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5회 그리스도의 영을 품으라
2021년 11월 28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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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9節
“9. しかし、もし神の御霊があなたがたのうちに住んでおられるなら、あなたがたは肉のうちにではなく、御霊のうちにいるのです。もし、キリストの御霊を持っていない人がいれば、その人はキリスト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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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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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61번째 시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영을 품으라” キリストの御霊を抱きなさ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우선 본문 말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9절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9節
“9. しかし、もし神の御霊があなたがたのうちに住んでおられるなら、あなたがたは肉のうちにではなく、御霊のうちにいるのです。もし、キリストの御霊を持っていない人がいれば、その人はキリスト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

이 말씀에서는 육신에 있는 사람과 영에 있는 사람의 차이를 말씀하십니다.

전반부에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우리는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하는데, 후반부에 보면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지만,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자, 여기서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오늘 8장 9절 앞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영’이라고 말씀하시고 9절 뒷부분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과 같다는 말이 되지요. 이 점은 인정 하시나요?

좋습니다. 이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즉,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은 하나라고 하는 가르침을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은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영입니다. 예전에 잠시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모두 하나의 같은 영이다……라고 하는 주장은 성경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하나님은 본래 한 분이신데,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시고 2천년 전에는 그 하나님이 예수님이라는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와서 사역을 하셨고, 예수님이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에는 성령님이라는 모습으로 내려오셨다는 주장입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이른바 ‘양태론’이라고 하는데, 얼핏 듣기에는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우리는 성경에 있어서 크나큰 모순에 빠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サムエルは言った。「主は、全焼のささげ物やいけにえを、主の御声に聞き従うことほどに喜ばれるだろうか。見よ。聞き従うことは、いけにえにまさり、耳を傾けることは、雄羊の脂肪にまさる。

성경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은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보다도 훨씬 낫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 중앙에 먹으면 안 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도 참 짓궂으시다. 애당초 먹으면 안되는 걸 왜 만들어 놓으셨냐 하고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면 그게 사실입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렇게 짓궂은 하나님이신가요?

아니에요. 이는 하나님이 짓궂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을 지켜서 선악과를 먹지만 않는다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100% 순종한 것이라고 쳐 줄게. 그리고 그 순종의 대가로 폭포수처럼 넘치는 축복을 부어 줄게…….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게 하고 말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대신 마귀 사탄의 유혹에 빠지고 말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마귀 사탄의 말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좋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주셨던 아름다운 축복, 넘치는 축복은 다 빼앗겨버렸고, 어디 그 뿐인가요. 이후에 영원토록 그들에게 약속된 놀라운 축복들도 모두 빼앗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이 죄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라고 하는 죄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냐 하면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절~17절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장 16절~17절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神である主は人に命じられた。「あなたは園のどの木からでも思いのまま食べてよい。
しかし、善悪の知識の木からは、食べてはならない。その木から食べるとき、あなたは必ず死ぬ。」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 있는 나무들의 각종 열매는 무엇이든 먹어도 괜찮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가장 무거운 형벌인 사형에 처하겠다고 말씀을 하세요.

그러면 이것이 그토록 지키기 어려운 명령이었을까요?

당시 에덴에 어느 정도의 나무가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성경은 에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2장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神である主は、その土地に、見るからに好ましく、食べるのに良いすべての木を、そして、園の中央にいのちの木を、また善悪の知識の木を生えさせた。


이 기록에 의하면 에덴에는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수십 그루 수백 그루 정도가 아닌, 어마어마한 수의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들이 영원히 누릴 수 있을 만큼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하나님께서 금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단 하나였습니다. 비율로 보면 어느 정도가 되었을까요.

이 역시 10분의 1이나 100분의 1도 아닙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만 분의 일, 수천 분의 일 정도는 되었겠지요.

하나님은 사람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 수백만 분의 일, 수천만 분의 일만 지키면 내가 놀라운 축복, 넘치는 축복을, 언제까지요? 예, 그렇습니다. 영원토록 주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랑,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사람은 어떻게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사람은 불순종, 배신으로 갚아버렸습니다.

그 결과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이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라고 하는 죄를 용서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빌립보서 2장 5절~8절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キリスト・イエスのうちにあるこの思いを、あなたがたの間でも抱きなさい。
キリストは、神の御姿であられるのに、神としてのあり方を捨てられないとは考えず、
ご自分を空しくして、しもべの姿をとり、人間と同じようになられました。人としての姿をもって現れ、
自らを低くして、死にまで、それも十字架の死にまで従われました。

그렇습니다. 불순종했던 아담을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순종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주시고 구원으로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칫 잘못 생각하기 쉬운 점에 대해서 볼까 합니다.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성부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하나라는 교리 아닙니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떤 죄를 해결해 주셨다고 말씀하셨죠?

그렇습니다. 불순종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저질렀던 이 불순종이라고 하는 죄를 예수님의 철저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동일한 존재, 구약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모습으로, 2천년 전에는 똑 같은 하나님이 예수님이라는 모습으로, 그리고 역시 똑 같은 하나님이 지금은 성령님이라는 모습으로 역사하신다면, 여기에는 ‘순종’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잖아요.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죽도록 순종해요? 이는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지극히 비논리적인 주장입니다. 이와 같은 비논리적인 주장이 성경이라고 한다면, 구약의 모든 말씀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도, 그리고 마지막 날에 임할 심판도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이 양태론이라고 하는 주장 자체가 말장난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이를 좀 어려운 말로 하자면 세 신격이 있다고 하는데, 이를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은 하나의 존재가 아니에요. 분명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렇게 세 하나님이 존재하십니다. 그러나 이 세 하나님의 본질이 하나라는 교리가 바로 삼위일체인 것이지요.


그러면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동등한 관계에서 ‘순종’이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A와 B가 동등한 친구사이인데, 아니면 직장 입사동기인데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서 순종을 한다?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그 관계는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무슨 관계입니까. 그렇죠. 상하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제 문제가 생깁니다. 삼위일체의 교리에 의하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이와 같은 세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상하관계가 존재한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얼마 전에 제가 어떤 일본 분으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자신은 어디어디에 속한 사람이래요.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神は三位一体ではなく、イエスは神の子で神に次ぐ別個の存在であり、「エホバ」こそ至高の唯一の神である、と聖書そのものから学んでいます。

이게 그러니까 자신이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가 아니라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다음 가는 존재로서,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성경에서 배웠다고 말합니다.

이를 풀어서 말하자면 이렇게 할 수 있겠지요.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했다면서. 그리고 순종했다는 대표적인 증거가 십자가라면서.
삼위일체라고 하면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동등하다는 것인데,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분명 상하관계 아니야?
상하관계인데 어떻게 하나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라고 하는 교리는 잘못된 거야.”

누군가가 이렇게 주장을 한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아……그러고보니 그러네……그러시겠습니까?

있잖아요.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단들이 얼마나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지 아십니까.

물론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모릅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마귀 사탄들이 얼마나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아십니까.

창세기에서 보면 에덴에서 마귀가 어떻게 사람을 유혹하는 방법을 알았을까요.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죄를 짓도록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あなたは園のどの木からでも思いのまま食べてよい。
しかし、善悪の知識の木からは、食べてはならない。その木から食べるとき、あなたは必ず死ぬ。」

라고 하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작전을 짜서 교묘하게 하와, 이 말씀을 어기도록 만들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신약에 보면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도 마귀 사탄이 뭐라고 합니까.

마태복음 4장 6절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こう言った。「あなたが神の子なら、下に身を投げなさい。『神はあなたのために御使いたちに命じられる。彼らはその両手にあなたをのせ、あなたの足が石に打ち当たらないようにする』と書いてあるから。」

이는 분명 마귀 사탄이 한 말입니다만, 여기서 “기록되었으되……”이후에 나온 말은 성경 시편 91편 11절~12절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 장면은 마귀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유혹하고 있는, 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장면입니다.

여러분, 교회 오래 다닌 사람들 유혹하기 딱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그럴 듯하게 자기 입맛에 맞춰서 자기들 멋대로 해석해 놓고는, 그 엉터리 교리를 가지고 믿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여기에 왜 넘어갑니까.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인 것이에요.

우리가 아는 믿음 좋은 사람들,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 물론 좋은 것이지요. 하지만 간혹 보면 그런 경우 있지 않습니까. 성경을 들고 주여~주여~불로~불로~불로~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물론 그래요. 성경에도 사무엘상 1장에 보시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ハンナ)가 너무나도 마음이 괴로워서 기도를 하는데 소리는 안 들리고 입술만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보고 제사장 엘리가 술취한 줄 알았다고 하는데, 마음이 괴롭고 그러면 정말 기도도 안 나올 때도 있어요. 정말 주여……주여……밖에 안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닌데도 그저 손 들고 주여~주여~불로불로불로……그러면 주님이 뭐라고 그러시겠습니까. 가만히 서서 우리가 말씀 드리기를 기다리실 텐데……맨날 주여 주여 불로불로불로……그러면,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 그러시지 않겠어요?

비록 엉터리이긴 합니다만, 이단들도 성경을 공부하고, 마귀들도 성경을 달달 외우는데 우리가 성경을 모른다면 어떻게 이단들을 대항하고 마귀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성경책은 앞에 놓고 기도하라고, 손에 들고 흔들면서 기도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책에 적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8장 9절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9. しかし、もし神の御霊があなたがたのうちに住んでおられるなら、あなたがたは肉のうちにではなく、御霊のうちにいるのです。もし、キリストの御霊を持っていない人がいれば、その人はキリスト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해도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안 된다거나, 아니면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안 된다거나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한다면 이는 곧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영에 있는 사람,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이다 라고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도 만약에 앞서 소개해드린 그 메일을 보내신 사람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은 별개라는 말이 되기 때문에 이 성경 구절은 틀렸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그 분은 오로지 성경을 통해서 배웠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 분이 자기가 어디 다닌다고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아무튼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다음으로 상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는 건너뛸 수 없는 관계입니다. 언제는 아버지였다가 언제는 아들이었다가 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체라고 한다면 이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서 어느 회사에 회장님과 부회장님이 있다고 해요. 회장님은 아버지고 부회장님은 아들입니다. 이제 회사 직원이 어떤 서류에 결제를 받으려고 하는데 부회장님은 사인을 해줬어요. 그런데 회장님이 반대를 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밑에 사람이 아무리 결제를 해서 올린다 하더라도, 최종결정권자가 사인을 안 해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서류를 만들어서 처음부터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장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결정권은 다 부회장한테 맡길게. 부회장이 사인하면 내가 한 걸로 치게.”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예, 그렇습니다. 부회장님이 사인한 걸 가지고 다시 회장님한테 서류를 가지고 갈 필요가 없어요.

부회장님의 결정이 곧 회장님의 결정이 되기 때문에 부회장님의 사인 만으로 모든 것이 다 성취된 것입니다.

그런 경우는 성경에도 나옵니다.

창세기 41장에 보시면 애굽의 왕 바로가 꿈을 꿉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꿈 해석을 하지 못해요. 그러자 당시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서, 그것도 모자라 억울한 누명까지 써서 감옥에 갇혀 있던 요셉이 불려와서 꿈을 해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꿈의 해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애굽에는 7년 동안 풍년이 있다가 그 후에는 7년 동안 혹독한 흉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께서는 지혜로운 자를 세워서 애굽을 다스리게 하셔서 혹독한 흉년을 대비하게 하십시오.”

이렇게 말하니까 애굽 왕 바로가 말합니다.


창세기 41장 38절~43절
“38.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そこで、ファラオは家臣たちに言った。「神の霊が宿っているこのような人が、ほかに見つかるだろうか。」
ファラオはヨセフに言った。「神がこれらすべてのことをおまえに知らされたからには、おまえのように、さとくて知恵のある者は、ほかにはいない。
おまえが私の家を治めるがよい。私の民はみな、おまえの命令に従うであろう。私がまさっているのは王位だけだ。」
ファラオはさらにヨセフに言った。「さあ、私はおまえにエジプト全土を支配させよう。」
そこで、ファラオは自分の指輪を指から外してヨセフの指にはめ、亜麻布の衣服を着せ、その首に金の首飾りを掛けた。
そして、自分の第二の車に彼を乗せた。人々は彼の前で「ひざまずけ」と叫んだ。こうしてファラオは彼にエジプト全土を支配させた。

이름도 없는 이국 땅에서 종으로 팔려온 요셉, 그것도 모자라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는 죄수로서 감옥 갇혀 있던 요셉이, 이 한 순간에 강대국 애굽의 2인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야말로 벼락 출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으면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때 애굽 왕 바로가 뭐라고 말합니다
.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이 왕이라고 하는 자리에 앉아있는 것 뿐이니까 네가 이 나라를 다스리라고 하면서 인장 반지, 말하자면 왕의 도장을 주어서 네가 마음대로 하라고 하는 권한을 위임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私がまさっているのは王位だけだ、エジプト全土を支配させよう、といって、王の印章である自分の指輪を外してヨセフに与え、自分の権限を委任する場面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ります。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마태복음 28장 18절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イエスは近づいて来て、彼らにこう言われた。「わたしには天においても地においても、すべての権威が与えられています。

빌립보서 2장 9절~11절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それゆえ神は、この方を高く上げて、すべての名にまさる名を与えられました。
それは、イエスの名によって、天にあるもの、地にあるもの、地の下にあるもののすべてが膝をかがめ、
すべての舌が「イエス・キリストは主です」と告白して、父なる神に栄光を帰するためです。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세우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결제 서류에 사인을 했는데 하나님이 놀라시면서 야, 예수야. 너 지금 왜 그러냐. 그러면서 반대를 하시거나, 아니면 아버지 하나님이 사인을 했는데 예수님이 놀라시면서, 아이구 아버지, 그러시면 안 됩니다. 한다거나 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는 마치 회장님과 부회장님의 의견이 충돌할 수도 있으니까 둘 모두에게 결제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나 예수님 중에 한분이 허락했다 하더라도 다른 한 분이 반대할 수도 있다면 두 분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나중에 뒤탈이 없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은 항상 그 본질이 동일하십니다. 의견의 충돌이 없으세요.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권한을 위임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도 빌립의 대화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8절~10절
“8.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ピリポはイエスに言った。「主よ、私たちに父を見せ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満足します。」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ピリポ、こんなに長い間、あなたがたと一緒にいるのに、わたしを知らないのですか。わたしを見た人は、父を見たのです。どうしてあなたは、『私たちに父を見せてください』と言うのですか。
わたしが父のうちにいて、父がわたしのうちにおられることを、信じていないのですか。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言うことばは、自分から話し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わたしのうちにおられる父が、ご自分のわざを行っておられるのです。

이 말은 뭐예요? 부회장님, 부회장님이 하시는 건 알겠는데, 회장님도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습니다. 이것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는 것은 다 아버지가 허락하신 말씀이야. 그런데 왜 아버지를 보이라고 그래? 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생각해보세요. 만약에 회장님이 자기 아들인 부회장님한테 모든 권한을 위임했는데, 부하직원이 말하기를 그래도 회장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우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는 회장님과 부회장님 둘 모두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그렇잖아요?

첫째로는 회장님이 부회장님한테 모든 권한을 위임했는데, 부하직원은 그 위임 받은 부회장님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요,

그리고 둘째로는 위임을 했다고 하는 회장님의 명령을 따르지 못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만약에, 아~ 예수님은 2인자니까 예수님 만으로는 부족해요. 빨리 하나님 나오라고 해요. ……라고 하는 것은,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예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일이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도 무시하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하나님 다음 가는 존재이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믿어야 한다, 라고 하는 주장이 어떻게 성경을 공부했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しかし、助け主、すなわち、父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お遣わしになる聖霊は、あなたがたにすべてのことを教え、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話したすべてのことを思い起こさせてくださいます。

요한복음 15장 26절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わたしが父のもとから遣わす助け主、すなわち、父から出る真理の御霊が来るとき、その方がわたしについて証ししてくださいます。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성령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이며(父から出る真理の御霊), 하나님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영(父がイエス様の名によってお遣わしになる聖霊)이라고 하십니다.

과거에 보면 왕이 왕명으로 사신을 보내게 되면, 그가 어떤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왕으로서 대우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누구이든 간에 왕이 왕의 이름으로 명령을 보내는 사람이었기에, 그 사신이 전하는 말에는 왕과 똑 같은 권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령님에 대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父から出る真理の御霊),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보내시는 성령(イエス様の名によってお遣わしになる聖霊)이라고 하신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일들 역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8장 9절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しかし、もし神の御霊があなたがたのうちに住んでおられるなら、あなたがたは肉のうちにではなく、御霊のうちにいるのです。もし、キリストの御霊を持っていない人がいれば、その人はキリスト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

우리는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영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주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 진리의 영을 품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을 품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사는 것, 예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기쁨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첫째도 순종, 둘째도 순종,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삶을 드리는 길 뿐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 그리고 성령님의 영을 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순종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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