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4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2021년 11월 21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7절~8절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7節~8節
“7.なぜなら、肉の思いは神に敵対するからです。それは神の律法に従いません。いや、従う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8.肉のうちにある者は神を喜ばせることができ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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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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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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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60번째 시간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神様を喜ばせる者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오던 로마서 강해를 잠시 쉬고 다른 구절로 말씀을 준비할까 했습니다만, 오늘 전할 차례인 로마서 구절을 보니 이 또한 추수감사절, 특히나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도 많이 힘든 과정을 지나고 있는 와중의 추수감사절이라는 뜻에 맞는 내용이기에 오늘도 계속해서 로마서로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이 둘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육의 사람은 애굽을 의지하고 영의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가끔 영의 사람이라고 하면 이를 좀 오해하는 분들도 계시지 않나 합니다. 무슨 기도를 해서 응답을 받았다고 한다거나, 꿈이나 환상 속에서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 때 이러이러한 말씀을 했으니까 그 말씀을 믿으라는 거예요. 자기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아서 여러분께 전한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의외로 상당히 많습니다.


어느 날 문득 제가 기도를 하기 위해서 산에 올라갔다 오겠다고 해요. 그리고 한 두 달 정도 안 보이다가 갑자기 제가 책 한 권을 가지고 나타났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제가 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과 경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성경에 없다고 해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2천년 전에 기록된 것이지만 이 책은 바로 지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에 기록된 말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홍 목사에게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고 여러분께 말씀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제 말씀을 믿는 분들도 계실 수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안 믿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데 제 말을 안 믿겠다고 말씀하신다면 좀 서운하기는 하겠지요.

그러면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 홍 목사님은 영의 사람이니까 하나님께서 홍 목사님께 말씀을 전하셨다면 믿어야지. 그러시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인간적으로는 기쁠 지는 모르지만 성경적으로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1장 6절~8절
“6.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6.私は驚いています。あなたがたが、キリストの恵みによって自分たちを召してくださった方から、このように急に離れて、ほかの福音に移って行くことに。
7.ほかの福音といっても、もう一つ別に福音があ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あなたがたを動揺させて、キリストの福音を変えてしまおうとする者たちがいるだけです。
8.しかし、私たちであれ天の御使いであれ、もし私たちがあなたがたに宣べ伝えた福音に反することを、福音として宣べ伝えるなら、そのような者はのろわれるべきです。

이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한 내용입니다. 즉 바울이 말하기를 자신들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어디서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이나 천사가 나타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과 다른 새로운 말씀을 전했다고 해서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 이것이 참으로 황당하게 들리실 지 모르지만, 이른바 신흥종교집단에 보면 다들 그래요. 거기 교주가 그런 체험을 했다는 말은, 사실 흔히 쓰는 수법입니다.

하지만 그런 게 영의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 그 무엇보다도 성경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4절~15절
“14.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14.しかし、驚くには及びません。サタンでさえ光の御使いに変装します。
15.ですから、サタンのしもべどもが義のしもべに変装したとしても、大したことではありません。彼らの最後は、その行いにふさわしいものとなるでしょう。

아무리 휘황찬란한 빛 가운데에서 나타난 천사라 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성경 말씀과 다른 것을 전한다고 한다면 이는 마귀의 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하게 하고 우리를 교란시키려는 사탄의 짓이기 때문에, 이는 담대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교회에 보면, 아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말씀을 받았다 하면서 이것은 이래야 한다, 저것은 저래야 한다고 하면서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또한 영의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영으로부터 장해를 받고 있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 성경이 몇 천년 전에 적힌 책이라고 해서 옛날 이야기입니까. 21세기를 사는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책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聖書はすべて神の霊感によるもので、教えと戒めと矯正と義の訓練のために有益です。
神の人がすべての良い働きにふさわしく、十分に整えられた者となるためです。

성경은 직접적으로는 사람의 손에 의해 적힌 글입니다만, 이는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적힌 것이기에, 우리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성경은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イエス・キリストは、昨日も今日も、とこしえに変わることがありません。

사람은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제는 A가 옳은 줄 알았는데 오늘은 B가 옳은 것 같다……이런 경우도 많이 있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20년 전, 200년 전, 2000년 전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 당시 옳았던 것은 지금도 옳고, 그 당시 옳지 않았던 것은 지금도 여전히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언제나 들을 수 있고, 이 성경만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이 성경에 의해서 구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진정한 영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는 아브라함이 애굽을 의지해서 봉변을 당하는 일을 소개해드렸습니다만, 이와 같은 일을 보고 아브라함을 과소평가하면 안 됩니다.

사실 우리도 과거를 되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넘어지지 않고 인도해 주셨으니 참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일 아니겠습니까.

자, 아브람의 경우를 보면 아브라함의 기도제목, 그것은 땅도 아니요 재산도 아닌 아이를 갖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창세기 17장 17절에 의하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 차이는 열 살이었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이미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적게 잡아 25년만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이루어져서 아브라함이 100세,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가 90세 때 그토록 원했던 아들 이삭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된 것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도 그의 아내 사라도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분이 계셨는데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믿음, 진정으로 놀라운 장면은 창세기 22장에 등장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끔찍하지요?


창세기 22장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神は仰せられた。「あなたの子、あなたが愛しているひとり子イサクを連れて、モリヤの地に行きなさい。そして、わたしがあなたに告げる一つの山の上で、彼を全焼のささげ物として献げなさい。」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차라리 내가 주기로 했던 가나안 땅, 역시 그 말 취소할 게. 다시 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 아니면 내가 너한테 주었던 재산들을 다 뱉어 내라. 만약에 그러셨다면 그나마 감당할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삭은 그야말로 지금까지 아브라함이 살아온 믿음의 핵심 아니었겠습니까. 아들을 준다고 했기에 그 동안 그 약속을 믿었던 것이요, 믿음으로 기다렸더니 노년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할렐루야.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는데,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아들을 내 놓으시래요. 그것도 그냥 데려가시겠다는 것도 아니고,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제물을 제단 위에 올려 놓고 불로 태워서 드리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손으로 제물을 죽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은 뭐냐 하면, 그 아끼는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서, 그리고 불로 태워서 바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창세기 22장 2절.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의 다음 구절, 창세기 22장 3절은 어떤 말씀이 어울릴까요.

“이에 아브라함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하며 여호와를 원망하더라”

すると、アブラハムは大声をあげて叫び、一晩中泣き明かし、主に対して激しく不平を言った。

이런 구절 어떻습니까. 이런 말씀이 와도 대단히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아브라함이 이런 말을 했다는 구절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제 그는 과거에 애굽으로 갔다가 봉변을 당하거나,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아이를 낳거나 하는 그와 같은 아브라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끔찍한 명령을 듣고도 아브라함은 불평불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순종을 하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번제를 드릴 때 쓸 장작을 싣고, 그리고 하나님께 번제로 바칠 이삭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창세기 22장 4절에 의하면 사흘 길을 걸어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곳에 도착해서는 이제 이삭을 결박하고 칼을 들고 그 아들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자, 곧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창세기 22장 11절
“11.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そのとき、主の使いが天から彼に呼びかけられた。「アブラハム、アブラハム。」彼は答えた。「はい、ここにおります。」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름을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부르시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구약에서는 창세기 46장 2절에서 “야곱아 야곱아” 하고 야곱을 두 번 부르시고, 출애굽기 3장 4절에서는 “모세야 모세야” 하고 모세를 두 번 부르시고, 그리고 사무엘상 3장 10절에서는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사무엘을 두 번 부르셨는데, 이름을 처음 두 번 부르신 경우가 바로 이 창세기 22장 11절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두 번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참고로 신약에서는 누가복음 10장 41절에서 마르다를, 누가복음 22장 31절에서 시몬을, 그리고 사도행전 9장 4절에서 사울이라고 했던 바울을 두 번 부르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장면으로 나옵니다.

이렇게 보면 총 7개 장면에서 이름을 두 번 부르시는데, 이 중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이 아브라함을 두 번 부르셨을 때가 가장 다급함이 느껴진다고 하겠지요. 그렇잖아요. 지금 막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들었던 순간에 이를 만류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기 때문이지요. 마음 같아서는 두 번이 아니라 서너 번, 그것도 아주 빠르고 큰 소리로 말씀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막 이삭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을 제지하시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2장 12절
“12.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御使いは言われた。「その子に手を下してはならない。その子に何もしてはならない。今わたしは、あなたが神を恐れていることがよく分かった。あなたは、自分の子、自分のひとり子さえ惜しむことがなかった。」

그리고 창세기 22장 16절~18절에서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창세기 22장 16절~18절
“16.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こう言われた。「わたしは自分にかけて誓う──主のことば──。あなたがこれを行い、自分の子、自分のひとり子を惜しまなかったので、
確かにわたしは、あなたを大いに祝福し、あなたの子孫を、空の星、海辺の砂のように大いに増やす。あなたの子孫は敵の門を勝ち取る。
あなたの子孫によって、地のすべての国々は祝福を受けるようになる。あなたが、わたしの声に聞き従ったからである。」

저는 이 말씀을 보면 성경을 통틀어서 하나님이 이처럼 흥분하시면서 기뻐하시는 장면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의 순종을 너무나도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이 이 말씀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갖지 않으십니까.

이로 인해서 아브라함은 진정으로 믿음의 조상으로서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물이 될 뻔만 이삭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당시 이삭은 몇 살이었을 것 같으십니까.

우리는 언젠가부터 그를 어린 소년 정도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은 지금 제단에서 결박을 당한 채 죽임을 당하려는 그 순간에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그는 저항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어린 아이였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하기 쉽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당시 그의 나이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록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일부 신학자들은 당시 그의 나이에 대해서 흥미로운 추측을 합니다.

창세기 22장에 이와 같은 기록이 있고, 그리고 바로 다음 장인 창세기 23장 1절에 보면 사라가 127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해서 아마도 이 사건이 있고 곧바로 얼마 후에 사라가 죽은 것이 아니냐 하고 추측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라가 127세 때 이삭이 몇 살인지를 계산해보면 되는데, 이삭은 아브라함 100세 때, 그리고 사라가 90세 때 태어납니다. 사라가 90세 때 이삭이 0살이라고 한다면 사라가 127세라고 한다면 37년 뒤가 되겠지요. 그러니까 당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이삭의 나이는 37세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을 합니다.

전후를 살펴본다면 정확히 37세가 아닐 수는 있습니다. 그 이유는 창세기 22장 19절에 의하면 그들은 돌아와서 브엘세바(ベエル・シェバ)에 살았다고 하는데, 23장 2절에 보면 헤브론 기럇아르바 (ヘブロン、キルヤテ・アルバ)에서 죽었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주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삭의 나이는 어린 아이나 소년이 아닌 거의 30대 중 후반 정도의 나이였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은 무리가 없다고 봐야겠지요.

창세기 25장 20절에 의하면 이삭이 결혼한 나이가 40세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남자 나이 37세라고 한다면 어른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자신을 결박하려는 나이든 아버지의 손을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 바로 직전에는 아버지가 칼로 자신을 살해하려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시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24장에 보시면 아브라함의 종이 아브라함과 이삭이 받은 축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창세기 24장 35절~36절
“35.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36.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35.主は私の主人を大いに祝福されましたので、主人は富んでおります。主は主人に、羊や牛、銀や金、男女の奴隷、らくだやろばをお与えになりました。
36.私の主人の妻サラは、年をとってから主人に男の子を産み、主人はこの子に自分の全財産を譲っておられます。

믿음에는 희생에서 시작해서 희생으로 끝나는 믿음이 없습니다. 슬픔에서 시작해서 슬픔으로 끝나는 믿음도 없습니다.

시편 126편 5절~6절
“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涙とともに種を蒔く者は 喜び叫びながら刈り取る。
種入れを抱え 泣きながら出て行く者は 束を抱え 喜び叫びながら帰って来る。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주님께 순종의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8장 7절~8절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8章7節~8節
“7.なぜなら、肉の思いは神に敵対するからです。それは神の律法に従いません。いや、従う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8.肉のうちにある者は神を喜ばせることができません。”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은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갈 수가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고난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믿음과 인내와 순종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때에, 오로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인내하고 순종한 아브라함처럼 30배 60배 100배,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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