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6회 승리를 위하여
2021년 9월 26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7장 8절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 7章8節
“しかし、罪は戒めによって機会をとらえ、私のうちにあらゆる欲望を引き起こしました。律法がなければ、罪は死んだも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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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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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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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52번째 시간으로서 “승리를 위하여” 勝利のために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 로마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보면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 고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는 바울의 번민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 사도 바울이 번민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죄에 대한 번민입니다. 제가 보았을 때 이 부분은 정말 로마서 안에 있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렇다면 그 영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 하면, 사실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그럼 언제 시작했는가 하면 바로 지난 주부터였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지지난 주까지 말씀 드리기를,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에 대하여 죽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를 꽁꽁 묵고 있었던 율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생각 안해도 돼. 율법은 나쁜 거야. 구시대의 유물이다.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자, 이제 율법을 버리자……이렇게 하면 가장 알기 쉬운 것이겠으나, 지난 주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어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주심으로 인해서 어떠한 죄가 용서 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율법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따라서 율법을 알아야지만 우리는 우리가 용서 받은 죄를 깨닫게 되고, 우리를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 것 아니에요? 예수님이 율법에 대해서 죽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자유로움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기쁨을 누리면서 남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참으로 기쁨과 감사로 넘쳐야 하는데……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용서를 받았으면 이제 죄를 짓지 말고 거룩하고 정직하고 순결하고 신실하고……또 뭐가 있죠? 아무튼 그렇게 살아야 하겠지요?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자, 주일날 교회 예배를 마치고, 이제 오늘부터는 성경에 적힌 말씀대로,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품고서, 좀 거룩하고 정직하고 순결하고 신실하고……아무튼 그렇게 좀 살아보자……하는데, 그런데 사실 문제가 있습니다.

솔직한 말씀, 그게 되냐 하는 것입니다.

이 고민, 지금 누가 하고 있냐 하면, 바로 사도 바울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바울의 글을 보면서 감동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는 이유가 뭐냐 하면, 정말로 우리에게 와 닿는 내용이에요. 나는 거룩하고 순결하니까 너희들도 나처럼 죄를 짓지 말고 살아라……가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여러분, 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아무리 죄를 안 짓고 살아보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됩디다. 그래서 참 저도 고민이에요……이렇게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지난주부터 시작해서 로마서 7장 마지막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말 바울의 절절한 번민을 털어놓고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오늘은 8절 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7장 8절
“8.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8.しかし、罪は戒めによって機会をとらえ、私のうちにあらゆる欲望を引き起こしました。律法がなければ、罪は死んだものです。

여기서 우리는 이 말씀을 조심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자, 일단 간단하게 본다면요, 우리 몸 안에 죄가 들어오게 되면 어떻게 되냐 하면,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탐심을 이루어 낸대요.


우리가 지난 번에 공부를 했지요?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는 것은 무엇에 대한 죄라고 말씀 드렸지요? 그렇습니다. ‘율법에 대한 죄’, 즉 윤리나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 ‘율법적인 죄’, 율법에 명확하게 기록된 ‘죄’를 가리킵니다.

이를 분명하게 언급한 부분이 바로 8절 마지막 부분이에요.

로마서 7장 8절 마지막 부분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8……律法がなければ、罪は死んだものです。


이건 무슨 말씀이냐 하면, 우선 여기서 ‘죄가 죽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죄가 사라졌다’라는 뜻이 아니라, ‘죄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있기 때문에 죄를 분간할 수 있는 것이지, 율법이 없었다면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죄가 아닌지 분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죄라고 하는 것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된다면, 우리로 하여금 율법적인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죄가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과정을 자세히 보면 어떻게 죄가 들어온대요?


예, 죄가 기회를 타서 들어온다고 합니다. 기회를 탄다는 것은 뭐냐 하면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이때다 싶을 때에 우리 몸 만으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죄가 기회를 탄다……바울 서신 중 에베소서에 보면 바울은 다른 표현으로 흥미로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7절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悪魔に機会を与えないようにしなさ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을 절대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는 100% 마귀 짓입니다.

창세기에도 보시면 하나님이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마귀가 유혹을 해서 하와가 먹고, 그리고 그 남편인 아담도 먹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라는 죄를 짓게 됨으로써, 그 놀라운 축복, 에덴이라고 하는 곳에서 쫓겨나게 되고 말었던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혹시 무술, 특히 검도 시합 같은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검도를 보면 서로 죽도가 막 부딪치는 격렬한 시합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어떤 때를 보면, 시합이 이미 시작했는데 서로가 마주보고 미동도 하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둘이 그냥 힘들어서 쉬고 있는 거예요? 아닙니다. 서로 공격하는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떤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냐 하면, 바로 상대방의 틈, 가장 약한 곳, 순간이라도 공격하기 쉬운 틈을 노리고 있다가, 잠깐이라도 방심한 부분이 발견되면 바로 그 곳을 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틈을 보이지 않고 있어요. 그러면 상대방이 이쪽으로 치고 들어올 수 없으니까 꼼짝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이 코로나 사태가 2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끔 인터넷에 보면 특히 교회에서 이런저런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여러 가지 근거를 들면서, 하나님이 이러이러해서 우리에게 코로나라고 하는 환난을 겪게 하신다……그런 말씀을 종종 하신다고 해요.

그래서 좀 자세히 그와 갈은 말씀을 들어보니, 뭐 상상은 자유지요. 하지만 별로 성경적이지 않은 말씀을 명확한 근거도 없이 마치 자기가 무슨 선지자라도 되신 것처럼 예배 시간에 전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성경해석에 있어서 적지 않은 오해를 던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하다 보니, 이는 마치 코로나처럼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잠시 우리가 긴 쇠사슬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쇠사슬이라고 하는 것은 작은 쇠로 된 고리가 서로 길게 연결된 것을 말합니다만, 그 쇠사슬의 강도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하면 가장 약한 고리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쇠고리들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결국 가장 약한 고리가 끊어져버리면 그 쇠사슬은 제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거리 두기 몇 단계, 일본을 보면 경계 레벨 3단계, 4단계. 그 위는 만연방지 등 중점조치. 더 나아가 긴급사태선언 등이 있습니다만,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인 것 같습니다.

정부나 행정기관에서는 가급적 외출은 자제하고 손 소독과 마스크착용을 철저하게 하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평소부터 잘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아니,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었는데, 더 이상 어떻게 잘 지켜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정말 요즘 같은 세상에서 본다면 참으로 모범적인 분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아무리 코로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병을 전염시킨다 하더라도, 평소부터 이처럼 철저하게 잘 지키는 사람들을 통해서는 좀처럼 확산되지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그야말로 쇠사슬 중에서도 강한 쇠고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모두가 모두 이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 같은 건 그냥 감기다. 뭐 그러면서 마스크도 안 하고 손 소독도 안 합니다.


얼마 전 방송에서 어떤 의사 이야기를 들으니까, 코로나가 의심된다면서 어느 한 젊은이가 찾아 왔대요. 그래서 검사를 해보니까 역시 코로나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 감염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얼마 전 여럿 친구들이랑 집에서 10시간 동안 술을 마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이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하자면, 정말 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에요. 아니, 지금 코로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심하라고, 방역에 신경을 쓰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듣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행동해서 결국 확진자가 되었다니 참으로 답답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평소부터 철저하게 방역지침을 따르고 있는 사람 때문에 코로나가 확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 확산됩니까.

“에이, 내가 설마 걸리겠어? 나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확산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혹시 평소에, ‘나는 유혹에 강하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운전할 때에도 보면 ‘나는 운전을 잘 한다’. 그리고 누가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려고 해도 ‘나는 절대로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 계십니까.


나는 유혹에 강하다, 나는 운전을 잘 한다, 나는 절대로 속아넘어가지 않는다……이렇게 스스로를 믿고 있는 분들은, 얼핏 보기에는 쇠사슬 중에서도 강한 고리처럼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은 쇠사슬 중에서도 약한 고리, 그 중에서도 가장 약한 고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누가 유혹합니까. 그렇습니다. 마귀가 유혹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힘으로 마귀를 이길 수가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마귀가 누구를 유혹하려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에 의하면 예수님까지도 유혹하려고 했던 놈들이 바로 마귀입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몰라서 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럼 제 생각은 어떠냐 하면, 제 생각은 제쳐놓고 성경적으로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장 23절~26절
“23.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ちょうどそのとき、汚れた霊につかれた人がその会堂にいて、こう叫んだ。
「ナザレの人イエスよ、私たちと何の関係があるのですか。私たちを滅ぼしに来たのですか。私はあなたがどなたなのか知っています。神の聖者です。」
イエスは彼を叱って、「黙れ。この人から出て行け」と言われた。
すると、汚れた霊はその人を引きつけさせ、大声をあげて、その人から出て行った。

예수님께서 가시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못 알아보더라도 오히려 마귀들이 먼저 알아보고는 무서워 합니다. 지금 여기에 나오는 귀신이 어느 정도 힘을 가진 마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미루어 짐작컨대 앞서 말씀 드렸던 예수님을 직접 유혹하려던 마귀가 그냥 졸개 마귀였겠습니까. 그렇지는 않겠지요. 아마도 상당한 힘을 가진 마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러면 그냥 마귀들도 예수님을 알아보는데, 예수님을 직접 유혹하려고 달려드는 마귀가 예수님을 못 알아보았겠어요? 그건 마귀를 너무나도 마귀들을 과소평가하시는 것입니다. 마귀들이 지네들 자존심 상한다고 기분 나빠할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마귀들은 감히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유혹하려고 달려드는 놈들입니다. 그런 마귀들을 우리 힘만으로 이길 수가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에요. 그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오늘날과 같이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소독도 안 하고 마스크도 안 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는 몸이 튼튼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자신감은 역시 강한 고리가 아니라 약한 고리입니다. 그와 같은 약한 고리, 그와 같은 틈을 타서 코로나가 퍼져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나는 운전을 잘한다’ ‘나는 절대로 남들한테 속지 않는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어쩌면 이런 분들 또한 가장 약한 고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강한 고리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런 것들을 뒤집어보면 알겠지요.

‘나는 운전을 잘한다’는 것이 약한 고리라면, 무엇이 강한 고리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는 운전할 때 실수할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 이것이 강한 고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는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얼마나 운전을 잘 하는지 알아? 지금까지 한 번도 사고를 일으켜본 적이 없단 말이야” 라고 하는 마음은 강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입니다. 사고를 일으킬 확률을 한도 끝도 없이 올리는 일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반면에 나는 실수할 수 있으니까, 라는 생각을 가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항상 조심하면서 운전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그만큼 사고 위험도 낮출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나는 유혹에 강하다’라고 하는 것이 약한 고리였다고 한다면, 강한 고리는 그 반대인 ‘나는 유혹에 약하다’라고 하는 마음이 오히려 강한 고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나는 유혹에 약하다’라고 하는 마음이 어떻게 해서 강한 고리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나는 유혹에 약하다. 내 힘으로는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돼요? 그렇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마귀 사탄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얼마나 교회에 오래 다녔는지 알아? 내가 얼마나 금식을 많이 해봤는지 알아? 내가 얼마나 헌금을 많이 냈는지 알아? 내가 얼마나 성경을 많이 아는지 알아? 내가 몇 대째 기독교 집안인지 알아?”

이와 같은 마음은 강해보일지는 모르지만, 알고 보면 쇠사슬 중에서도 대단히 약한 고리이며, 이와 같은 틈을 통해서 죄가 기회를 타서 들어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잠언 16장 18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高慢は破滅に先立ち、高ぶった霊は挫折に先立つ。

이사야 5장 21절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わざわいだ。自分を知恵のある者と見なし、自分を悟りのある者と思い込む者たち。

고린도전서 10장 12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ですから、立っていると思う者は、倒れないように気をつけなさい。


우리는 교만한 마음, 거만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특히 믿음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교만과 거만이라고 하는 마음이 마귀들에게 틈을 주어 기회를 타서 죄악들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私を強くしてくださる方によって、私はどんなことでもできるのです。

나는 비록 약하고 둔하고 미련하나,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주님이 내게 능력을 주시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보여주어서는 안 됩니다. 기회를 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믿음과 말씀과 실천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첫째로 내 힘으로는 못하지만 주님을 의지하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만을 의지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 강한 믿음으로 무장하고,

둘째로 유일하고도 완전하신 주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무기로 삼아,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으며 소망을 가지고,

셋째로 믿음과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 마침내 마귀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여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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