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5회 율법과 죄와 사랑
2021년 9월 19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7장 5절~7절
“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ローマ人への手紙 7章5節~7節
“5.私たちが肉にあったときは、律法によって目覚めた罪の欲情が私たちのからだの中に働いて、死のために実を結びました。
6.しかし今は、私たちは自分を縛っていた律法に死んだので、律法から解かれました。その結果、古い文字にはよらず、新しい御霊によって仕えているのです。
7.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律法は罪な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むしろ、律法によらなければ、私は罪を知ることはなかったでしょう。実際、律法が「隣人のものを欲してはならない」と言わなければ、私は欲望を知らなかったで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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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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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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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51번째 시간으로서 “율법과 죄와 사랑” 律法と罪と愛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우선 본문 말씀 5절~6절을 살펴 보고, 그 다음에 7절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앞부분의 내용은 지난 2주 동안 전해드린 말씀을 들으셨다면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먼저 5절~6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7장 5절~6절
“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5.私たちが肉にあったときは、律法によって目覚めた罪の欲情が私たちのからだの中に働いて、死のために実を結びました。
6.しかし今は、私たちは自分を縛っていた律法に死んだので、律法から解かれました。その結果、古い文字にはよらず、新しい御霊によって仕えているのです。

자, 5절에 기록하기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私たちが肉にあったとき)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당연히 궁금해야 할 것이 있지요. 그게 뭐냐 하면, 뭐가 육신에 있을 때인데? 라고 하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육신에 있을 때이겠습니까. 이는 바로 영혼이 육신에 있을 때라는 뜻입니다. 영혼이 육신에 있게 되면 어떻게 되지요?

여러분께서는 지금 영혼이 육신 안에 있으십니까? 예, 간혹 어떤 분은 자기 자신이 긴가 민가 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은 육신 안에 영혼이 있으신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러면 육신 안에 영혼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예, 그렇죠.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봤다면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 있지요? 여기서 살아있다는 뜻은 지금 우리처럼 물리적으로 살아있다는 뜻이 아니라, 무엇에 대해서 살아 있다는 뜻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성경이 좀 보이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5절 첫 부분은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 살아 있을 때에는”이라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중간 부분을 보아야 하겠지요.

로마서 7장 5절 중간 부분만 보겠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律法によって目覚めた罪の欲情が私たちのからだの中に働いて


이 또 역사하여……라고 하는 말씀, 꽤 자주 나오는 말씀입니다만, 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역사하다’가 사실 무슨 뜻이에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역사……는 왠지 아닌 것 같긴 하죠?

이는 간단하게 말씀 드리자면, 일을 하다, 어떠한 작용을 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다 (罪の欲情が私たちのからだの中に働いて)’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 지체는 우리 몸이 되겠지요. 우리 몸 안에서 뭔가가 작용을 한데요. 그러면 뭐가 작용을 하냐 하면,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몸 안에서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도 나오긴 합니다만, 우리가 쉽게 말해서 ‘죄’라고 하는 것은 무엇에 대한 죄입니까. 그렇죠. 이는 윤리나 도덕적으로 보았을 때의 ‘죄’가 아니라 ‘율법적인 죄’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적으로 보았을 때의 죄, 정말 죄를 지으려고 하는 이 인간의 속성이 우리 몸 안에서 작용을 한다는 것이에요.

자,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냐 하면, 5절 마지막 부분입니다.

5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実を結びました)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열매를 맺는다’ 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오랜 노력 끝에 무슨 좋은 일을 성취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만, 성경에서는 좋은 뜻으로도 쓰이지만 안 좋은 뜻으로도 쓰입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이해를 하면 되냐 하면, 이는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쉽게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자로 생각하면 명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열매, 과실을 맺는다……이걸 한자로 쓰면 어떻게 됩니까. ‘맺을 결’, ‘열매 과’ 이렇게 해서 ‘결과’라는 한자가 됩니다. 그러니까 ‘열매를 맺는다’라는 ‘결과적으로 볼 때 좋게 되거나 안 좋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열매를 맺게 되냐 하면,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사망이라는 결과가 되다. 즉,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 뜻입니다.

자, 이렇게 보면 어떻게 됩니까.

로마서 7장 5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7장 5절
“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5.私たちが肉にあったときは、律法によって目覚めた罪の欲情が私たちのからだの中に働いて、死のために実を結びました。”

이 말씀은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 살아 있을 때에는, 율법적인 죄가 우리 몸 안에서 작용을 해서, 결과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더니……”

이런 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이제 5절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지요?

그러면 이제 6절로 넘어가겠습니다.

로마서 7장 6절
“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しかし今は、私たちは自分を縛っていた律法に死んだので、律法から解かれました。その結果、古い文字にはよらず、新しい御霊によって仕えているのです。

6절은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6절 앞부분,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しかし今は、私たちは自分を縛っていた律法に死んだので、律法から解かれました。

이 말씀에 보면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대요.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이 역시 지금까지 함께 공부해 오셨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 살아 있을 때는 율법이 우리를 지배했습니다. 우리를 속박했습니다.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을 해도, 아무리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보려고 해도 도저히 이 율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꼼짝없이 율법 앞에서는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 주셨습니다.

신명기 21장 23절 후반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中盤)
木にかけられた者は神にのろわれた者だからである。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しかし、彼は私たちの背きのために刺され、私たちの咎のために砕かれたのだ。彼への懲らしめが私たちに平安をもたらし、その打ち傷のゆえに、私たちは癒やされた。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십자가라고 하는 나무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대신해서 모두 다 받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 할 징계를 대신해서 받아 주시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우리가 맞아야 할 채찍을 대신 맞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어주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우리는 율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 다음에 6절 뒷부분이요,

로마서 7장 6절 후반부
“6……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その結果、古い文字にはよらず、新しい御霊によって仕えているのです。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율법에 대해서 죽음으로써 율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이라고 하는 오래된 포도주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가르침, 새 포도주를 새 가죽 부대에 듬뿍듬뿍 담아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공부한 복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그 내용은 율법에 관해서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율법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있었지만,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율법이라고 하는 족쇄에서 벗어났어요. 이제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율법을 버려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율법을 버리는 거예요?

까짓 거 쉽죠. 율법이 적혀 있는 성경책 부분을 찢어버리면 되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두껍고 무거운 성경책인데, 그리고 율법 내용은 얼마나 어렵고 지루해요? 레위기나 신명기 보세요. 읽다 보면 얼마나 잠이 잘 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율법에서 벗어났다면서요? 그렇다면 그거라도 좀 줄여도 되지 않겠어요?

자, 성경은 여기서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뭐라고 기록합니까.

로마서 7장 7절을 봅니다.

“7.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7.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律法は罪な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むしろ、律法によらなければ、私は罪を知ることはなかったでしょう。実際、律法が「隣人のものを欲してはならない」と言わなければ、私は欲望を知らなかったでしょう。”


이것도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 부분,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7.それでは、どのように言うべきでしょうか。律法は罪な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가 지키지 못할 것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서는, 우리가 이를 지키지 못하면 정죄하고 심판하고 그런 율법, 더구나 우리는 이 율법 때문에, 이 율법으로 사형판결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져야 마땅한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죄의 원흉, 우리의 원수는 바로 율법이다.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바울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뒤에 나와 있습니다.

로마서 7장 7절 후반부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むしろ、律法によらなければ、私は罪を知ることはなかったでしょう。実際、律法が「隣人のものを欲してはならない」と言わなければ、私は欲望を知らなかったでしょう。”

이를 단계적으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차적으로 본다면, 율법에서 이것을 하지 말라, 저것을 하지 말라, 이렇게 규정 되어 있으니까, 아, 우리가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죄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2차적으로는, 우리가 어떠한 법을 여김으로 인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 그리고 어떤 죄를 용서 받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율법인 것입니다.

이 율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떠한 죄를 짓고 어떠한 형벌을 받아야 마땅했는지, 우리는 어떠한 죄를 용서 받았는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이 율법을 통해서만 우리가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율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장 23절~35절
“23.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23.ですから、天の御国は、王である一人の人にたとえることができます。その人は自分の家来たちと清算をしたいと思った。
24.清算が始まると、まず一万タラントの負債のある者が、王のところに連れて来られた。
25.彼は返済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その主君は彼に、自分自身も妻子も、持っている物もすべて売って返済するように命じた。
26.それで、家来はひれ伏して主君を拝し、『もう少し待っ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すべてお返しします』と言った。
27.家来の主君はかわいそうに思って彼を赦し、負債を免除してやった。
28.ところが、その家来が出て行くと、自分に百デナリの借りがある仲間の一人に出会った。彼はその人を捕まえて首を絞め、『借金を返せ』と言った。
29.彼の仲間はひれ伏して、『もう少し待っ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お返しします』と嘆願した。
30.しかし彼は承知せず、その人を引いて行って、負債を返すまで牢に放り込んだ。
31.彼の仲間たちは事の成り行きを見て非常に心を痛め、行って一部始終を主君に話した。
32.そこで主君は彼を呼びつけて言った。『悪い家来だ。おまえが私に懇願したから、私はおまえの負債をすべて免除してやったのだ。
33.私がおまえをあわれんでやったように、おまえも自分の仲間をあわれんでやるべきではなかったのか。』
34.こうして、主君は怒って、負債をすべて返すまで彼を獄吏たちに引き渡した。
35.あなたがたもそれぞれ自分の兄弟を心から赦さないなら、わたしの天の父もあなたがたに、このようになさるのです。」


우선 여기에 달란트와 데나리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화폐단위입니다. 먼저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 하루 치 임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달란트는 데나리온의 6000배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라는 뜻이 됩니다.

요즘 일용직 노동자 하루 임금에 대해서는, 뭐 개인마다 다르겠습니다만, 편의상 10만원이라고 하지요. 하루 10만원, 일본 돈으로는 1만엔이라고 편의상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하루 임금 10만원을 1데나리온이라고 한다면, 백 데나리온은 1,000만원(100万円)입니다.

그럼 만 달란트는 얼마가 되겠습니까. 6000데나리온이 1달란트였잖아요. 1 데나리온이 10만원(1万円)이면, 6000데나리온은 6억원(6千万円)입니다. 6억원이 말하자면 1달란트에요. 그럼 만 달란트는 얼마냐 하면, 6억원에 0를 4개 붙이면 됩니다. 그러면 6조원(6千億円)입니다.

그러니까 백 데나리온은 1,000만원(100万円), 만 달란트는 6조원(6千億円) 정도가 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자, 그럼 이 이야기로 되돌아가보면 어떻게 됩니까. 어떤 임금이 자기한테 6조원(6千億円)을 빚진 종, 아마도 신하(家来)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데 그를 끌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와 네 아내와 자식, 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팔아서 6조원(6千億円)을 갚으라고 명합니다.

자기와 자기 아내와 자식을 판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평생 동안 노예로 살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신하가 엎드려 절하며 사정을 합니다. 제발 좀 봐달라고 다 갚을 테니까 참아달라고 합니다.

아니, 많은 빚을 진 사람이, 이제부터 무슨 일을 한다고 해서 6억원(6千万円)도 아니고 6조원(6千億円)이나 되는 돈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평생 일을 해도 절대로 못 갚을 만한 돈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놀라운 결단을 합니다. 그래. 알았다. 됐어. 안 갚아도 돼. 이렇게 말을 합니다. 참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 종은 신이 나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가다가 동료를 만났는데, 이 사람은 이 종한테서 천 만원(100万円)의 빚을 지고 있었어요. 참 재주도 좋아요. 자기는 6조원(6千億円)이나 빚을 지고 있는 주제에, 그는 이 동료한테 천만원(100万円)을 꿔줬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동료를 만나자마자 멱살을 잡고 당장 천 만원(100万円) 갚으라고 다그칩니다.

그랬더니 이 동료가 역시 엎드려서 부탁하기를 내가 꼭 갚을 테니 좀 봐달라고 사정을 해요.

그러면 어떻게 했어야 합니까. 그래. 내가 6조원6조원(6千億円)이나 되는 빚을 탕감 받았는데, 그거 내가 탕감해주지 못하겠나, 하면서 안 갚아도 돼!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이 친구, 어떻게 했습니까.

탕감해주기는커녕 감옥에 가둬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지켜보던 동료들이, 야, 이거 해도해도 너무하다 라고 해서 주인한테 알립니다.

그랬더니 그 6조원(6千億円)을 탕감해준 주인이 당연히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했대요? 예, 그 6조원을 다 갚도록 옥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
“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35.あなたがたもそれぞれ自分の兄弟を心から赦さないなら、わたしの天の父もあなたがたに、このようになさるのです。」

이 말씀은 정말 보면 볼수록 절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6조원(6千億円)은 그야말로 재벌이라면 모를까 일반인들한테는 정말 감이 안 잡힐 만한 금액이에요.

어느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평생소득이 의사가 40억원 정도, 변호사가 35억원 정도라고 합니다. 한 명의 의사가 평생동안 40억원을 번다고 한다면 6조원(6千億円)은 의사 1500명이 평생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번 돈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백 데나리온. 얼마였죠? 예, 1,000만원(100万円)입니다. 1,000만원(100万円)이 적은 돈이에요? 아니에요. 적은 돈은 아닙니다.

여러분께서는 혹시 누구한테 1,000만원(100万円) 빌려줘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리고 그 빌려주신 돈을 모두 탕감해 주신 적이 있으신가요?

웬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거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저는 여기서 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잠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비유에 등장하는 이 종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볼까 합니다.

자기가 큰 빚이 있었어요. 하지만 한 번에 그 많은 돈을 빚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돈을 빌리다 보니 어느새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말았을 지도 모릅니다. 집에 돈도 없어요. 매달 월급을 받아도 그게 자기 돈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늘어가는 빚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주인이 그 빚을 다 갚으라고 해요. 자기는 물론 가족이 모두 노예로 팔려나갈 지경이에요. 이는 정말 죽기보다도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으로 빌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빚을 다 탕감해주었어요.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 가족들이 모두가 구원 받았습니다. 참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 다 탕감해준 것은 고마운데, 그렇다고 내 수중에 돈이 들어온 것은 아니잖아요? 6조원을 탕감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돈 백 만원 정도라도 쥐어준 것은 아니란 말이에요. 여전히 자기 주머니는 비어 있어요.

그런데 마침 어쩌면 자기가 한 창 잘 나갈 때 1천만원(100万円)을 빌려준 동료를 만난 거예요. 100만원(10万円)도 아니고 1000만원(100万円)입니다. 이제 그 돈이 있으면 정말 내 돈이에요. 내 빚은 이제 다 탕감 받았으니까, 누군가한테 빼앗길 걱정도 없는 완전한 자기만의 돈입니다.

그 돈만 있으면 정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 1000만원(100万円)을 받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그 마음? 저는 그런 6조원(6千億円)이나 되는 큰 빚을 져본 적은 없고, 그런 1000만원(100万円)이나 되는 돈을 꿔줘 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왠지 그 마음, 돈 1000만원(100万円)을 꼭 받아내고 싶어했던 그 마음은 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3자인 우리가 보기에는 어때요? 야, 1000만원(100万円)이 적은 돈은 아니야. 하지만 자기는 6조원(6千億円)이나 탕감 받았잖아. 6조원(6千億円)에 비하면 1000만원(100万円)은 60만분의 1이야. 60만배나 되는 돈을 탕감 받았으면서 60만분의 1도 봐주지 못하냐……이런 생각이 드는 것 또한 당연하겠지요.

열심히 노력하면 1000만원(100万円) 정도는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 1500명이 평생 벌 돈을 일반 서민이 혼자서 어떻게 갚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종이 부족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의리? 자비심? 믿음? 아니요. 그가 부족했던 것은, 바로 작은 기억력이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큰 빚을 탕감 받았는지를 기억했었더라면 그는 자기 동료에게 그토록 무자비한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모르죠. 1년 정도 감옥에 있다가 탕감 되었다면, 그 감사한 마음이 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1년 정도 감옥에 있다가 탕감 받는 것이랑, 하루도 감옥에 안가고 탕감 받는 것이랑 무엇이 더 큰 은혜겠습니까. 당연히 하루도 감옥에 안 가고 탕감 받는 것이 더 큰 은혜지요.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 1년 정도 지옥에 있다가 천국에 가는 것과, 곧바로 천국에 가는 것과 어떤 것이 더 큰 은혜겠습니까.

아휴, 1년이요? 성경에 적힌 지옥에 대한 기록을 보세요. 1년은 무슨, 1분 1초라도 거기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살아서 이 세상에 있을 때에는, 구원의 값어치를 잘 몰라요. 왜냐하면 아직 살아 있거든요. 지옥에 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못해요? 그렇습니다. 용서를 못 합니다.

그래서 내가 탕감 받은 6조원은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챙겨야 할 100만원, 내가 받아내야 할 1000만원만 생각하면서, 내 주머니를 챙기고 내 자존심을 챙기면서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무시하고 깔아뭉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율법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고, 내가 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고, 나야말로 잘나기는커녕 죄인 중의 죄인이구나 하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이 율법이요, 이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 아아, 정말 예수님 아니었으면 나는 큰일 났었겠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이를 깨닫기 위해서 율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알아야 우리는 우리의 죄를 알 수 있고,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오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주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 주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님, 그리고 장차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0장 8절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病人を癒やし、死人を生き返らせ、ツァラアトに冒された者をきよめ、悪霊どもを追い出しなさい。あなたがたはただで受けたのですから、ただで与えなさい。

이 말씀은 주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여러 이적을 행하였을 때 그 대가로 돈을 받지 말라고 하시면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만, 우리가 거저 받는 것이 그와 같은 이적 뿐입니까.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은 구원도 그렇고 축복도 그렇고 은혜로 그렇습니다만,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가 바로 ‘용서’를 거저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거저로 받았기 때문에 축복도 있고, 은혜도 있고 구원도 있는 것이지,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용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거저로 받았고, 십자가는 율법에 대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죄인 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이 율법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알게 하시고,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됨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은혜와 용서를 우리 이웃에게 거저로 베푸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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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