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6회 우리의 자랑
2021년 2월 28일 설교

홍성필 목사
www.kirin.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7절~28절
“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ローマ人への手紙 3章 27節~28節
“27.それでは、私たちの誇りはどこにあるのでしょうか。それは取り除かれました。どのような種類の律法によってでしょうか。行いの律法でしょうか。いいえ、信仰の律法によってです。
28.人は律法の行いとは関わりなく、信仰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と、私たちは考えているから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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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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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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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24번째 시간으로서 “우리의 자랑” 私たちの誇り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3장 27절~28절
“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7.それでは、私たちの誇りはどこにあるのでしょうか。それは取り除かれました。どのような種類の律法によってでしょうか。行いの律法でしょうか。いいえ、信仰の律法によってです。
28.人は律法の行いとは関わりなく、信仰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と、私たちは考えているからです。

여기서 27절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7절에서는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반부를 다시 한번 봅니다.


로마서 3장 27절 후반부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どのような種類の律法によってでしょうか。行いの律法でしょうか。いいえ、信仰の律法によってです。

이를 다른 번역서 등을 참조해서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율법으로인가. 행위의 율법인가. 아니다. 믿음의 율법으로이다.”

예, 좀 갑갑하더라도 조금만 인내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가지고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28절까지를 보셔야 이해가 됩니다.

로마서 3장 28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8.人は律法の行いとは関わりなく、信仰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と、私たちは考えているからです。

이는 말하자면 사람이 의롭다고 여겨지게 된 것은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 일단 여기까지 말씀을 살펴보고, 예, 오늘은 처음부터 좀 어려운 말씀을 드려서 벌써부터 잠이 솔솔 오지 않을까 합니다만, 일단 좀 쉬운 문제부터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항상 <믿음과 말씀과 행함>에 대해서 강조를 해왔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유일하고도 오류가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 말씀을 깨닫는 것이고, 행함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과 말씀에 입각해서 이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과 말씀과 행함, 한자로 하자면 신앙과 성경과 실천. 이 중에서 과연 무엇이 중요할까요. 믿음이 중요하다? 말씀이 중요하다? 아니면 행함이 중요하다?

물론 이 세 가지 모두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굳이 이 셋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여기에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이 중에서 <행함이 중요하다>라고 누군가가 주장했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이 사람은 여러분께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同じように、信仰も行いが伴わないなら、それだけでは死んだものです。

야고보서 2장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からだが霊を欠いては死んでいるのと同じように、信仰も行いを欠いては死んでいるのです。

자, 봐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성경에 있지 않느냐. 아무리 믿음이 많고,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안다 하더라도 여기에 따르는 행함이 없다면 이는 모두가 소용이 없는 일이다. 믿음과 말씀은 결국 행함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믿음과 말씀과 행함, 신앙과 성경과 실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함, 실천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주장을 한다면 여러분께서는, 특히 이 셋 중에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분께서는 어떻게 반론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아……듣고 보니 그런가 보다……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믿음과 말씀과 행함이라고 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만, 이 셋 중에서 믿음의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는 믿음은 말하자면 말씀과 행함을 담는 그릇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있어야지만 그 믿음이라고 하는 그릇에 합당한 말씀과 행함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구절을 달달달달 외운다 하더라도 거기에 믿음이 없다면 이를 담을 그릇이 없어요. 다 빠져 나가요.

온전한 믿음이 없이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면, 성경을 엉뚱하게 해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는 그냥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5절중반부부터 16절까지를 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5절 중반부 ~16절
“15……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愛する、私たちの兄弟パウロも、自分に与えられた知恵にしたがって、あなたがたに書き送ったとおりです。
その手紙でパウロは、ほかのすべての手紙でもしているように、このことについて語っています。その中には理解しにくいところがあります。無知な、心の定まらない人たちは、聖書の他の箇所と同様、それらを曲解して、自分自身に滅びを招きます。

우리가 학교에서 다닐 때 보면 교과서를 잘못 읽거나 선생님 말씀을 오해했거나 하면 시험에서 점수가 잘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또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상태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게 되면, 이는 시험을 망치는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올바른 믿음이 없이 성경을 자기 멋대로 이해하게 되면, 이를 그대로 실천한다 하더라도 그 실천은 순종의 실천이 아니요 멸망에 이르는 실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그 믿음이라고 하는 그릇 안에 말씀과 행함을 듬뿍듬뿍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럼 다시 오늘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로마서 3장 27절~28절
“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7.それでは、私たちの誇りはどこにあるのでしょうか。それは取り除かれました。どのような種類の律法によってでしょうか。行いの律法でしょうか。いいえ、信仰の律法によってです。
28.人は律法の行いとは関わりなく、信仰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と、私たちは考えているからです。


아까는 27절에서 28절 순으로 살펴보았습니다만, 이번에는 28절부터 해석하고 그 다음에 27절로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훨씬 이해가 잘 됩니다.

자, 28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 여기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을 쉽게 말하자면 무슨 뜻이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저와 열심히 공부해 오신 분들께서는 아실 수 있습니다.

자,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무슨 자격을 얻게 된다? 그렇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냐 하면, 이는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고 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행위의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율법, 그러니까 행위를 함으로써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율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27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만약에 내가 뛰어난 행위를 해서 그 대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내가 자랑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내가 한 것이라고는 단순히 믿었을 뿐인데, 오히려 그 믿음의 율법, 믿음의 대가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구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나는 하나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에 자랑……이라고 나옵니다만, 오늘은 한 번 이 <자랑>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자랑할 데가 없다고 나옵니다만, 그렇다면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냐 하면 갈라디아서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しかし私には、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以外に誇りとするものが、決してあってはなりません。この十字架につけられて、世は私に対して死に、私も世に対して死にました。

이 갈라디아서도 로마서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에 의해 기록된 서한입니다만, 여기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말고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즉,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오늘 본문과도 분명히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힘이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내 힘과 노력으로 인한 행위로 구원을 얻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고 자랑할 수는 없지만, 이는 내 행위가 아니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만을 자랑하겠다고 바울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랑>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께서는 혹시 자랑을 할만한 것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자랑을 하시겠습니까.

어떤 분은 자랑할 만한 것이 많으실 수도 있고 별로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가지고 자랑을 할까요.

누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나 재산을 자랑할 지도 모릅니다. 명예나 사회적 지위, 학력이나 경력을 자랑할 수도 있겠지요. 혹은 자기 가족이나 집안 내력을 자랑할 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あなたがたには、明日のことは分かりません。あなたがたのいのちとは、どのようなものでしょうか。あなたがたは、しばらくの間現れて、それで消えてしまう霧です。

돈이나 재산? 명예? 사회적 지위? 학력? 경력? 집안 내력이요? 이는 다 안개 같은 인생, 길어 봤자 100년, 요즘은 조금 더 오래 살지요? 넉넉잡아 150년도 못 가질 것들입니다.

그리고 어디 그 뿐인가요. 이런 것들을 많이 가지면 죽고 나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요. 이런 것들은 아무리 많이 가져 봤자 우리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私たちは見えるものにではなく、見えないものに目を留めます。見えるものは一時的であり、見えないものは永遠に続くからです。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입니다.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다가 없어집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깟 이름을 남겨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 구원을 받는 것, 천국에 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우리 앞에 잠깐만 눈에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에만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아무리 많이 가진다 하더라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할 것, 자랑으로 삼아야 할 것은 우리가 잠깐 손에 쥐었다가도 길어봐야 몇 십년 밖에 못 갖는 것들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귀한 것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만, 그것 뿐일까요?

사람은 무엇을 자랑하느냐 하면,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힘이 되는 것을 자랑한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자랑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아~ 나는 이것이 힘이 된다, 저것이 힘이 된다 하고 말하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려울 때 진정으로 힘이 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는 살아가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옛날 젊은 시절에 유학했던 경험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그 때는 정말 돈도 없고, 일을 하려고 해도 외국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도 있고 해서,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경험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지금도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치게 되면 과거에 그런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는데 이 정도를 내가 못 이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에는 그 어려운 유학시절이 이 분에게 있어서는 자랑이 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제 경우를 보자면, 제가 얼마 전에 좀 여러 가지로 넉넉하지는 못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컴퓨터를 하나 장만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쓰고 있던 것이 2013년에 한국에서 구입한 것인데 올해가 2021년이니까 대략 8년 만에 마련한 셈이지요.

컴퓨터를 8년 정도 쓰면 어떻게 되냐 하면요, 일단 팬 돌아가는 게 무슨 에어컨 실외기 같은 소리가 납니다.


팬 정도야 바꿔주면 된다고 하지만, 예를 들어서 매주 이렇게 말씀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엑셀 같은 프로그램으로 작업을 하다가 보면 컴퓨터가 오래 되어서 갑자기 프로그램이 꺼집니다. 그러면 물론 자동으로 저장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컴퓨터 속도가 느리니까,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그 동안, 적어도 십여 분 동안 했던 작업이 날라갑니다.

몇 번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만의 비밀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알려드리는 건데, 오늘은 특별히 그 비밀 테크닉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처럼 오래된 컴퓨터를 쓰시는 분들은 참고가 되시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기존 컴퓨터로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제 핸드폰을 옆에 두고 작업을 했습니다.

이는 그냥 두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마음 준비를 해요. 그러고 작업을 하다 보면 순간 화면이 희미해지고 작동이 안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이제 비상이에요. 키보드를 아무리 눌러도 반응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직 화면에는 희미하게 제가 작업하던 글씨가 남아 있어요. 그러면 이제 준비하고 있던 핸드폰를 얼른 집어 들고는 모니터 사진을 몇 장 찰칵찰칵 찍습니다.

보통 그렇게 찍고 나면 몇 초 뒤에 화면이 꺼지고 프로그램이 다시 시작해요. 그리고 재시작 한 화면에 보면 10중 팔 구로 십여 분 정도 작업한 분량이 날라가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놀라지 않습니다. 제가 찍어놓은 사진이 있거든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찍어놓은 사진을 보고 여유롭게 다시 작업을 하지요.

물론 항상 그렇게 성공적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순간적으로 당황을 해서 사진을 못 찍는 경우가 있어요. 좀 실수로 사진을 찍지 못하면, 막 찍으려는 순간에 화면이 꺼져버립니다. 정말 그 때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순간의 제 얼굴표정을 한 번 찍어보고 싶어요. 참 예술일 것입니다.

뭐, 이런 일은 빙산의 일각이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아,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 잘못하다가는 건강상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 싶어서 큰맘 먹고 컴퓨터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덜컥 사고 보니까, 이 8년 동안에 컴퓨터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제가 그 때까지 알고 있던 지식으로는 도대체 세팅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하루 종일 낑낑대고 이것저것 해보고 컴퓨터 회사에 전화도 걸어보고 했는데도 정말 막막합니다. 이제 상자도 뜯고 전기도 꽂아봤으니 환불도 못해요.

이번에 다시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써먹지 못하는 컴퓨터라고 하는 것은 그저 비싸게 돈을 주고 산 시커먼 상자일 뿐이구나 하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때 제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는데, 하나 그게 뭐냐 하면, 예전에 말씀 드렸던 적이 있는 팟캐스트에 대한 기억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칠 때 이 팟캐스트라는 인터넷 방송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 때는 제가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을 하면, 나머지는 학원 쪽에서 방송채널을 개설도 해주고 효과음이나 음악도 깔아주고 등록도 다 해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본에 와서 말씀을 전하는데 유튜브만으로는 안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팟캐스트를 해야 되겠어요. 그런데 제가 할 줄 알아야 말이지요. 남들이 다 해주고 저는 녹음만 했었는데, 이제 제가 처음부터 다 초기 개설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선 인터넷을 검색해 봤는데, 이건 몇 개를 읽어봤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좀 괜찮은 홈페이지를 하나 찾아서 진행해봤는데, 역시 어려워요. 그것도 이게 한국에 있는 회사가 아니라 미국 애플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미국 담당자한테 몇 번씩 문의도 하고 그러면서도 거의 좌절 일보직전까지 갔었습니다.

정말 주변에는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해서, 사실 말은 안 했지만 당시에는 한 2주 동안 얼마나 머리가 아팠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때도 주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정말 무사히 개설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컴퓨터와 씨름을 할 때도, 그래, 그 때 팟캐스트도 했었는데 이 정도를 못할까. 그 때도 주님께서 길을 평탄케 해주셨는데, 설마 이번에 주님께서 내가 포기하기를 원하고 계시지는 않을 거야. 이런 마음으로 일을 하나하나 진행을 했더니 정말 부족한 저를 위해 주님께서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 외에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이 있지요. 하지만 힘들 때마다 저는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죄 많은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유, 그것은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로 인해서 우리는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고, 예수님만 믿으면 소망을 얻을 수 있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4장 11절~12절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あなたがた家を建てる者たちに捨てられた石、それが要の石となった』というのは、この方のことです。
この方以外には、だれによっても救いはありません。天の下でこの御名のほかに、私たちが救われるべき名は人間に与えられていないからです。」


예수님께는,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낙심하고 주저앉은 우리를 일으켜 세울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힘이시요, 우리의 구원이시요, 우리의 소망 되심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도중에 포기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는 마치 비싸게 주고 산 컴퓨터를 도중에 포기하고 여전히 고물 컴퓨터를 쓰는 꼴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그깟 컴퓨터에 비하겠습니까. 온 천하 우주만물을 다 합친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피 한 방울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귀한 피를,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한 방울이 아닌, 모든 피를 남김 없이 흘려 주셨는데, 우리가 좌절할 수가 있겠습니까. 절망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우리 삶에서 힘들고 어려움을 해결해줄 능력이 없습니까.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의 능력은 그 정도 밖에 안 되나요? 내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는 능력도 안되나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がたの信仰が薄いからです。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もし、からし種ほどの信仰があるなら、この山に『ここからあそこに移れ』と言えば移ります。あなたがたにできないことは何もありません。」

산 하나를 옮기는 일과 내가 가진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 어느 쪽이 어렵습니까. 당연히 큰 산을 옮기는 일이 훨씬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 하더라도 그 좁쌀만한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다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신다는 믿음, 예수님이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신다는 믿음, 예수님이 우리 앞길을 평탄케 해주신다는 믿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신다는 믿음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와 같은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과소평가 하시면 안 됩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생각해야 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주저앉으라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까.

아니다!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예수님을 믿기만 한다면,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기만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내 앞길을 평탄케 해주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26장 7절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正しい人の行く道は平らです。あなたは正しい人の道をならし、平らにされます。

이 믿음이야말로 바로 예수님을 우리의 자랑으로 여기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의 자랑으로 여기는 삶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私を強くしてくださる方によって、私はどんなことでもできるのです。

주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면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셨나요? 주셨다면 언제 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미 2천년 전에 우리의 죄를 모두 해결해주시고,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힘이나 능력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의 자랑으로 여김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구원받고,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서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주님께서 평탄케 해주시는 길을 힘차게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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