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0회 항복선언과 감사
2021년 10월 24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7장 20절~25절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ローマ人への手紙 7章20節~25節
“20.私が自分でしたくないことをしているなら、それを行っているのは、もはや私ではなく、私のうちに住んでいる罪です。
21.そういうわけで、善を行いたいと願っている、その私に悪が存在するという原理を、私は見出します。
22.私は、内なる人としては、神の律法を喜んでいますが、
23.私のからだには異なる律法があって、それが私の心の律法に対して戦いを挑み、私を、からだにある罪の律法のうちにとりこにしていることが分かるのです。
24.私は本当にみじめな人間です。だれがこの死のからだから、私を救い出してくれるのでしょうか。
25.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神に感謝します。こうして、この私は、心では神の律法に仕え、肉では罪の律法に仕えているのです。”


한국어 동영상


일본어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성경소설 <요셉의 재회> 다운로드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56번째 시간으로서 “항복선언과 감사” 降伏宣言と感謝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은 천국에 가셨습니다만 한국의 옥한흠 목사님이라고 하면, 한국에서 사랑의 교회를 세우시고, 지금도 많은 분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목사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영상으로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목사님이 젊으셨을 때 미국의 희곡인 ‘세일즈맨의 죽음’ セールスマンの死 (Death of a Salesman) 이라고 하는 작품을 보시고는 연극에 대한 매력을 느끼셨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저도 역시 연극에 대한 매력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옥한흠 목사님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희곡을 접한 것은 아닙니다만, 여러분께서는 혹시 일본에 유리 가면이라는 만화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문학작품과 일개 만화라고 한다면 너무 수준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유리가면이라고 한다면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그래도 만화 중에서는 비교적 수준이 있는 만화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그 유리가면 만화 제1권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들었던 느낌은, 아아, 나는 왜 연극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지금 제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이고, 가슴에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다고 한다면, 어쩌면 연극을 시작해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유리가면 제1권을 보면요, 지금은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만, 아마 그 여자주인공이 연극 오디션을 보는데, 딱 면접실에 들어가니까, 앞쪽에 면접관들이 앉아 있고 가운데에 넓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 의자가 하나 놓여 있어요. 보통 면접이라고 하면 그 의자에 앉아서 질문에 답하고 뭐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 의자를 보니까 옆으로 뉘여 있었습니다.

이 여자 주인공이 들어가자 면접관이 뭐라고 했냐 하면, 이 뉘여 있는 의자에 맞는 포즈를 취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여자 주인공은 그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 여자 주인공이 순간적으로 지혜를 발휘해서 멋진 연기를 취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을 보고, 아, 정말 연극이란 매력적이구나, 하고 당시 저는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왜 느닷없이 연극 이야기를 하냐 하면, 오늘 본문 중에서 24절을 보셨으면 합니다.

로마서 7장 24절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4.私は本当にみじめな人間です。だれがこの死のからだから、私を救い出してくれるのでしょうか。


여러분께서 연극 오디션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면접관이 이 성경구절을 주면서, 이 말씀에 감정을 담아서 연기를 해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있다가 나중에 다시 한번 여쭤볼 테니까요 그와 같은 내용을 한 번 생각해 보시면서 함께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자, 우선 그럼 20절부터 하나하나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7장 20절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0.私が自分でしたくないことをしているなら、それを行っているのは、もはや私ではなく、私のうちに住んでいる罪です。

바울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선을 행하고자 합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합니다. 의롭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선을 행할 수가 없어요. 자꾸만 악을 행하게 됩니다. 죄를 짓게 됩니다.

나는 착한 마음,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내 안에서 욕망이 끓어 오릅니다. 죄를 지으려는 욕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나는 죄를 짓고 싶지 않은데, 자꾸 죄를 지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오늘 20절에서는 죄를 지으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제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선과 악, 의와 죄의 문제에 대한 핵심에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을 봅니다.

로마서 7장 21절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1.そういうわけで、善を行いたいと願っている、その私に悪が存在するという原理を、私は見出します。

일반적으로 바울이 쓴 글에 등장하는 ‘법’이라고 하는 말은 율법이나 계명을 뜻합니다만, 여기에 등장하는 ‘법’이라고 하는 말은 ‘원리’ 또는 ‘법칙’이라는 뜻으로 이해를 하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선을 행하고 싶어도, 내가 의롭게 살아가려고 해도, 자꾸만 나는 악을 행하게 되고, 자꾸만 죄를 짓게 되는 그 원리나 법칙, 쉽게 말하자면 그 이유가 뭐냐 하면, 결국 내 안에 악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바울은 말을 이어갑니다.

로마서 7장 22절~23절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2.私は、内なる人としては、神の律法を喜んでいますが、
23.私のからだには異なる律法があって、それが私の心の律法に対して戦いを挑み、私を、からだにある罪の律法のうちにとりこにしていることが分かるのです。

여기서 바울은 흥미로운 대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지체’와 ‘내 마음’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꾼다면 육신과 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로마서 8장에서 주로 다루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혹시 그런 말씀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어딘지 하는 말씀입니다. 이 거리는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 동안 도달하지 못하는 거리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머리에서 가슴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자로 재보면 30~40센티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지 않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머리로는 알고 있어요. 그러나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이 가슴까지 와서 실천으로 옮겨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매일 운동하는 것, 그게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 그게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옳지 않은지를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어디로 알고 있습니까. 그렇죠. 머리로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게 가슴까지 도달해서 실천으로 옮겨지기까지는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이지요.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잘 알고 있어요. 내 마음으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의이고 무엇이 죄인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실천을 하지 못하느냐 하면 바로 내 지체 속에 있는 죄가 나를 사로잡습니다. 나를 방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옳은 일을 하려고 해도, 자꾸만 죄를 짓게 된다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오늘 본문 로마서 7장 20절~23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앞서 제가 질문을 드렸던 24절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7장 24절을 단순히 앉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읽어보라고 한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이 24절은 이 한 구절만을 가지고는 그 감정을 느낄 수가 없고, 이 24절에 이르는 그 흐름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예전에 특별히 로마서 7장은 영화 한 편과도 같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영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면 7장 7절부터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를 해왔으니까 오늘은 복습하는 의미에서 간단히 7절부터 23절까지의 그 흐름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 율법아 악한가요? 아니요 율법은 선합니다. 율법이 있기 때문에 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알고 보니까 내가 온통 죄만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했던 짓들을 계명에 비추어 보니까 모두가 다 죄입니다.
죄가 나를 속이고 나를 죽입니다.
나는 죄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런데 마치 죄한테 팔린 종처럼 나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내 마음으로는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의인지를 나는 알고 있지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 때문에 나는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의를 행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내가 내 힘으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 다음에 로마서 7장 24절이 오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4절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4.私は本当にみじめな人間です。だれがこの死のからだから、私を救い出してくれるのでしょうか。

저는 이 흐름 속에서 24절을 보면 한 그림이 생각납니다.

여러분께서는 에드바르 뭉크(エドヴァルド・ムンク)의 절규라는 그림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그 그림을 어떻게 해석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오랫동안 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는 사람이 절규를 외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만, 얼마 전에 한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까, 이 사람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그 손이 단순히 얼굴을 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귀를 막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그림은, 이 사람이 절규를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절규 소리를 듣고 놀라서 귀를 막고 있는 표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뭉크는 간혹 환각증세를 느끼곤 했다고 하는데, 당시 그는 이 그림에 대해서, 자연을 뚫고 들려오는 한없는 절규 소리를 들었다……이렇게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그림에 있는 사람은 그 절규 소리를 듣고 놀라서 귀를 막고 있는 뭉크 자신이라는 뜻이라는 거죠.

아, 정말 사람은 배워야 돼요. 그러고 보니까 이 그림이 다시 보여지더라고요.

저는 이 7장 24절에서 ‘오호라’라는 글을 보면 마치 바울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죄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바울이 머리카락을 쥐어 뜯고 바닥을 대굴대굴 굴러가면서 소리치는 절규 소리가, 정말 듣는 이로 하여금 이 그림의 등장인물처럼 귀를 막고 싶을 정도의 절규 소리, 정말 “아아악!!!” 하고 들려오는 절규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 절규를 외치면서 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해요. 곤고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참으로 비참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을 해 봤자 이 죄악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정도로 비참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외칩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だれがこの死のからだから、私を救い出してくれるのでしょうか。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서 ‘사망의 몸(死のからだ)’이라고 합니다. 사망의 몸,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선을 외면하고 악을 저지릅니다. 의에서 멀어지고 죄와 가까워지고 맙니다. 이대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으니 ‘사망의 몸’이라고 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둘째로 바울은 ‘누가 나를 건져 내랴(だれが私を救い出してくれるのでしょうか。)’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던 바울이라 하더라도 자기 머리로는, 그리고 자기 힘으로는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죄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내 힘과 능력으로 내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이는 그야말로 바울의 항복선언, 아무리 연구를 하고 아무리 그 많은 지식을 총동원한다 하더라도 결국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나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뿐이었기에 바울은 두 손 들고 항복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나 스스로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면, 누군가가 나를 이 죄 가운데에서, 이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내 삶 속에서 나를 건져 주어야 할 텐데, 도대체 누가 나를 구원해줄 수 있겠는가, 하고 처절하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 마지막 로마서 7장 25절입니다.

로마서 7장 25절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25.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神に感謝します。こうして、この私は、心では神の律法に仕え、肉では罪の律法に仕えているのです。

우리는 아무리 우리가 발버둥을 쳐도 죄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신 분이 계시니, 바로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このキリストにあって、私たちはその血による贖い、背きの罪の赦しを受けています。これは神の豊かな恵みによることです。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주셨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저주를 다 받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채찍을 다 맞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피를 쏟으시고,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모두 용서 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레위기 19장 4절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あなたがたは偶像の神々に心を移してはならない。また、自分たちのために鋳物の神々を造ってはならない。わたしはあなたがたの神、主である。

사도행전 4장 11절~12절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あなたがた家を建てる者たちに捨てられた石、それが要の石となった』というのは、この方のことです。
この方以外には、だれによっても救いはありません。天の下でこの御名のほかに、私たちが救われるべき名は人間に与えられていないからです。」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다른 것들은 모두 헛된 우상들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은 오로지 예수님 한 분이시라는 사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깨끗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예수님,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 주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이제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충만한 삶,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311회 주님 안에 →

← 제309회 되찾아 주신 주님

 

기린선교회
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