兄弟たちよ、私たちには義務があります。肉に従って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肉に対する義務ではありません。
13.もし肉に従って生きるなら、あなたがたは死ぬことになります。しかし、もし御霊によってからだの行いを殺すなら、あなたがたは生きます。
14.神の御霊に導かれる人はみな、神の子ども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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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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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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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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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63번째 시간으로서 “구원의 이유” 救いの理由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우선 좀 우리에게 낯선 사람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오늘 우선 살펴볼 인물은 바로 ‘롯’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롯’이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성경을 어느 정도 읽어보신 분이시라면 이 ‘롯’이 누구인지 정도는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께 하나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롯이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성경에 의하면 롯은 어떤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을까요.

베드로후서 2장 6절~7절에 보면 여기서는 롯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6절~7절
“6.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また、ソドムとゴモラの町を破滅に定めて灰にし、不敬虔な者たちに起こることの実例とされました。
そして、不道徳な者たちの放縦なふるまいによって悩まされていた正しい人、ロトを救い出されました。

저는 여기서 적지 않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의로운 롯’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롯? 의로운 롯? 롯이 의롭다고?

저는 롯에 대해서 그를 의롭다고 기록한 성경에 대해서 수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우, 우리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내 생각과 성경의 기록이 다르기 때문에 성경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고 하는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이라고 하는 책이 무엇입니까.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聖書はすべて神の霊感によるもので、教えと戒めと矯正と義の訓練のために有益です。

성경은 직접적으로는 사람의 손에 의해서 기록되 것입니다만 이는 하나님의 감동, 하나님의 영감, 하나님의 뜻으로서 기록된 책으로서,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은 모두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오늘처럼 “내가 생각하기에는 롯이라고 하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성경에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적혀 있어요. 이런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 하면,

“아, 나는 롯이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에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적혀 있기 때문에, 성경은 잘못되었다”라고 해석을 하면 안 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면, “나는 롯이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에는 ‘의로운 롯’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이렇게 접근을 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롯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왜 의로운 인물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지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만, 우선 이 롯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롯은 누구인가 하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조카였습니다.

시간관계상 성경구절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만, 창세기 11장 26절에 의하면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아직 고향에 살고있을 때에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그리고 하란은 롯을 낳았습니다. 이 순서대로라면 아브라함은 첫째요 하란은 3남이 됩니다. 그리고 3남의 아들이 롯인 것이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의 동생 하란은 아버지 데라보다도 먼저 고향 땅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란의 아들이자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은 일찍이 아버지를 잃었다는 것이 됩니다.

창세기 12장과 사도행전 7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두 번 부르셨습니다. 그 첫번째는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셨고, 그리고 두 번째는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인 하란이라고 하는 곳에 머물렀을 때에 부르셨습니다.

‘하란’이라고 하는 이름이 하나는 아브라함의 동생이자 롯의 아버지 이름이기도 하고,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머물렀던 지명이기도 하고 해서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만, 하나는 사람 이름이고, 또 하나는 지명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1장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그의 가족을 이끌고 고향을 출발했을 때에는 이미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 첫째로는 당시 롯에게는 아버지 하란이 세상을 떠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없는 롯, 반면에 아브라함은 아들 즉 대를 이을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롯은 아브라함을 따랐고, 아브라함도 롯을 데리고 나왔을 수가 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의 말씀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5절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主はアブラムに言われた。「あなたは、あなたの土地、あなたの親族、あなたの父の家を離れて、わたしが示す地へ行きなさい。
そうすれば、わたしはあなたを大いなる国民とし、あなたを祝福し、あなたの名を大いなるものとする。あなたは祝福となりなさい。
わたしは、あなたを祝福する者を祝福し、あなたを呪う者をのろう。地のすべての部族は、あなたによって祝福される。」
アブラムは、主が告げられたとおりに出て行った。ロトも彼と一緒であった。ハランを出たとき、アブラムは七十五歳であった。
アブラムは、妻のサライと甥のロト、また自分たちが蓄えたすべての財産と、ハランで得た人たちを伴って、カナンの地に向かって出発した。こうして彼らはカナンの地に入った。


이 말씀의 흐름을 보시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는 롯에 대해서 언급하신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5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갔다고는 합니다만, 우선 부부는 예나 지금이나 한 몸을 이룹니다. 예를 들어서 제 경우를 본다 하더라도 제가 일본의 종교비자를 취득하고 있다면, 제 아내는 종교비자가 없더라도 가족이기 때문에 체류자격이 인정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소유와 얻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재산과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예제가 있었던 당시에는 노예도 마치 재산처럼 소유를 할 수 있었고, 그리고 매매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자신의 집에 있었던 종들을 데리고 간다는 것도 역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롯은 그렇지 않아요. 롯은 아브라함의 친족이긴 하지만 가족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종도 아닌 자유인이에요. 하나님께서는 롯을 데리고 가라는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롯을 이끌고 길을 나섭니다.

이게 별 문제가 되나 하고 생각하실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것으로 인해서 계속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13장 6절~11절
“6.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その地は、彼らが一緒に住むのに十分ではなかった。所有するものが多すぎて、一緒に住めなかったのである。
そのため、争いが、アブラムの家畜の牧者たちと、ロトの家畜の牧者たちの間に起こった。そのころ、その地にはカナン人とペリジ人が住んでいた。
アブラムはロトに言った。「私とあなたの間、また私の牧者たちとあなたの牧者たちの間に、争いがないようにしよう。私たちは親類同士なのだから。
全地はあなたの前にあるではないか。私から別れて行ってくれないか。あなたが左なら、私は右に行こう。あなたが右なら、私は左に行こう。」
ロトが目を上げてヨルダンの低地全体を見渡すと、主がソドムとゴモラを滅ぼされる前であったので、その地はツォアルに至るまで、主の園のように、またエジプトの地のように、どこもよく潤っていた。
ロトは、自分のためにヨルダンの低地全体を選んだ。そしてロトは東へ移動した。こうして彼らは互いに別れた。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인하여 소유가 늘어가게 됩니다만, 본래 롯은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재산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근심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아브라함도 느끼는 바가 있었나 보죠? 안되겠다. 우리가 헤어져야겠다 하고 롯에게 말하면서, 이후 선택권을 자신의 조카 롯에게 줍니다.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내가 왼쪽으로 가고, 네가 왼쪽으로 가겠다고 하면 내가 오른쪽으로 가겠다고 말해요.

여기서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13장 10절에 의하면 롯의 선택은 어땠습니까.

창세기 13장 10절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ロトが目を上げてヨルダンの低地全体を見渡すと、主がソドムとゴモラを滅ぼされる前であったので、その地はツォアルに至るまで、主の園のように、またエジプトの地のように、どこもよく潤っていた。


그가 좌우 중 어디를 선택할까 하고 눈을 들어보았더니, 저기 물이 넉넉한 지방이 보였습니다. 당시는 농사를 짓건 목축을 하건 간에 이 물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했지요. 그런데 요단 쪽을 바라보니까, 아 정말 땅이 비옥해 보였다는 것이에요. 거기가 얼마나 비옥해 보였냐 하면 당시 최대 선진국이었던 애굽과도 같고, 그리고 더 나아가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롯은 선택의 여지가 없겠지요. 당연히 그쪽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가 어디라고요? 그렇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어떤 곳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버린 땅, 저주의 땅입니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풍족하고,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땅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거기는 장차 멸망 당할 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 자신의 눈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 어디를 가든, 거기서 반드시 하나님께 제단을 쌓습니다. 즉 어디를 가든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롯에 대해서는 그런 기록이 어디에도 없어요. 롯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거나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만약에 롯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자기 큰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자, 좌로 갈 것인지 우로 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하는 말을 했을 때 우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겠지요.

그리고 창세기 14장 12절에 의하면 롯은 소돔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의지 했었더라면 만에 하나라도 저주의 땅 멸망의 땅인 소돔으로 인도하시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이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롯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결국 그 죄악의 도시 소돔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졌을 때가 정확히 몇 년이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창세기 12장 4절에 의하면 하란 땅을 나설 때의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다고 하고, 그리고 바로 다음 장인 13장에서 서로 결별을 하게 되기 때문에, 그로부터 얼마 안 되었을 시기였을 것입니다.

편의상 하란에서 나와서 곧바로 헤어졌다고 친다면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 때 둘은 결별을 하고 롯은 소돔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면 롯이 얼마 동안이나 살았냐 하면, 창세기 18장 10절에 의하면 내년에 사라가 아들을 낳는다고 하시면서 뿐만 아니라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겠다는 계획도 함께 말씀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듬해에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얻게 되는데, 창세기 21장 5절에 의하면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가 백 세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소돔이 멸망한 것은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 때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부터 99세 때까지 롯이 소돔에서 살았다고 한다면 자그마치 25년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롯이 소돔에 머물렀던 기간을 최대한도로 본다면 25년이라는 뜻이 됩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두 천사가 소돔으로 옵니다. 롯은 그들을 알아보고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합니다. 그랬더니 소돔 사람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19장 4절~5절
“4.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彼らが床につかないうちに、その町の男たち、ソドムの男たちが若い者から年寄りまで、その家を取り囲んだ。すべての人が町の隅々からやって来た。
そして、ロトに向かって叫んだ。「今夜おまえのところにやって来た、あの男たちはどこにいるのか。ここに連れ出せ。彼らをよく知りたいのだ。」


여기서 ‘그들을 상관하리라’ 라는 말은 쉽게 말하자면 성폭행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어떤 낯선 사람들이 롯의 집에 왔는데, 소돔사람들이 몰려와서 롯한테 말하기를, 지금 너희 집에 온 사람들을 우리에게 내놔라, 우리가 그들을 성폭행하겠다고 하면서, 노소를 막론하고 멀리서부터도 몰려왔다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이것만 보더라도 소돔이라고 하는 곳이 얼마나 죄악으로 넘쳐났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롯의 행동은 뭐냐 하면, 롯이 그 몰려온 폭도들에 말합니다.

창세기 19장 7절~8절
“7.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そして言った。「兄弟たちよ、どうか悪いことはしないでください。
お願いですから。私には、まだ男を知らない娘が二人います。娘たちをあなたがたのところに連れて来ますから、好きなようにしてください。けれども、あの人たちには何もしないでください。あの人たちは、私の屋根の下に身を寄せたのですから。」


이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악한 무리들이 손님들을 성폭행하겠다고 내놓으라고 하는데, 롯은 차라리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자기 딸들을 내줄 테니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리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보호하겠다고 한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자기 딸들을 내주겠다는 것은, 이 또한 우리 상식에는 전혀 맞지 않은 행동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것이 죄악의 도시 소돔 식 문제 해결 방식이었는 지는 모르지만, 이는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두 천사는 소돔의 멸망 계획을 롯에게 알립니다. 그러면서 네 가족만이 아니라 네 사위까지도 소돔 바깥으로 도망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가족들도 문제예요.

창세기 19장 14절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そこで、ロトは出て行き、娘たちを妻にしていた婿たちに告げた。「立って、この場所から出て行きなさい。主がこの町を滅ぼそうとしておられるから。」しかし、彼の婿たちには、それは悪い冗談のように思われた。

롯의 두 딸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약혼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같이 도망가자고 했더니만 사위들은 농담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아직 결혼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장인이 될 사람이 말을 하는데도 이를 농담이라고 들었다는 것인데,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누구는 장인어른의 말도 우습게 여길 정도로 두 사위 될 사람은 인간성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사위 될 사람들한테도 우습게 보일 정도로 롯이 신임을 얻지 못했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어찌됐든 정상적인 가족관계는 아닙니다.

16절에 의하면 천사들은 빨리 도망가라고 그들이 지체하고 있으니까, 천사들이 직접 롯과 그의 아내, 그의 딸들의 손을 잡고 강제로 끌어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26절에 의하면 롯의 아내는 이 말을 지키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맙니다 .

어디 그 뿐인가요. 31절 이후에 보면, 롯의 두 딸이 말하기를, 이제 자기들과 결혼할 두 사위들은 소돔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모두 멸망하고 말았으니 우리가 결혼을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자기들의 아버지 롯을 술 취하게 해가지고는 아버지의 아이를 갖자고 합니다.

이 두 딸은 롯이 소돔에서 사는 동안에 얻은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이 또한 소돔식 문제해결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이 또한 우리 상식에는 전혀 맞지 않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결국 두 딸은 아버지 롯의 아이를 갖게 되는데, 큰 딸이 낳은 아이의 후손은 모압 족속이고, 작은 딸이 낳은 아이의 후손은 암몬 족속인데, 이 조카 롯의 가정에서 근친상간의 결과로 낳은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후 롯은 어떻게 되었냐구요? 창세기 19장을 마지막으로 그의 행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가 몇 살까지 살았는지. 어디서 죽었는지 성경에서는 그의 흔적을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 롯의 인생,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애초에 아브라함을 따라 나선 것을 가지고 롯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의지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죄악의 도시 소돔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본래 그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아브라함도 그를 데려가지는 않았겠지요.

앞서 롯을 의롭다고 기록한 베드로후서 2장에 보더라도 2장 8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8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この正しい人は彼らの間に住んでいましたが、不法な行いを見聞きして、日々その正しい心を痛めていたのです。

이를 쉽게 표현해 본다면, 이 롯이 죄악의 도시 소돔에 살면서 거기 생활에 물들고 많이 망가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전에 그가 얼마나 착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알아본 그의 삶을 통해서 본다면 훌륭한 점이나 본받을만한 구석이 어디에도 없어요.

그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적어도 거기서 낳은 두 딸들이 시집갈 정도로 자랄 때까지 죄악의 도시 소돔에 머물렀습니다. 만약에 롯이 소돔에 노예로 팔려갔다고 한다면 마음대로 빠져나올 수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그는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자유인이었습니다. 그가 원했었더라면 언제든지 소돔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어떤 자신의 사업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해서 소돔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지금의 우리 기준으로 본다면 자신의 두 딸들을 지킨다는 강한 의지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두 딸과 결혼을 앞두고 있던 사위들로부터도 무시를 당했습니다. 아내는 천사의 말도 가볍게 여겨 결국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 딸은 지극히 잘못된 방법으로 아이를 갖게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그의 인생 어디에서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왜 롯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록했을까요.

자, 지난 주에도 드렸던 질문을 또다시 드립니다. 이번에는 정답을 말씀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성경에서 의로운 사람, 하나님으로부터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드렸지요?


예, 그렇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 사람, 구원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구원을 못 받으면 그 사람은 의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볼 때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는 의인이라는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롯은 인간적으로 볼 때 솔직히 본받을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멸망하는 소돔으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불린다 하더라도 이상할 곳이 없어요.

그렇다면 결국 처음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왜 그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불렸을까. 왜 그는 멸망하는 소돔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짚이는 딱 한 구절이 있습니다.

창세기 19장 29절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神が低地の町々を滅ぼしたとき、神はアブラハムを覚えておられた。それで、ロトが住んでいた町々を滅ぼしたとき、神はロトをその滅びの中から逃れるようにされた。


하나님께서는 애초에 롯을 부르시지는 않았습니다. 롯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도 그렇거니와 그의 가족들도 그들의 입에서 하나님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의 가정은 완전히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은 소돔의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행실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롯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롯이 사로잡혀갔을 때 아브라함은 목숨을 걸고 그를 구출해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토록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 롯을 사랑했는데, 롯이 만약에 소돔에서 멸망해버린다면 얼마나 아브라함이 가슴 아파 하겠습니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다시 말해서 롯이 이뻐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이뻐서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14절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12節~14節
“12.ですから、兄弟たちよ、私たちには義務があります。肉に従って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肉に対する義務ではありません。
13.もし肉に従って生きるなら、あなたがたは死ぬことになります。しかし、もし御霊によってからだの行いを殺すなら、あなたがたは生きます。
14.神の御霊に導かれる人はみな、神の子どもです。”

성경은 우리가 ‘빚진 자’라고 기록을 합니다. 다른 번역본에 보면 이를 ‘의무가 있다’고 번역을 한 성경도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적절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빚진 자가 무엇입니까. 이는 다른 말로 채무자, 즉 채무를 이행할 의무, 쉽게 말하자면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분명 빚진 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구원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누가 필요 없게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없이도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런 모진 고통을 당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어 주신 것은, 바로 우리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구원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격 미달인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죽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멸망하는 소돔에서 구원을 얻은 것이, 자기가 이뻐서가 아니라 아브라함 덕분에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롯이 알았다면, 그의 미래는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소돔에서는 구원을 받았으나 그 이후 그의 인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뭐가 이쁘다고 구원해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믿는 구석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わたし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いのちなのです。わたしを通してでなければ、だれも父のみもとに行くことはできません。

마태복음 10장 32절~33절
“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ですから、だれでも人々の前でわたしを認めるなら、わたしも、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の前でその人を認めます。
しかし、人々の前でわたしを知らないと言う者は、わたしも、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の前で、その人を知らないと言います。

우리가 구원을 받는 길,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단 하나, 예수님을 통한 길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열어주신 길,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열어주신 길이 구원으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길은 우리가 예수님을 시인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시요, 우리의 구주시요,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해결해주시고, 우리는 그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믿고 시인하기만 하면,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해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생각하사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しかし、この方を受け入れた人々、すなわち、その名を信じた人々には、神の子どもとなる特権をお与えになった。

그리고 오늘 본문 중에서 로마서 8장 14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4.神の御霊に導かれる人はみな、神の子どもです。”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고, 이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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