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9회 되찾아 주신 주님
2021년 10월 17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7장 14절~19절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ローマ人への手紙 7章14節~19節
"14.私たちは、律法が霊的なもの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ます。しかし、私は肉的な者であり、売り渡されて罪の下にある者です。
15.私には、自分のしていることが分かりません。自分がしたいと願うことはせずに、むしろ自分が憎んでいることを行っているからです。
16.自分のしたくないことを行っているなら、私は律法に同意し、それを良いものと認めていることになります。
17.ですから、今それを行っているのは、もはや私ではなく、私のうちに住んでいる罪なのです。
18.私は、自分のうちに、すなわち、自分の肉のうちに善が住んでいないことを知っています。私には良いことをしたいという願いがいつもあるのに、実行できないからです。
19.私は、したいと願う善を行わないで、したくない悪を行っ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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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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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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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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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55번째 시간으로서 “되찾아 주신 주님” 取り戻してくださった主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지만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데,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노력으로는 율법을 지킬래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 율법이라고 하는 것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저는 율법을 이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법률과 비교해왔습니다만, 사실 법률보다도 더욱 엄격한 것이 율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 보면 우리의 삶을 달리기 경주로 비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께서도 학교에 다닐 때 달리기를 하셨던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우선 달리기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죠. 빨리 달려야 합니다. 10명이 달리는데 그 중에서 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나머지 9명보다 빨리 달려서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 그것이 달리기에서 이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가려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더 발을 크게 벌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들이 앞서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죠.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아니, 이를 좀 더 정확하게 말씀 드리자면 그렇게 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관점이 조금 다릅니다. 성경적으로 보았을 때 달리기에 대한 승리 조건은 무엇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27절
2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24.競技場で走る人たちはみな走っても、賞を受けるのは一人だけだということを、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ですから、あなたがたも賞を得られるように走りなさい。
25.競技をする人は、あらゆることについて節制します。彼らは朽ちる冠を受けるためにそうするのですが、私たちは朽ちない冠を受けるためにそうするのです。
26.ですから、私は目標がはっきりしないような走り方はしません。空を打つような拳闘もしません。
27.むしろ、私は自分のからだを打ちたたいて服従させます。ほかの人に宣べ伝えておきながら、自分自身が失格者になら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す。

여기에 보시면 어떻습니까.

자, 24절에서는 달리기에서 상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하라고 합니다.
첫째 요건으로는 25절, 모든 일에 절제를 하라고 하지요.
26절,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하지 말래요.
27절, 만약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버림을 당할 수 있다고 성경을 기록합니다.

이를 정리하면 뭐예요? 달리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첫째로 절제를 하고, 둘째로 정해진 방향으로 달리라고 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빨리 달리라는 말이 없어요. 그렇다면 바울은 달리기에 대해서 몰라서 그랬겠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로 보자면 그는 당시 상당한 지식인 계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세상적으로 본다면 상당한 엘리트였지요.

그런데 그가 기록하기를 달리기에서 이기기 위한 조건으로 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절제’와 ‘방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멋진 말씀 아닙니까.

이를 풀어 본다면 ‘절제’는 무엇입니까.

물론 양식 있는 선수들은 그렇지 않겠습니다만, 아무리 자기가 이기고 싶다고 해도 다른 선수를 방해해서는 안 되겠지요. 아무리 이기고 싶다고 하더라도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정도는 가릴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은 것이 절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방향성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절제 있게 달린다 하더라도 엉뚱한 곳으로 달린다면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정해진 코스에 맞춰서 결승점을 통과했을 때 진정으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두 단어, ‘절제’와 ‘방향성’이라고 하는 것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는 바로 ‘규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 규칙을 보면 아마도 대부분의 규칙에서 ‘반칙’을 규정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대한 반칙인 경우에는 ‘실격’이 되는 요건이, 그것도 몇 가지나 나와 있을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실격’을 당할만한 중대한 반칙 중에서 하나라도 위반을 하면, 아무리 다른 규칙들을 잘 지켰다 하더라도 실격처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律法全体を守っても、一つの点で過ちを犯すなら、その人はすべてについて責任を問われるからです。

우리 세상에서는 분명 가벼운 죄와 무거운 죄가 있습니다. 가벼운 죄를 지으면 가벼운 죄에 해당하는 책임, 무거운 죄를 지으면 무거운 죄에 해당하는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러나 율법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는 마치 달리기 선수가 아무리 빨리 달렸다 하더라도 중대한 반칙을 하나라도 어겼다면 실격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율법 중에서 하나라도 어긴다면 ‘율법을 어긴 죄인’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어긴 죄인이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지 않는 영혼, 의로 여기심을 받지 못하는 영혼, 구원을 받지 못하는 영혼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결론은 무엇입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마지막 심판 날에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고 만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냐 하면, 간단하지요.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말면 되는 것이지요. 참 쉽죠?

자, 여기서 한 가지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성선설과 성악설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성선설은 사람은 본래 선천적으로 선하게 태어난다는 것이고, 성악설은 본래 악하게 태어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느 쪽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있으시겠습니다만, 질문은 여러분의 생각이 아닙니다. 질문은 무엇이냐 하면, 성경은 성선설과 성악설, 어느 쪽이라고 기록하고 있을까요.

이는 간단합니다.

창세기 8장 21절 중반부
“……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人の心が思い図ることは、幼いときから悪であるからだ。……


예전에 어떤 목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만, 자기 딸아이가 아직 어려서 말을 간신히 할 때였는데, 그 때 어디 놔두었던 과자가 있었는데, 그게 없어졌더래요. 분명 그 아이가 먹은 것은 확실했답니다.

그래서 장난으로 그 딸아이한테 말하기를 “여기 아빠가 먹으려고 했던 과자가 어디 갔지? 네가 먹었니?” 라고 물었더니,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아니, 안 먹었더.”라고 하더랍니다. 그걸 보고 참 놀랐다고 해요.

아니, 그 조그마한 아이가, 아직 말도 서툰 그 어린 아이가, 누군가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벌써 ‘거짓말’을 할 줄 알았다는 거예요.

이 거짓말에 대한 역사는 깁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성경에서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 사람은 바로 동생을 죽인 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 8절~9절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カインは弟アベルを誘い出した。二人が野にいたとき、カインは弟アベルに襲いかかって殺した。
主はカインに言われた。「あなたの弟アベルは、どこにいるのか。」カインは言った。「私は知りません。私は弟の番人なのでしょうか。」

가인은 자신이 분명 아벨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벨에 대해서 물으시자 자기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최초로 거짓말을 한 사람이 가인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거짓말을 무엇이었습니까.

이는 지난 시간에도 알아보았던 것처럼, 에덴에서 뱀으로 가장한 마귀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한 거짓말입니다.

창세기 3장 1절~5절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1.さて蛇は、神である主が造られた野の生き物のうちで、ほかのどれよりも賢かった。蛇は女に言った。「園の木のどれからも食べてはならないと、神は本当に言われたのですか。」
2.女は蛇に言った。「私たちは園の木の実を食べてもよいのです。
3.しかし、園の中央にある木の実については、『あなたがたは、それを食べてはならない。それに触れてもいけない。あなたがたが死ぬといけないからだ』と神は仰せられました。」
4.すると、蛇は女に言った。「あなたがたは決して死にません。
5.それを食べるそのとき、目が開かれて、あなたがたが神のようになって善悪を知る者となることを、神は知っているのです。」

솔직히 거짓말 중에서 모든 거짓말이 나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쁜 거짓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을 해한다거나, 또는 악한 목적으로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바로 나쁜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가인의 거짓말이나 마귀의 거짓말은 무엇입니까. 가인은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면하려는 악한 목적으로 거짓말을 했던 것이고, 마귀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킬 목적으로 거짓말을 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둘 모두 악한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악한 거짓말을 한 적이 없나요? 아니, 꼭 거짓말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가 죄를 지은 적이 없겠습니까.

자, 이론상으로 돌아가본다면 우리가 죄를 안 지을 수는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성경에서 하라는 것 하면 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냐 하는 것이죠.

누구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래 율법은 지키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좀 더 지키기 쉽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그게 사실인가요? 성경을 보시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절~22절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昔の人々に対して、『殺してはならない。人を殺す者はさばき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われてい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兄弟に対して怒る者は、だれでもさばきを受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兄弟に『ばか者』と言う者は最高法院でさばかれます。『愚か者』と言う者は火の燃えるゲヘナに投げ込まれます。



이 말씀은 어떻습니까. 여기 22절에 나오는 ‘라가’라는 말은 욕설이라고 합니다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실제로 살인을 하지 않았더라도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욕설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 27절~28절

마태복음 5장 27절~28절
"27.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7.『姦淫してはならない』と言われてい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
28.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情欲を抱いて女を見る者はだれでも、心の中ですでに姦淫を犯したのです。

이 말씀에 의하면 그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간음을 하지 않았더라도, 단순히 음흉한 생각을 가지고 이성을 바라본 것만으로도 이미 간음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세요.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율법을 좀 지킬 수 있도록 쉽게 해주셨다? 아니요. 오히려 지키기 어렵게 하셨으면 하셨지, 전혀 지키기 쉽게 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짓궂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인가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내가 나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율법을 지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율법의 본질을 말씀해주심으로 인해서, 네 힘과 노력으로는 절대로 지킬 수가 없다고 단언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우선 로마서 7장 15절~19절까지를 보겠습니다.

로마서 7장 15절~19절
“15.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15.私には、自分のしていることが分かりません。自分がしたいと願うことはせずに、むしろ自分が憎んでいることを行っているからです。
16.自分のしたくないことを行っているなら、私は律法に同意し、それを良いものと認めていることになります。
17.ですから、今それを行っているのは、もはや私ではなく、私のうちに住んでいる罪なのです。
18.私は、自分のうちに、すなわち、自分の肉のうちに善が住んでいないことを知っています。私には良いことをしたいという願いがいつもあるのに、実行できないからです。
19.私は、したいと願う善を行わないで、したくない悪を行っています。

15절에서 바울이 고백하기를, 나는 내가 원하는 것,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데, 실제로 내가 하는 일은 뭐래요? 내가 원하지 않는 것, 미워하는 일을 내가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16절은요.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알아요. 그리고 그 율법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도 알아요. 그런데 정작 내가 행하는 일들이, 어떻게 된 게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것들만 하려고 해요.

17절. 아하. 이제 알겠어요. 내 머리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를 알고 있지만, 내가 원하지 않은 것을 행하는 이유, 내가 미워하는 일을 행하는 이유는, 나 스스로가 하는 짓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가 하는 것이에요.

18절. 내 육신 안에 있는 죄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내가 선을 행할 수가 없어요.

19절 그 결과 나는 선을 행하지 않고 오히려 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이렇게 고백하면서 괴로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모르면 속이 편해요. 나는 어차피 모르니까 내가 편한 대로 하면서 살면 된다……뭐 이러면 자기도 좋겠는데, 그러면 바울이 율법을 몰라요? 예수님을 몰라요?

아니요. 바울은 누구보다도 율법에 정통하고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자기 안에 있는 죄 때문에 선을 행하고자 해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너무나도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선을 행하려고 해도 자꾸만 죄를 지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바로 오늘 본문 중 14절에 나와 있습니다.

로마서 7장 14절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4.私たちは、律法が霊的なもの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ます。しかし、私は肉的な者であり、売り渡されて罪の下にある者です。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공부를 해왔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선하다는 것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죄 아래에 팔렸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죄 아래에 팔린다는 말씀. 이는 마치 그런 것입니다. 좀 무서운 말입니다만, 자 어떤 사람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종으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이 사람이 선한 종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악한 종으로 살아갈 것인지는 무엇으로 판가름 납니까.

그것은 바로 좋은 주인에게 팔려가면 좋은 일을 하는 종이 되겠지만, 악한 주인에게 팔려가면 악한 일만 하는 종이 되지 않겠습니까.

종은 자기한테 결정권이 없습니다. 그러니 항상 주인의 뜻대로 해야 하는 것이지요.

좋은 주인은 항상 좋은 일을 하도록 명령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도와 주라고 지시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좋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하 게 되니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반면에 악한 주인에게 팔려간 종은 어떻습니까. 살인을 하라, 도둑질을 하라, 간음을 하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러면 자기는 악한 일을 하기 싫은데도, 자기 주인이 악한 일만 시키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이 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주인이 보기에 그 악한 주인 밑에서 고생하고 있는 종을 구원해주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악한 주인 밑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는 간단합니다. 종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에는 물건처럼 매매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악한 주인 밑에 있는 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선한 주인이 팔려갔던 종을 다시 사오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면 다시 사올 수 있을까요. 물론 악한 주인이 생각하기에, 자기가 데리고 있는 그 종을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겼더라면 헐값에 넘겨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악한 주인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그 종을 돈 몇 푼 가지고는 넘겨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대가로 지불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5장 7절~10절
“7.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8.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7.子羊は来て、御座に着いておられる方の右の手から巻物を受け取った。
8.巻物を受け取ったとき、四つの生き物と二十四人の長老たちは子羊の前にひれ伏した。彼らはそれぞれ、竪琴と、香に満ちた金の鉢を持っていた。香は聖徒たちの祈りであった。
9.彼らは新しい歌を歌った。「あなたは、巻物を受け取り、封印を解くのにふさわしい方です。あなたは屠られて、すべての部族、言語、民族、国民の中から、あなたの血によって人々を神のために贖(あがな)い、
10.私たちの神のために、彼らを王国とし、祭司とされました。彼らは地を治めるのです。」

선한 주인이 악한 주인 밑에서 고통 받고 있는 종을 되찾기 위해서 지불한 대가는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인한테 팔려간 종이 자기 힘이나 노력으로 주인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종이 아무리 노력을 해 봤자 자신의 주인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어요. 괜히 도망치기라도 했다가 붙잡히면 그야말로 죽음 뿐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악한 주인, ‘마귀 사탄’이라고 하는 이름, 또는 ‘세상적 세속적’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악한 주인 밑에 있는 한,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악한 일을 저지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피를 흘려 주심으로 인해서, 우리를 악한 주인으로부터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우리를 이 땅의 왕처럼 높이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스스로 죽임을 당하시면서까지 피를 흘려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대가로 우리를 사서 구원해 주셨겠습니까.

이사야 52장 13절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見よ、わたしのしもべは栄える。彼は高められて上げられ、きわめて高くなる。


우리는 이제 악한 마귀 사탄의 종이 아니라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자녀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주님만 믿고 주님만 의지하면 형통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존귀하게 해주시는 역사가 일어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주님의 피로써 구원 받은 우리, 악한 마귀 사탄 밑에서 거하다가, 세상 밑에서 거하다가 주님의 보혈로 되찾아온 우리는 더 이상 마귀 안에 거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 밑에 거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あなたがたがわたしにとどまり、わたしのことばがあなたがたにとどまっているなら、何でも欲しいものを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それはかなえられます。

시편 103편 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あなたの一生を 良いもので満ち足らせる。 あなたの若さは 鷲のように新しくなる。


이제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대가로 우리를 되찾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고, 주님께 순종하는 종이 되어서,

장차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독수리처럼 높이 들려 새롭고 존귀하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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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