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7회 율법의 깨달음
2021년 10월 3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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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7장 9절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ローマ人への手紙 7章9節
“私はかつて律法なしに生きていましたが、戒めが来たとき、罪は生き、私は死に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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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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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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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53번째 시간으로서 “율법의 깨달음” 律法の悟り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로마서 7장 7절부터 시작한 바울의 고민,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에 대해서 죽어 주셨으니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까, 우리를 꽁꽁 묵어 두었던 율법은 이제 필요가 없다. 버려버리자……하면 대단히 편하겠지만, 그렇지가 않기 때문에 시작한 바울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9절에 보면 바울은 이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2장 3절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私は、キリキアのタルソで生まれたユダヤ人ですが、この町で育てられ、ガマリエルのもとで先祖の律法について厳しく教育を受け、今日の皆さんと同じように、神に対して熱心な者でした。


빌립보서 3장 5절~6절
“5.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私は生まれて八日目に割礼を受け、イスラエル民族、ベニヤミン部族の出身、ヘブル人の中のヘブル人、律法についてはパリサイ人、
その熱心については教会を迫害したほどであり、律法による義については非難されるところがない者でした。

그는 태어나고 팔일 만에 율법대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그는 유대인이 아닌 집안에서 태어났다가 나중에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닌, 대대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증거입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라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뿌리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증거이지요. 말하자면 족보 있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그야말로 율법을,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바울은 자신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실 어디 대학교를 나왔느냐, 어디 졸업장이 있느냐 하는 것을 많이 쳐준다고 한다면, 당시에는 누구에게 배웠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가말리엘이라는 선생님 밑에서 배웠다고 하는데,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5장 34절 전반부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ところが、民全体に尊敬されている律法の教師で、ガマリエルというパリサイ人が議場に立ち、

이 기록에 의하면 가말리엘이라는 선생님, 말하자면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교수님은 당시 일부 백성이 아니라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교수님한테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하지만 혼자서 한 번에 수 백명, 수 천명을 가르칠 수는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까 미루어 짐작컨대 많은 사람들이 그 가말리엘 교수님에게 배우고 싶어했겠지만, 여기에는 선별작업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알기 쉽게 말하자면 지금으로 본다면 입학시험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본에서도 가장 들어가기 힘든 대학이 동경대입니다만, 왜 동경대가 가장 들어가기 힘들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들어가기 힘든 것이고, 동경대 졸업장을 가진다 하면 그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다는 것은, 지금으로 본다면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가말리엘이 무슨 선생님이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율법교사였습니다. 바울은 스스로 말하기를 그 저명한 율법교수님 밑에서 엄한 교훈을 받았다. 즉, 대단히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기를 “전에 내가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私はかつて律法なしに生きていましたが)”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렇게 열심히 율법을 공부해 놓고서는 자신이 율법을 몰랐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겸손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しかし、人は律法の行いによっては義と認められず、ただキリスト・イエスを信じる信仰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ということを知ったからこそ、私たちもキリスト・イエスを信じたのです。これは、律法の行いによってではなく、キリストを信じる信仰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ためです。なぜなら、律法の行い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者は、ひとりもいないからです。

자신은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당시 명문대학에서 율법을 철저하게 공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율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거기다가 자신은 이른바 뼈대 있는 이스라엘 집안 출신으로서 이 율법에 있어서는 출신 성분도 그렇고 학벌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완전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알고 나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나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고 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하, 지금까지의 나는 율법을 달달달달 외우고만 있었지 그 진정한 뜻, 하나님께서 율법에 담은 진정한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당당했습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완전한 집안 출신이고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트, 율법 수재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잘못가르치는 유해분자라고 생각하고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모두 다 잡아들였던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악한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가 율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고, 자기가 지금까지 배워온 지식에 비추어 봤을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죽이는 것이 율법적으로 완전한 행위이자,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게 되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진정한 율법이 무엇이고, 진정한 의가 무엇인지를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을 보시겠습니다.

빌립보서 3장 9절 중반부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私は律法による自分の義ではなく、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による義、すなわち、信仰に基づいて神から与えられる義を持つのです。

자, 오랜만에 여러분께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 받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뼈대있는 집안이고, 그야말로 당대 최고 명문대학에서 열심히 율법을 공부하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하더라도, 무엇이 없으면 안 됩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예수님을 믿어야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역시 바울은 참 머리가 좋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렇게 긴 말을 바울은 단 한 줄로 정리를 해놓았습니다.

예습하는 의미로 로마서 10장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0장 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律法が目指すものはキリストです。それで、義は信じる者すべてに与えられるのです。

참 멋진 말씀 아닙니까.

이는 말하자면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해도, 아무리 율법 공부를 많이 해도, 결국 의를 이루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 뿐,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이 고백하기를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내가 그래도 율법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그래도 꽤 의로운 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알게 되니까 어떻대요?

디모데전서 1장 15절 후반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私はその罪人のかしらです。


예, 오히려 내가 의인은 무슨 의인, 참으로 내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 그것도 죄인 중의 괴수였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내 안에서 죄가 살아나고 내가 죽어간다고 해요. 그럼 얼마 마다 죽는데요? 한 번만 죽는데요?

고린도전서 15장 31절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兄弟たち。私たちの主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私が抱いている、あなたがたについての誇りにかけて言いますが、私は日々死んでいるのです。

그렇습니다. 바울은 날마다 매일매일 죽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저를 감히 바울과 비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만, 저 자신도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남에게 민폐도 끼치고,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도덕적으로 보나 논리적으로 보나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보면, 왜 그렇게 자꾸 옛날 생각이 문득문득 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면요 저 혼자 부끄러운 거예요. 아, 내가 왜 그 때 그랬을까. 내가 그러지 말걸 정말 내가 괜히 그 때 그래 가지고는……. 정말 어떤 때는요, 하루 동안에 떠오르는 후회의 가짓수 만도 한 두개가 아닙니다.

자, 그럼 이 시점에서 솔직해집시다. 이런 것. 과연 저만 그럴까요?

예전에 보니까 어느 만화 등장인물이 죽기 직전에 “내 생애에 한 점의 후회도 없다(我が生涯に一片の悔い無し)”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여러분께서는 그럼 천국 가기 전에 그런 말을 남기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이는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만약에 실제로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남겼다면, 그 사람은 다음 둘 중의 하나, 아니면 두 가지 모두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정말 자신의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얼굴 가죽이 두꺼운 사람이거나, 아니면 둘째로, 기억력이 부족한 사람이거나……이 둘 중의 하나, 아니면 둘 모두인지도 모르지요.

사실 그 만화 등장인물도요, 얼마나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많이 죽였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러면서 한 점의 후회도 없다? 자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렸는데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했습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만화이긴 하지만요.

누구는 그렇게 말합니다. 자신은 후회하는 삶을 살기 싫다고, 자신의 인생에서 후회라는 말은 없다고 장담을 합니다. 그런 말을 하면 멋있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대부분이 어쩌면 후회를 해야 하는데, 잘못을 뉘우쳐야 하는데 뉘우치지 못하는 인생, 회개하지 못하는 인생인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가 단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들키지 않았다고 해도, 단 한번도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람이 계십니까. 아니요. 그런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바울도 자신을 되돌아보면 죄인, 그것도 죄인의 괴수였다고 하는데, 어느 누가 단 한번도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왔다고 장담할 수가 있겠습니까.

2021년 현재 일본 돈 천엔짜리에 인쇄된 인물이 노구치 히데요입니다. 이 사람은 어렸을 때 한 손에 화상을 입어서, 손이 잘 펴지지 않았대요. 그럼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겨낸 끝에 유명한 세균학자가 되어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이 정도 인물이 되니까, 당시 아직 살아 이는데도 이 사람에 대해서 위인전이 나왔다고 하는데, 이 책이 자신에게 보내져 왔다고 해요. 그래서 그 책을 읽어보았다고 하는데, 이 노구치 히데요 박사는 그 책을 읽고 대단히 불쾌해졌다는 것입니다.

노구치 히데요는 자신의 일대기에 대한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뭐라고 했냐 하면,

“이 책은 정말 나쁜 책이다. 나는 이 책에 적힌 것처럼 완벽한 인간이 아니야. 나만이 아니라 누구도 이렇게 완벽한 사람은 없고, 나 또한 그처럼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아. 이건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야” 라고 했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이 분은 적어도 얼굴 가죽이 두껍거나 아니면 기억력이 부족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 박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 분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특별히 부족해서였을까요?

사실 누구는, 아니, 우리 자신은 무슨 좋은 점만 있나요. 그리고 그러한 안 좋은 점들을 감추려고 한다면, 영원히 감추어 질 것 같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8장 17절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隠れているもので、あらわにされないものはなく、秘められたもので知られないもの、明らかにされないものはありません。

누가복음 12장 2절~3절
“2.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おおわれているもので現されないものはなく、隠されているもので知られずにすむものはありません。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が暗闇で言ったことが、みな明るみで聞かれ、奥の部屋で耳にささやいたことが、屋上で言い広められるのです。


로마서 14장 10절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それなのに、あなたはどうして、自分の兄弟をさばくのですか。どうして、自分の兄弟を見下すのですか。私たちはみな、神のさばきの座に立つことになるのです。


고린도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私たちはみな、善であれ悪であれ、それぞれ肉体においてした行いに応じて報いを受けるために、キリストのさばきの座の前に現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そして、人間には、一度死ぬことと死後にさば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ように、



요한계시록 20장 12절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また私は、死んだ人々が大きい者も小さい者も御座の前に立っているのを見た。数々の書物が開かれた。書物がもう一つ開かれたが、それはいのちの書であった。死んだ者たちは、これらの書物に書かれていることにしたがい、自分の行いに応じてさばかれた。

이처럼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고, 그 때에는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된다고 성경은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누구는 하나님을 믿으면 심판대 앞에 안 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누구는 서고 누구는 안 서고 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선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기도원에 들어가서 몇 날 며칠이고 금식하면서 회개해야 할까요. 뭐,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저는 훨씬 더 좋은 방법을 제안 드릴까 합니다.

훨씬 더 쉬운 방법이라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더 쉬운 방법이 아닌 더 좋은 방법입니다.




로마서 12장 17절~18절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だれに対しても悪に悪を返さず、すべての人が良いと思うことを行うように心がけなさい。
自分に関することについては、できる限り、すべての人と平和を保ちなさい。

갈라디아서 5장 14절~15절
“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律法全体は、「あなたの隣人を自分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という一つのことばで全うされるのです。
気をつけなさい。互いに、かみつき合ったり、食い合ったりしているなら、互いの間で滅ぼされてしまいます。

나 자신이 내 힘만으로 의로울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는 이웃을 굴복시키거나 이용하려고 할 뿐이지, 이웃과 진정으로 화목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저 사람보다 나아 보인다 하더라도, 저 사람이 아무리 나보다 못나 보인다 하더라도, 결국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다 죄인이요, 내가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녔다 하더라도, 결국은 저 사람이나 나나 예수님 없으면 우리는 천국 문턱을 넘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예수님을 붙잡아야 천국에 들어가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온 율법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律法全体は、「あなたの隣人を自分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という一つのことばで全うされるのです。

이제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고, 모두 함께 구원을 받고,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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